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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의료 시스템 수술 영국도 칼 빼들고 ‘진땀’

연립정부 “보건청과 무상 의료 개혁” vs 반대론자 “의료 민영화 도입 수순”

  • 런던=성기영 통신원 sung.kiyoung@gmail.com

의료 시스템 수술 영국도 칼 빼들고 ‘진땀’

의료 시스템 수술 영국도 칼 빼들고 ‘진땀’
최근 영국의 보수당-자유민주당 연립정부가 국가 의료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수술하겠다며 메스를 꺼내 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 정부가 ‘국가 보건 서비스 (NHS·National Health Service)’라고 부르는 전 국민 무상 의료 시스템을 도입한 이래 최대의 개혁 작업이 예고된 것.

그러나 정부의 개혁은 초반부터 암초를 만나 휘청거리고 있다. 의료 서비스 현대화라는 정부의 구상과 영국이 자랑해온 공공 의료 시스템을 무너뜨리려는 게 아니냐는 반대론자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대의 개혁 작업 곳곳서 충돌

영국의 의료 전달 체계는 전통적인 공공 의료 시스템에 바탕을 두었다. 보건부 산하에 전국을 지역별로 나눠 관장하는 10개 전략보건청, 그리고 다시 151개의 1차 진료위원회(PCT·Primary Care Trust)가 있어 의료 보장 체계의 설계 및 집행을 맡는다. 이들의 예산 편성과 인력 조직 권한은 누구보다도 막강하다. 이들을 통해서만 의료 예산이 편성, 집행되고 이를 기반으로 대형 NHS 병원과 8000개 보건지소의 일선 의사(GP·General Practitioner)이 환자를 책임진다. 따라서 일반 국민은 의료보험료를 내지 않을 뿐 아니라, 아무리 비싼 검사나 수술이라해도 본인 부담 없이 병원을 찾을 수 있다. 물론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하는 사람도 있지만 국민의 90% 이상은 무상 의료 혜택에 의존한다.

이러한 방식의 정부 무상 의료 시스템이 반세기 이상 지속되면서 적잖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무엇보다 환자가 전문의를 만나기 어렵다는 점이 부각됐다. 외과 수술을 받기 위해 몇 개월씩 기다려야 하는 것도 예삿일. 환자가 늘면서 NHS는 적자 덩어리로 전락했다. 또 한정된 정부 예산으로 급속히 노령화하는 인구의 의료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관료화에 따른 폐해로 의료 전달 시스템이 환자 중심이 아닌 공급자 중심으로 운영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은 이러한 문제점을 바로잡으려고 집권 이전부터 의료 보장 체계의 획기적 변화를 강조했다.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개혁안의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GP에게 최대한 자율성을 줘 스스로 예산을 편성, 관리하게 해 관료적 간섭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둘째, 민간 병원이 정부에서 운영하는 NHS 병원과 환자를 놓고 폭넓게 경쟁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크게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먼저 일선 의사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는 GP 컨소시엄을 만들도록 해 이들에게 보건 예산의 편성과 집행 권한을 부여할 방침이다. 이는 일선 GP가 환자에게 필요한 투자 우선순위를 가장 잘 안다는 논리에 따른 것이다.

이를 위해 오는 2013년 4월까지 GP 컨소시엄 구성을 완료하고 지금껏 감독기구 구실을 해온 전략보건청과 PCT는 폐지한다는 계획을 제시한 바 있다. 영국 의료 시스템에서 1차 진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8000여 개에 이르는 일선 보건지소를 거치지 않고서는 곧바로 대형 병원에서 진료받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일선 GP에 대한 포괄적 감독 권한을 갖는 곳이 바로 PCT다. 이런 PCT를 아예 없애고 판을 다시 짜겠다는 구상이 의료 서비스의 전체 흐름을 어느 정도 바꾸게 될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개혁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데 들어가는 예산만도 약 2조5000억 원에 이른다.

