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5

2011.05.02

“한뎃잠 얼마나 더 자야 하나”

일본 가설주택 겨우 2600채 완성…2500여 곳에 수용된 이재민 분노 폭발

  • 도쿄=이종각 한일관계 전문 칼럼니스트

    입력2011-05-02 12: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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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 한 달여가 지난 4월 21일. 간 나오토(管直人) 일본 총리는 후쿠시마(福島) 현 다무라(田村) 시 체육관에 마련한 피난소를 시찰하던 중 피난민으로부터 예상 밖(?) ‘봉변’을 당했다.

    피난민 몇 명만을 위로하고 10분여 만에 떠나려는 간 총리를 한 중년남성이 큰 소리로 불러 세웠다. 그는 “벌써 갑니까? 우리는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라며 눈을 부릅뜬 채 거칠게 항의했다. 옆에 있던 중년여성은 “이제 한계에 왔어요. 여기 생활이 어떤지, 내각에 있는 분들을 데려와 한번 생활해보세요”라며 울먹였다. 일본인은 대부분 불만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지만, 이들은 총리를 향해 그동안 쌓인 불만과 분노를 터뜨렸다. 텔레비전 화면으로 봐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간 총리는 “여러분과 자녀들이 빨리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연신 허리 숙여 인사한 뒤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이어 간 총리가 찾은 후쿠시마 현의 다른 피난소에선 80대 할머니가 “나 같은 고령자는 이곳에서 죽고 싶지 않다. 집에 가서 죽고 싶으니 빨리 집으로 보내달라”고 말했다. 곤혹스러운 표정의 간 총리는 “여러분이 말씀하신 것, 다시 한번 통감한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4월 17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이하 원전)를 관리하는 도쿄전력은 올해 말까지 원전 방사선량을 대폭 줄인다는 2단계 공정표를 발표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계획에 불과할 뿐 원전 안전이 언제 확보될지 알 수 없는 실정이다. 게다가 일본 정부는 4월 22일부터 방사능 누출에 따른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후쿠시마원전 반경 20km 지역을 경계구역으로 설정해 사람 접근을 법률로 금지했다. 따라서 경계구역 안에 집이 있는 피난민이 언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약 14만 명 매일매일 힘겨운 싸움



    4월 22일 도쿄전력의 시미즈 마사타카(淸水正孝) 사장은 사고 후 처음으로 후쿠시마 현 지사를 찾아가 사죄한 뒤, 인근 피난소에 머물고 있는 피난민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피난민들은 사장에게 “당신, 단보르(종이박스) 위에서 잠자는 기분을 아느냐” “망가진 아이들 인생을 돌려달라”고 힐난하면서 원전사고에 대한 분노를 폭발했다.

    이제까지 경험한 바 없는 지진, 쓰나미, 원전사고라는 삼중고(三重苦)로 피난소에서 생활하는 일본 이재민은 4월 중순 현재 13만여 명에 달한다. 피난민 대부분은 쓰나미로 집이 형체도 없이 사라진 피해를 입은 이와테(岩手), 미야기(宮城) 현과 후쿠시마원전 주변 등 동북 지방 연안부 주민이다.

    이들은 인근 학교 체육관이나 교실 등 2500여 곳에서 피난생활을 하고 있다. 동북 지방 3개 현이 아닌 아키타(秋田), 사이타마(埼玉) 현 등 주변 현으로 피난 간 경우도 있다. 피난민들은 체육관 바닥에 합판을 깔고 생활한다. 일본에서도 추운 곳에 속하는 동북 지방은 3, 4월에도 추위가 만만찮은 데다, 피난소는 수백 명 이상 집단생활을 하고 위생시설도 갖춰지지 않아 감염 위험성이 높은 편이다.

