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1

2011.01.17

올해도 고수익 랩 전성시대?

10개 남짓 종목에 집중투자…위험도 커 자문사·증권사 꼼꼼히 따져봐야

  • 신희은 머니투데이 증권부 기자 gorgon@mt.co.kr

    입력2011-01-14 17: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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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도 고수익 랩 전성시대?
    지난해 한국 증시를 출렁이게 한 최대 이슈는 무엇일까. 유럽발 재정위기,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옵션 만기일 쇼크, 스마트폰 열풍 등 이슈가 적지 않았지만 37개월 만의 코스피 2000 돌파를 빼놓을 수 없다. 그동안 코스피는 계속되는 주식형펀드 환매로 번번이 2000 문턱에서 고배를 마셨다. 어렵게 돌파한 2000선은 기업 실적 개선을 높이 산 외국인들의 매수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2007년 코스피 고공행진의 주인공이 펀드 붐을 몰고 왔던 개인이었다는 점과 다르다.

    펀드 환매자금 무섭게 빨아들여

    국내 자금을 등에 업은 펀드는 코스피가 사상 최고 수준을 넘나들던 2007년 11월 100조 원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2008년 8월에는 144조 원을 넘어서며 정점을 향해 치달았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로 반 토막 계좌가 속출하면서 ‘펀드런(펀드환매)’이 이어졌다. 인기가 시들해진 펀드를 대신해 다크호스로 떠오른 대안이 ‘자문형 랩어카운트’(이하 자문형랩)다. 자문형랩은 펀드 환매자금을 빠르게 빨아들이며 돌풍을 일으켰다.

    1월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우증권, 삼성증권, 우리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현대증권 등 10여 개 주요 증권사의 자문형랩 잔고는 2010년 12월 말 기준 5조670억 원에 달했다. 대우증권이 2010년 3월 말 주요 증권사를 대상으로 자체 집계한 잔고가 5300억 원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10개월 만에 10배나 증가한 셈이다. 자문형랩의 강자로 떠오른 삼성증권은 2010년 말 잔고가 2조 원을 넘어서 전체 잔고의 절반 수준을 차지하고 있다.

    자문형랩은 펀드와 마찬가지로 직접투자가 아닌 ‘간접투자’로 분류된다. 차이점은 펀드가 엄격한 투자자 보호와 분산투자 원칙을 고수해야 하는 것과 달리, 자문형랩은 소수 종목에 집중 투자하도록 허용한다는 것이다. 운용 자율성이 높은 일종의 사모펀드라고 보면 된다. 자문형랩은 자산편입 비율 규제에서 자유롭다 보니 시장 흐름에 따라 주식, 채권 등 다양한 상품에 투자해 단기간에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다. 일부 자문형랩은 30~50개 종목에 분산투자하는 펀드와 달리, 10개 안팎의 종목에 집중 투자해 수개월 만에 20~30%의 수익률을 거두기도 했다.



    고수익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한국창의투자자문, 브레인투자자문, 케이원투자자문 등 자문형랩의 투자 자문을 담당하는 자문사가 주목을 받았다. 자문사를 연 지 15개월 남짓한 기간에 계약액이 1조6000억 원을 돌파한 브레인투자자문의 박건영 대표는 지난해 한국 증시를 움직인 주요 인물로 떠올랐을 정도다. 이뿐 아니라 자문사들이 집중 편입한 종목을 일컫는 ‘7공주’ ‘4대 천왕’ 등 유행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LG화학, 하이닉스, 기아차, 삼성전기, 삼성SDI, 삼성테크윈, 제일모직, OCI, 고려아연, 현대제철, 한진해운 등 종목은 자문형랩에 집중 편입되면서 단기 급등해 코스피 2000 돌파를 견인했다.

    자문형랩 돌풍 요인은 선택과 집중에 따른 높은 수익률에 있다. 10개 남짓한 종목에 집중 투자하다 보니 해당 종목의 상승률이 높을 경우 직접적인 수혜를 볼 수 있다. 투자자 처지에서는 펀드에 비해 자신의 자금이 투자되는 종목과 수익 현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자문형랩은 증권사 계좌를 통해 운용 현황과 수익을 손쉽게 조회할 수 있다. 서울 강남권의 거액 자산가를 중심으로 사모펀드에 이어 자문형랩 투자 열풍이 불었던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낮은 체감수익률 해소 수단으로 각광

    올해도 자문형랩 돌풍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삼성증권, 우리투자증권 등 주요 증권사가 자문형랩 잔고를 10조 원까지 확대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고 투자자들의 수요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향후 자문형랩으로 들어올 자금의 잠재력이 크다고 본다”며 “1억 원 이상 자산을 예탁한 고객이 7만7000명 정도인데 자문형랩 고객은 1만 명 수준이라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증권 전문가들도 당분간 자문형랩이 히트상품 자리를 지킬 것으로 전망한다. 코스피가 2000을 돌파하는 강세장에서도 개인 투자자들이 느끼는 체감수익률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시중 유동자금이 주식시장에 들어온다면 자문형랩의 인기는 더 올라갈 것으로 기대했다. 익명을 요구한 투자자문사 관계자는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유망 펀드에 투자했다가 영문도 모른 채 막대한 손실을 입은 경우가 많은데, 자문형랩은 그런 위험을 해소해주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반 투자자들도 자문형랩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 손실 위험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자문형랩은 펀드와 달리 고위험 상품인 탓에 자칫하면 큰 손실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증시가 기업 실적 둔화나 글로벌 유동성 위축 등으로 조정을 받을 경우 대규모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건영 대표는 최근 거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비공개 강의에서 “올해 주식시장 활황을 점치는 전문가가 많고 지수가 쉽게 꺾일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중국발 위기가 올 가능성도 있어 유동성 추이를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증시 하락, 손실 우려에도 자문형랩 가입으로 높은 수익을 거두려면 상품의 과거 수익률에만 연연하지 말고 자문사와 증권사의 역량을 꼼꼼히 살피는 노력이 필요하다. 과거의 수익률이 미래를 담보해주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특히 상승장일수록 앞으로 증시가 조정을 겪더라도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안전판을 갖춘 상품에 투자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자문사가 종목 발굴을 제대로 하는 인력을 갖췄는지, 증권사가 자산 배분을 효율적으로 하는 역량을 가졌는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증권사에서 제공하는 운용제안서를 통해 증권사와 자문사의 인력과 경력, 운영시스템 등을 사전에 점검할 필요도 있다. 한국투자증권 신금호 고객자산운용부 부장은 “2009년 한국투자증권과 삼성증권이 자문형랩 시장에 뛰어든 이후 후발 증권사들이 경쟁적으로 시장에 진입했다”며 “상승장에서는 운용 및 리스크 관리 능력이 비슷해 보이지만 하락장에서는 경험을 통해 쌓은 역량이 각각 다른 만큼 차별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동일한 자문사를 통해 종목을 추천받는 랩이라도 증권사 운용방식에 따라 리스크 정도가 다를 수 있기에 꼼꼼히 체크해야 한다. 최종 운용은 증권사 몫이기 때문에 운용에 수반하는 리서치, 투자 컨설팅 등의 지원과 인프라를 갖춘 곳을 택하는 것이 좋다. 삼성증권 문진철 포트폴리오운용팀 과장은 “자문형랩이 10~15개의 소수 종목에 압축 투자를 하다 보니 하락장에서 큰 손실을 볼 위험이 있는 만큼, 하락장에 대비해 채권 등 안정형 상품에 유연하게 투자하는 역량을 갖췄는지도 눈여겨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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