다른 한편으로는 민간 의료보험을 통해 비싼 진료비를 내는 환자를 받을 수 있는 병원 설립도 촉진할 전망이다. 물론 현재 NHS 시스템 아래서도 민간 의료보험 환자를 받는 의사가 개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는 치과, 정형외과, 안과 등 몇몇 진료과에만 국한되고 병원 규모 역시 소규모 클리닉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새로운 시스템이 가동하면 민간 병원은 훨씬 다양한 분야에서 동등한 조건으로 NHS 병원과 경쟁할 수 있다. 정부는 의사에게 최대한 자율권을 주는 것이 환자 중심적 의료 전달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조치라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급속한 고령화와 비만, 성인병 등으로 인해 점점 늘어나는 의료 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처하려면 지금처럼 중간 감독기구가 비대화된 관료적 시스템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는 반대 처지

의료 시스템 수술 영국도 칼 빼들고 ‘진땀’

한정된 정부 예산으로는 급속한 노령화로 인해 증가하는 의료 수요를 감당하기 힘든 수준에 이르렀다.

만성적 적자로 생존 위기에 직면한 NHS의 재정 문제도 개혁 당위성을 뒷받침하는 요인으로 자주 거론된다. 정부 추산에 따르면 NHS는 향후 4년 동안 환자 직접 진료와 관계없는 내부 인력 감축 및 재배치, 그리고 효율적 예산 집행 등을 통해 36조 원의 지출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가야 한다.

정부는 민간 의료보험 환자를 다루는 병원이 시장에 들어와 NHS 병원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임상 환자를 다루는 의료 수준이 자연스럽게 향상돼 환자의 만족도 또한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물론 여기엔 환자에게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병원은 문을 닫아야 한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그러나 이런 당위적 논리에도 보수당-자유민주당 연립정부는 의료 서비스 개혁의 필요성을 놓고 국민을 설득하는 데 사실상 실패했다. 당장 의회에서부터 정부가 지나치게 앞서 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원 보건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정부 개혁안이 NHS 재정 긴축이라는 당초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개혁 대상’으로 전락해 당장 일자리를 잃게 될 전략보건청과 PCT를 중심으로 하는 공무원 노조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PCT는 전국적으로 100만 명의 인력을 거느린 초대형 조직이다. 보수당의 시장주의적 개혁 노선에 반대하는 노동조합 진영과 이들이 연대하면서 의료 서비스 개혁은 초반부터 강력한 저항에 직면했다.

이들 반대론자는 보수당의 의료 서비스 개혁이 궁극적으로 의료 민영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공격한다. 일부에서는 정부의 이번 의료 서비스 개혁 작업을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총리 시절 보수당 정부가 밀어붙였던 전기와 가스 산업 민영화 작업에 빗대기도 한다.

이들은 민간 병원의 시장 진입이 자유로워지면 NHS는 ‘돈이 될 만한’ 환자를 모두 민간에게 빼앗긴 채 치료 비용이 비싼 중증 환자만 떠안아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내몰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이러한 상황이 거듭되면서 경쟁력을 상실한 NHS 병원은 문을 닫고 말 것이라는 게 반대론자들이 내세우는 논리다. 경쟁을 통한 서비스 질 향상이라는 정부의 주장과는 정반대되는 시나리오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렇듯 민영화 시나리오가 많은 영국인을 불안하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의 영국인은 재정 적자와 노후한 시스템이라는 문제에도 여전히 NHS의 기본 골격이 유지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정부 역시 NHS를 현대화하겠다는 계획이 민영화 작업의 첫 단추를 끼우는 것으로 비치는 상황을 극도로 경계한다. 또 연립정부의 한 축을 이루는 자유민주당에서는 이번 개혁 프로그램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공공연하게 터져 나온다.

결국 정부는 2개월 동안 국민 여론을 추가 수렴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연립 정부에서도 2013년 4월로 예정된 새로운 제도 도입 시기를 늦출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미국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가까스로 성사시킨 의료 개혁 프로그램은 정부가 국민 의료 서비스를 민간 보험업자의 손에서 되찾아오는 시도였다. 그러나 정부가 국민 의료 서비스를 반세기 넘도록 책임져 온 영국에서는 미국과 정반대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영국에서도 미국 못지않은 격렬한 논쟁이 예고됐다는 것이다.



주간동아 785호 (p52~53)

런던=성기영 통신원 sung.ki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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