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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신밍’은 영사관 내 금기어 … 오리발 내밀던 남자들 수치와 굴욕을 너무 몰랐다

동아일보 김지현 기자의 ‘상하이 스캔들’ 특종 취재기

  • 김지현 동아일보 기자 hk85@donga.com

‘덩신밍’은 영사관 내 금기어 … 오리발 내밀던 남자들 수치와 굴욕을 너무 몰랐다

‘덩신밍’은 영사관 내 금기어 … 오리발 내밀던 남자들 수치와 굴욕을 너무 몰랐다
부르튼 입술, 야윈 얼굴. 초췌했다. 표정에는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듯했다. 3월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지식경제부 소속 K 전 상무관. 그는 힘겹게 입을 뗐다.

“영사끼리도 평소 ‘덩신밍(鄧新明)’이란 이름 석 자는 함부로 언급 안 했어요. 영사관에서 일종의 ‘금기어’였던 셈이죠.”

그렇게 시작한 K 전 상무관의 이야기는 2시간 남짓 이어졌다. 긴장한 탓인지 그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날 그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그동안 ‘설마’ 했던 소문을 사실로 확인시켜줬다.

최근 ‘상하이 마타하리’ 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중국 상하이 주재 한국총영사관에서 최근까지 근무했던 김정기 전 총영사를 비롯해 여러 명의 영사가 문제의 여인인 덩씨와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기밀을 유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K 전 상무관도 이들 중 한 명이다.

거짓말 같던 이야기



기자가 이번 사건을 처음 접한 것은 지난 2월 중순이다. 지인을 통해 제보자를 소개받았고, 그로부터 사건의 개요를 전해 들었다. 행정고시 출신의 ‘엘리트’ 영사들이 정체조차 파악되지 않은 한 중국 여인에게 줄줄이 ‘털렸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처음 들었을 때 쉽게 믿기 어려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취재를 시작했다. 상하이에 주재하거나 임기를 마치고 국내로 돌아온 영사, 그리고 상하이 교민 등이 주요 취재 대상이었다. 취재를 진행하면서 전해 들은 이야기는 허무맹랑한 소문이 많았다. 특히 ‘덩샤오핑(鄧小平)의 손녀’ ‘상하이 당서기 조카’ ‘상하이 부시장급 고위 관료’ 등 덩씨에 대한 이야기는 근거 없이 떠도는 이야기 수준이었다. 황당한 나머지 웃음이 나올 때도 적지 않았다.

잠시 ‘이쯤에서 접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덩의 남자’, 바로 이번 사건에 연루된 전직 영사를 하나 둘씩 접촉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의혹은 점점 사실로 드러났다. 심증을 굳힐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K 전 상무관과의 인터뷰였다.

K 전 상무관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행시에 합격한 뒤 정부부처에서도 주요 보직을 맡는 등 전도유망한 공무원이었다. 기자는 K 전 상무관이 덩씨에게 써준 각서를 갖고 있었다. 각서 내용은 이미 알려진 것처럼 ‘만일 제 사랑이 변하면 손가락 1개와 1억 원을 주겠다’는 것.

사실관계를 확인하려고 기자가 K 전 상무관에게 처음 전화를 한 것은 만나기 이틀 전인 3월 4일. 마침 친구와 술을 마시다 전화를 받은 그는 “일파만파로 퍼질 수 있는 사건”이라며 “국가적 차원을 고려해 기사화는 신중히 고려해달라”고만 말하고 선뜻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다시 전화가 걸려온 게 6일이다. 교회에 다녀왔다는 그는 오해를 풀고 싶다며 먼저 만나자고 했다.

인터뷰 내내 K 전 상무관은 “각서는 덩씨로부터 협박을 받아서 쓴 것일 뿐 절대 불륜은 없었다”고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서는 적극 부인했다. 그러면서도 덩씨의 능력은 인정한다고 했다. 덩씨가 실제 외교 업무 과정에서 큰 도움을 줬다는 것.

“(2008년 8월) 발령 직후 어쩌다 보니 제 이삿짐이 밀수품으로 의심을 받은 일이 있었어요. 한국 영사라고 말해도 전혀 해결되지 않던 일이 덩씨의 전화 한 통으로 바로 해결되더군요.”

당시 K 전 상무관은 다른 영사를 통해 덩씨의 도움을 받았다. 얼마 후 그는 감사 인사차 시내의 한 고급 음식점인 ‘시자오빈관(西郊賓館)’에서 덩씨를 처음 만났다. K 전 상무관은 “와인 한 병을 시켜놓고 앉아 있는데 한눈에도 기(氣)가 느껴졌다”고 덩씨를 처음 본 인상을 말했다.

