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1

2011.01.17

동국大가 신춘문예 휩쓰는 까닭

다수의 당선자 3년 연속 배출 … 현업 작가와 교류, 다양한 장르 접하며 실력 키워

  • 박혜림 기자 yiyi@donga.com

    입력2011-01-17 11: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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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국大가 신춘문예 휩쓰는 까닭


    작가가 되는 길은 여러 가지지만 신춘문예는 여전히 문인으로 등단하는 주요 등용문으로 여겨진다. 매년 신춘문예 응모자 수를 보면 그 치열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한 이만 2505명에 이를 정도. 이런 가운데 최근 3년간 동국대가 동아일보, 조선일보, 한국일보 등 주요 언론사 신춘문예에서 다수의 당선자를 배출해 주목을 끈다. 동국대 출신의 당선자는 2009년에는 8명, 2010년에는 3명, 2011년에는 4명. 매년 여러 문학상과 문예지를 통해 등단하는 이도 10여 명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동국대 문예창작학과(이하 문창과) 소속. 도대체 이들은 어떻게 이렇듯 탁월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문창과 출신 문인 지망생 수 자체가 증가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과거에는 문창과가 있는 대학이 서라벌예대(현 중앙대 소속)와 서울예전 단 2곳이었지만, 1990년대 이후 전국적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문학평론가 정과리 씨는 “수가 늘어나는 것에 더해 문창과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내용 또한 점점 전문화하면서 단기간에 문장력, 표현력 등 문학적 기교를 익힌 사람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이러다 보니 과거에는 언론사 신춘문예 최종심에 오른 작품 중 10~20%가 문창과 출신의 글이었다면, 최근에는 80~90%가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한 대학에서 다수의 당선자를 3년 연속으로 배출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서로의 작품 놓고 치열한 토론

    동국대 문창과 교수들은 주요 요인으로 동문 간의 끈끈한 유대를 꼽았다. 1906년에 설립된 동국대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녔는데 이는 곧 한국 근현대 문학사와 맥을 같이한다는 것. 만해 한용운을 비롯해 신석정, 서정주, 조지훈, 조정래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인이 동국대 출신이다. 문창과 학과장 장영우 교수는 동문 간의 강한 결속력이 드러나는 대표적인 예로 1977년부터 이어져오는 ‘창작교실’을 소개했다. 창작교실은 3박4일 동안 선후배가 합숙하며 작품 합평회를 여는 행사다. 문창과 박성원 전임강사의 설명은 좀 더 구체적이다.



    “60년대 학번부터 여러 세대의 선배들이 창작교실을 찾는다. 대학에 갓 입학한 신입생이나 재학생은 대선배들과 교류하며 문인이 될 수 있다는 용기와 학교에 대한 자부심을 얻는다. 타 대학의 경우에도 선후배 간 교류가 활발하지만 쉰 살 이상 차이가 나는 선후배가 자주 만나는 일은 매우 드물다.”

    동국대 문창과는 학생들이 시, 소설, 희곡, 독서 중 원하는 분야를 택해 분과활동을 하게 한다. 등단한 졸업생이나 재학생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제도가 바로 이 분과활동. 학생들은 일주일에 한 번 분과 소속 선후배와 모여 서로의 작품을 두고 합평회를 연다. 문창과 04학번 유계영(26·2010년 현대문학 신인상 시 당선) 씨와 01학번 최문애(31·200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 씨는 대학시절을 통틀어 분과활동이 가장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시 분과에서 활동한 유씨는 “창작 동아리, 학회 등의 창작 모임은 타 대학 문창과 학생도 많이 한다. 하지만 분과활동은 동국대만의 특징”이라며 “치열하게 학생, 교수, 현역 작가들과 토론을 하다 보니 정규수업보다 더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희곡 분과에서 활동한 최씨는 이렇게 회상했다.

    “선배들이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거치며 만든 커리큘럼과 여러 작법 노하우 등을 전수받았다. 또 1년에 한두 번 분과 소속 선후배와 직접 창작극을 무대에 올렸다. 희곡을 쓰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배우, 연출 등 다양한 역할을 하다 보니 더 좋은 희곡을 쓰게 됐다.”

