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5

2011.05.02

말 없이 들어줘라 그러면 마음이 열린다

화를 진정시키는 대화법

  • 김한솔 IGM(세계경영연구원) 책임연구원hskim@igm.or.kr

    입력2011-05-02 09: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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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없이 들어줘라 그러면 마음이 열린다
    “방 과장! 어제 내가 준 기획서에 자네 시장분석자료 붙여서 부장님한테 올리라고 했잖아! 아직도 안 올렸어?” 아침부터 최 과장이 씩씩대며 방 과장에게 따진다. “아니, 그게 아니라….”상황을 설명하려는 방 과장. 하지만 최 과장의 귀는 이미 닫혔다. “뭐가 그게 아냐? 기껏 야근해서 마무리했는데, 자네가 보고를 안 한 바람에 일주일 더 늦어지게 생겼잖아!”

    최 과장의 계속되는 잔소리에 방 과장도 슬슬 짜증이 난다. 하지만 화를 꾹 참고 말한다. “최 과장, 그렇게 화만 내지 말고 내 말 좀 들어봐. 이성적으로 얘기해보자고….”상대의 오해를 풀고 침착하게 대화하길 원한 방 과장. 하지만 이 말을 들은 최 과장이 더 불같이 화를 낸다.

    “뭐? 그럼 지금까지 내가 비이성적으로 혼자 난리쳤단 거야?” ‘어라? 이게 아닌데…. 싸우기 싫어서 마음을 좀 진정시키라는 뜻이었는데….’화를 달래려다 오히려 상대의 화를 돋운 방 과장. 그는 어떻게 말했어야 하는 걸까.

    상대가 화났을 때 우리는 흔히 두 가지 행동을 떠올린다. 싸우거나 도망치거나. 이는 본능이다. 하지만 이 본능적 행동의 경지를 넘어서면‘이성적 대화’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는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감정적으로 화만 내지 마시고, 이성적으로 얘기해봅시다.”



    사람들은 상대의 화를 진정시키는 게 제대로 된‘대화’를 위한 첫걸음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대화는커녕, 오히려 상대의 화를 돋운다. 앞서 본 최 과장의 사례처럼.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그저 들어주는 것’이다. 듣는 것만으로도 화를 진정시킬 수 있다. 옛날 로마사람들은 부부싸움이 격해지면‘비리플라카 여신의 신전’을 찾아갔다. 신전에 “4주 후에 만납시다” 같은 해결책을 내려주는‘신구’선생님이 있는 게 아니었다.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부부싸움을 해결하는 방법은 있었다. 잔뜩 화난 부부가 여신상 앞에서 각자의 분노를 쏟아내는 것인데 한 사람이 자신의 화를 쏟아낼 때 옆에 있는 다른 한 명은 반드시 침묵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 사람이 말을 끝내면, 다른 한 사람이 말을 시작했는데 이런 방식으로 서로 지칠 때까지 여신을 상대로 방백했다. 이것이 어떻게 갈등을‘해결’하는 것일까. 속 얘기를 하다 보면 마음이 후련해지고, 상대에 대한 증오가 어느 정도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상대를 이해할 수도 있다.

    우리는 뭔가에 대해‘불만’이 있기 때문에 화를 낸다. 그리고 화는 기본적으로‘분출’돼야 한다. 그런데 화가 난 상대에게‘진정하세요’라고 말하는 건 상대의 정당한 불만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다. 상대의 불만이 나 때문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지금 내 앞에 있는 상대는 그‘불만’에 대해 존중받고 싶어 한다는 것, 그리고 나는 그 상대와의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당신과 얘기하는 상대가 잔뜩 흥분한 채 화를 내고 있는가. 그렇다면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기다려라. 그리고 상대의 말에 귀 기울여라. 그럼 상대의 마음도 스르륵 열릴 것이다. 이솝우화 속 나그네의 옷을 벗긴 건 바람이 아니라 해였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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