    집안의 가장은 일자리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떠나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경우도 많다. 게다가 지진으로 가족, 친지를 잃은 사람도 많아 정신적 타격이 심한 편이다. 가족 7명 중 혼자 살아남은 소녀도 있다. 이 같은 경우엔 정신과의사에게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또 피난소에서는 집단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사생활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점도 고통이다. 일본 정부는 국내 및 외국에서 온 의연금을 지진 발생 후 한 달이 지난 4월 중순에야 사망 또는 행방불명(1인당), 가옥 전파(또는 전소), 원전 피해 세대에 각 35만 엔(약 490만 원), 가옥 반파(또는 반소) 세대에 18만 엔(약 252만 원)을 1차로 지급하는 등 대처가 늦어 피난민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지진으로 파괴된 학교는 다른 지역 학교의 빈 교실을 빌려 더부살이를 하는 실정이다. 같은 학교라 해도 학년별로 2~3개 인근 학교로 분산된 경우도 있다. 통학버스로 2시간 정도 걸리는 먼 거리의 다른 학교로 이사 간 어느 농업고교의 경우, 학생들이 통학버스 안에서 첫째 시간과 마지막 시간 수업을 받는다. 그런가 하면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어 다른 학교로 전학가지 않는다는 초등학생들도 있어 부모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7만2000여 채 어느 세월에 짓나

    이 와중에 후쿠시마 현에서 인근 현으로 전학 간 학생을 방사능에 오염됐다며 그 학교 학생들이 이지메를 가한 일도 있었다. 이에 각료가 언론을 통해 후쿠시마 현에서 피난 온 사람들에 대해 방사성 누출과 관련한 근거 없는 차별 발언을 삼가도록 부탁하기도 했다.

    피난민의 건강상태도 문제다. 피난민들은 집단생활로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데다, 체육관 등의 취사시설이 빈약해 하루 두 끼를 빵이나 주먹밥으로 때우는 실정이다. 육류나 생선은 하루 한 끼가 고작이다. 비타민, 단백질 섭취가 부족해 특히 고령자나 유·소아, 임산부의 영양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는 보도다. 이같이 열악한 환경에서 피난생활이 길어지자 고령자 중에 사망자가 나오기도 했다.

    피난소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임시로 거처할 수 있는 가설주택이다. 일본 정부는 3개 현에 총 7만2000채가 필요하다고 추산하지만, 4월 25일 현재 완성된 것은 2538채에 불과하다. 터가 확보된 것은 약 5만2000채다. 간 총리는 4월 26일 국회에서 가설주택건설 부진을 추궁당하자 “8월 중순까지는 희망자 전원이 입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변했으나 주무부서인 국토교통성 측은 총리의 장담에 골머리를 싸매고 있다.

    이같이 가설주택 건설이 부진한 이유는 이와테, 미야기 현의 산리쿠(三陸) 연안은 평지가 적은 데다, 당장 주택을 건설할 수 있는 국공유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 지역은 향후 쓰나미 피해를 줄이기 위해 높은 지역에 가설주택을 지어야 한다는 방침이어서, 후보지로 적합한 곳을 찾기가 더 힘들다. 게다가 주민들은 가급적 고향을 떠나지 않으려고 해 가설주택지 확보가 더 어려운 실정이다. 그래서 미야기 현 미나미산리쿠(南三陸) 마을의 경우 3개 공립학교 운동장에 가설주택을 짓기로 결정했다. 이들 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가설주택은 재해구조법에 따라 건설은 각 도도부현(都道府縣), 부지 확보와 관리는 각 시정촌(市町村·한국의 시읍면에 해당)이 담당한다. 건설비는 한 채당 약 240만 엔(약 3360만 원)이며, 120채를 건설하는 데 3주 정도 걸린다. 피난민에게 무료로 제공하며, 수도 광열비는 입주자 부담이다. 이용 기간은 원칙적으로 2년이다.

    1995년 고베(神戶)지진 때는 공원, 학교 운동장 외에 민간 땅에 가설주택 4만8000채를 건설했다. 최초 입주는 지진 발생 17일째에 이뤄졌으며, 전체 완성까지는 7개월 정도 걸렸다. 그러나 이번 동일본 대지진은 최초 입주가 발생 30일째에 이뤄지고 건설도 늦어지고 있다. 국토교통성은 “피해 지역이 광범위한 데다 지진 발생 직후 가솔린 부족으로 자재 운반이 어려웠으며 대지 조사도 되지 않아 늦어졌다”고 설명한다.

    한국도 원전사고 같은 재난이 발생하거나, 베를린장벽이 붕괴되듯이 북한 정권이 어느 날 갑자기 붕괴돼 북한에서 난민이 밀려들 가능성이 있다. 일본의 가설주택 건설 부진을 참고로, 한국도 비상시 가설주택 건설 관련 계획을 점검해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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