    동국대 문창과는 원래 국어국문학과에 속한 세부 전공이었다. 학교 측은 문학 부분을 특성화하기 위해 1996년 국어국문학과를 국어국문학부로 확대 개편했다가 2001년부터 문창과를 독립시켜 아예 예술대학 소속으로 변경했다. 10여 년 동안 시, 소설에만 중점을 두던 커리큘럼 역시 희곡,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에 고르게 집중할 수 있도록 바꾸고 학생들에게 여러 문학 장르를 넘나들며 공부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최씨는 “타 대학은 시, 소설 장르에만 중점을 두거나, 한 분야만 집중적으로 파게 하는 경우도 있다”며 “실제 작품활동을 하면서 문학에 경계가 없다는 말을 실감했고 여러 장르를 공부한 것이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필洞 지리적 특성도 한몫했나

    동국大가 신춘문예 휩쓰는 까닭

    동국대 명진관. 2010년 문예지 신인상 수상자와 2011년 신춘문예 당선자를 축하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동국대의 이런 분위기는 최근 학생들이 희곡, 동화 등을 비롯해 스토리 공모전, 게임 시나리오 공모전 등 다양한 문학 장르에서 수상을 하는 데 초석이 됐다. 여러 대학 문창과에서 강의를 해온 한 작가는 “학생마다 재능을 보이는 문학 장르가 다양한데도 일부 교수는 자신의 문학 스타일과 다른 새로운 것은 잘 인정하지 않는다”며 “동국대 문창과는 여러 장르에 개방적인 편으로, 학생 개개인의 재능과 소질을 찾아 그에 맞게 특화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고 귀띔했다.

    타 전공자들과의 교류가 활발한 점을 꼽는 이도 있었다. 문창과 06학번 라유경(24·201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씨는 동국대 문창과가 예술대학 소속이다 보니 영화, 연극, 미술 등을 전공하는 학생들과 자주 수업을 들었고, 그 덕분에 남다른 감성을 키울 수 있었다. 99학번 조현진(30·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 씨는 불교학과에서 공부하는 스님들과 함께 공부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조씨는 “스님이 쓴 소설과 시를 읽어볼 기회가 흔하겠느냐”며 “문창과 친구들이 쓴 글과는 또 다른 자극을 준다”고 전했다.

    손홍규·백가흠·윤고은(소설), 이원·박형준(시), 홍석진·김윤미(희곡), 배세영(시나리오) 등은 현직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대표적인 작가다. 동국대 문창과는 적극적으로 이들을 강사로 초빙하고 있다. 현역 작가들이야말로 시대적 흐름을 가장 잘 포착하는 주역이기 때문. 문학평론가 김미현 씨는 최근 신춘문예 당선자 중 동국대 출신이 많은 이유를 같은 맥락에서 찾고 있다.

    박성원 강사는 “타 대학도 이런 흐름을 따르지만 강사와 학생들과의 개인적인 접촉을 특히 강조한다”고 설명했다. 재학생 신분으로 등단한 라유경 씨는 “현직 작가를 자주 만나고 작품에 대한 피드백을 받다 보면 ‘작가가 되는 길이 멀기만 한 것은 아니구나’ 하고 큰 용기를 얻는다”고 말했다. 재학생으로 문예지 신인상을 받은 문창과 08학번 이지영(22·2010년 현대문학 신인상 소설 당선) 씨 역시 ‘자신이 글을 쓰고 싶은 마음만 있으면 언제든 현역 작가에게 조언을 얻을 수 있는 환경’을 모교의 강점으로 손꼽았다.

    매년 연말이면 신문사 신춘문예를 비롯해 각종 문학상이 응모작을 모집한다. 동국대 문창과는 거사(巨事)를 앞두고 학생들의 작품을 집중 지도한다. 최근 들어 신춘문예, 문학상 등이 선호하는 뚜렷한 경향이 사라지고 있지만 신춘문예는 정통성을, 문학상은 실험정신, 참신함 등을 중시하는 편이다. 장영우 교수는 “교수와 강사들이 학생을 직접 만나 개개인의 작품을 보며 살려야 할 개성과 보안할 점을 적극 지도한다”고 설명했다.

    흥미롭게도 서울 중구 필동에 자리한 동국대의 지리적 특성을 언급한 이도 꽤 있었다. 필동은 붓골을 한자어로 표기한 것이다. 동국대 뒤편에 있는 남산과 주변의 장충공원, 한옥마을 등의 환경도 문인 지망생의 영혼이 영그는 데 좋은 자양분이 된다는 설명. 기자가 만난 당선자들은 다들 남산에 벚꽃이 필 때 야외 수업을 하며 서로의 글을 자유롭게 평가하던 낭만적인 학창시절을 추억했다. 박성원 강사는 동국대가 서울시 가운데 자리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문화를 흡수하고 재생산하는 것은 창작활동에 중요하다. 동국대에서 조금만 나가면 남산이 있고, 명동이 있다”며 지리적인 영향도 있을 것이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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