K 전 상무관은 그 후 지난해 5월 상하이 엑스포 기간까지 한 달에 한두 차례 연락을 주고받다가 엑스포 이후 연락을 줄였다고 했다. 하지만 K 전 상무관의 주장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의문이었다. 주변 취재 과정에서 K 전 상무관이 지난해 11월 귀국하기 전까지 덩씨와 매우 가깝게 지낸 것으로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대체 鄧은 누구일까

‘덩신밍’은 영사관 내 금기어 … 오리발 내밀던 남자들 수치와 굴욕을 너무 몰랐다
3월 초, 사건 취재를 시작한 지 10여 일이 지났지만 덩씨의 정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취재 과정에서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실이 올해 1월부터 이 사건의 조사에 착수한 사실을 확인했다. 정부 쪽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보다 정확한 취재를 위해 가장 최근까지 상하이 총영사관을 책임졌던 김정기 전 총영사를 만나야 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기사 보도 전이라 국무총리실에서는 “김 전 총영사는 3일 이임식 이후 자연인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조사 대상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조사 여부를 떠나 지난해 11월 상하이에서 벌어졌던 정확한 사건 개요를 파악하려면 김 전 총영사를 만나야 했다.

김 전 총영사와 전화통화가 이뤄진 것은 3월 7일. 인터뷰에 선뜻 응했다. 2시간 뒤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 바. 김 전 총영사는 자신도 루머에 포함될까 우려된다며 직접 써온 10여 쪽의 소명자료를 내놨다. 그는 “나는 덩씨로부터 직접 도움을 받은 적이 없다. 다만 나중에 보고를 받고 함께 일하던 영사들이 덩씨와 자주 연락하며 도움을 요청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소명자료에 따르면 2008년 신정승 당시 주중대사의 상하이 당서기 및 시장 동시 면담부터 국군 포로·탈북자 11명 동시 송환 등의 성과까지 모두 덩씨 덕분이라고 했다. 자신 밑에서 일하던 영사들의 ‘스캔들’에 대해서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많이 의지하다 보면 덩씨에게 매력을 느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을 흐렸다.

덩씨와 자주 접촉한 것으로 알려진 영사는 또 있었다. 외교통상부(이하 외교부) 소속 P 전 영사와 법무부 소속 H 전 영사, K 전 경찰영사 등이었다.

‘덩신밍’은 영사관 내 금기어 … 오리발 내밀던 남자들 수치와 굴욕을 너무 몰랐다

김정기 전 상하이 총영사, 법무부 소속 H 전 영사, 외교부 소속 P 전 영사(위부터).

외교부 7급 공채 출신의 P 전 영사는 이 사건과 연루된 다른 영사들보다 1년 이상 이른 2009년 8월 한국에 들어왔다. 이번 사건에 대한 첫 보도가 나간 8일, 그는 동아일보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덩씨와의 불륜 의혹에 대해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덩씨에 대해 언급하기를 극도로 꺼리던 그는 인터뷰 중 덩씨를 ‘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덩씨를 덩샤오핑 전 중국 최고지도자의 손녀로 보느냐는 질문에도 “그렇다”고 말했다. 이어 “업무상 의전 등을 위해 공항 출입을 자주 했다. (덩씨는) 위에 있는 사람이니까 누가 오가는지 보고 관심이 가면 연락을 해오는 식으로 만나게 됐다”고 설명했다.

P 전 영사는 2009년 귀국 후에도 덩씨를 만났다고 했다. 그는 “2009년 한국에 돌아온 뒤 덩씨가 개인적인 볼일이 있다며 서울을 찾았을 때 만났다”면서 “덩씨가 워낙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해 함께 남산에서 사진만 찍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H 전 영사는 접촉이 불가능했다. 법무부 자체 조사 방침에 따라 국무총리실 조사 대상자에서도 제외됐다. 그는 1월 초 사표를 내고 현재 중국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을 통해 덩씨에 대해 확인한 것은 그가 중국 고위 정부 관료들과 인맥이 닿는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번 사건을 취재하면서 가장 먼저 사실관계에 도움을 청했던 취재원은 K 전 경찰영사였다. 그는 2월 말 첫 통화에서 덩씨에 대해 “그리 대단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 사기꾼은 아닌 여자”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요 일간지에서 터뜨릴 만한 뉴스는 아니다”라고 단정지었다. 다음 날 다시 전화를 걸어온 K 전 경찰영사는 “위에 보고하면 아마 킬(kill·기사화하지 않는다는 의미)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보도가 시작된 지 나흘 만인 10일 외교부 장관은 뒤늦은 사과를 했고, 정부는 ‘상하이 마타하리’ 사건을 전면 재조사하겠다는 입장을 공식 발표했다.



주간동아 2011.03.14 778호 (p14~15)

김지현 동아일보 기자 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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