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6

2010.12.13

오바마 “관타나모? 아, 뒷골 땅겨”

수감자 민간법정 세우자니 보수층 반발 … 풀어주려니 또 다른 인권침해 우려

  •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정치학 박사 kimsphoto@hanmail.net

    입력2010-12-13 11: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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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바마 “관타나모? 아, 뒷골 땅겨”

    미국의 골칫거리가 된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8년(2001년 1월~2009년 1월) 동안 21세기 초강대국인 미국의 국군통수권자로서 3개의 큰 전쟁을 치렀다. 아프가니스탄 전쟁(2001년), 이라크 전쟁(2003년),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war on terror)’이 그것이다. 2001년 9·11테러 후 부시가 벌여온 테러와의 전쟁은 ‘전쟁-종전 협정-평화’라는 고전적인 등식과는 달랐다. 전 세계 반미 저항세력을 상대로 벌이는 21세기의 ‘새로운 전쟁’이었다. 부시는 테러리스트의 뿌리를 뽑을 때까지 전쟁을 벌이겠다고 기세등등하게 말해왔다. 그러나 후임자인 버락 오바마는 대통령 취임 뒤 지금껏 ‘테러와의 전쟁’이란 말조차 입에 담지 않는다. 그저 ‘특수작전(special operation)’ 등으로 바꿔 부른다. 왜 그럴까? 전임자의 전쟁 수행방식이 낳은 부정적인 평가 탓이다.

    국제법 실종된 곳 174명 수감 중

    테러 연구자들의 실증적 조사에 따르면, 부시의 테러 전쟁이 오히려 9·11 전보다 테러 건수를 늘렸다.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이 마구잡이 검속과 물고문을 비롯한 가혹행위, 변호사 접견도 없는 장기간 구금 등 인권침해 논란을 일으킨 탓에 반미감정만 증폭시켰다는 분석이다.

    특히 이라크 바그다드 외곽의 아부그라이브 감옥과 쿠바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에 대해 ‘인권의 사각지대’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나 그런 비판에 부시는 동의하지 않는다. 11월 9일 미국 서점에 모습을 드러낸 부시의 자서전 ‘결정의 순간들(Decision Points)’에서 물고문 심문기법을 자신이 승인했음을 인정하면서도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테러 용의자에 대한 물고문은 미국민의 안전을 위해 불가피한 것으로, 이제 다시 결정을 내리더라도 똑같이 할 것이다. 테러 용의자들이 물고문을 당했지만 그런 결정이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렸다고 지금도 확신한다.”



    부시의 이런 주장을 담은 회고록에 대해 인권운동단체들이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 국제 사형폐지운동단체 ‘리프리브’(Reprieve·집행유예)는 “부시 전 대통령이 고문을 승인함으로써 세계를 더 위험한 곳으로 만들었으며, 미국의 고문이 바이러스처럼 퍼졌다”는 성명서를 내놓았다.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 AI) 등 인권단체 활동가들은 부시가 제네바협약(1949년)을 비롯한 전쟁 관련 국제법에서 금지하는 전쟁 포로에 대한 물고문을 지시했다고 시인함으로써 ‘범죄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확인된 만큼 언젠가 국제법에 따라 기소될 가능성이 있다고 여긴다.

    이는 ‘반인류적인 전쟁범죄를 저지른 자들은 국적과 시효에 관계없이 처벌돼야 한다’는 국제법상의 이른바 보편적 사법권(universal jurisdiction) 논리가 국제사회에서 힘을 얻어가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전임자인 부시가 저질러놓은 ‘테러와의 전쟁’ 뒤처리로 골치가 아프다. 다름 아닌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힌 수감자 문제다. 탈레반과 알 카에다 관련 25명의 용의자가 관타나모 기지에 닿은 것은 2002년 1월 11일. 한창 많을 때는 770명이 수용돼 있었다. 그중 상당수는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유럽 국가나 파키스탄 출신의 무슬림으로 ‘알 카에다 관련 용의자’로 몰려 고생을 겪어야 했다. 수감자들은 오랫동안 재판이나 변호사 접견도 없이 갇혀 지냈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관타나모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국제사면위원회는 관타나모 수용소를 “우리 시대의 굴라그(gulag)”라 규정했다. 옛 소련 시절 정치범을 가둬 강제노동을 시켰던 악명 높은 굴라그 수용소나 다름없다는 비판이다. 국제법학자들도 관타나모를 ‘국제법이 실종된 블랙홀’이라 비난해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1월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1년 안에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를 명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그동안 600명 넘는 사람이 관타나모에서 풀려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고, 2010년 11월 현재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힌 수감자는 174명.

    그러나 미 군부와 공화당을 비롯한 보수층은 오바마의 수용소 폐쇄와 수감자 석방 결정에 비판적이었다. 상원조차 2009년 5월 관타나모 수감자들을 민간법정에 세우기 위해 미국 본토로 이송하는 데 드는 예산안을 거부했다(찬성 6, 반대 90으로 부결). 이러한 정치적 패배에도 오바마는 미국 일리노이 주 톰슨에 있는 한 교도소로 관타나모 수감자들을 이송할 계획을 추진 중이다.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쇄하고 수감자들의 조기 석방을 추진해온 오바마로선 공화당을 비롯한 보수층의 저항이 부담스럽다. 11월 17일 뉴욕에서 한 수감자에 대한 민간법정 첫 재판에서도 저항이 나타났다.

    본국행은 새 고난과 탄압 될 수도

    아메드 가일라니(36)는 1998년 케냐 및 탄자니아 미 대사관 폭탄테러 사건에서 트럭과 폭탄 부품을 대주었다는 혐의로 2004년 파키스탄에서 붙잡힌 뒤, 2006년부터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혀 지냈다. 가일라니 재판은 9·11테러가 벌어진 뒤 처음 열린 민간법정 재판이었기에 많은 관심을 끌었다. 뉴욕 연방법원 배심원단은 ‘살인’과 ‘살인 모의’ 등 286개 혐의 가운데 ‘국가재산 파괴 모의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 평결을 내렸고 나머지는 모두 ‘무죄’였다. 이 재판을 지켜보던 보수층은 “그것 봐라. 내가 뭐랬어”라며 반발했다. 또 차기 하원의 국토안보위원장 내정자 피터 킹 의원은 “이번 평결은 오바마 행정부의 잘못된 계획들을 포기하라는 경고나 다름없다. 테러리스트를 군사법정에서 재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언젠가 관타나모 수용소가 문을 닫으면, 수감자들은 어떻게 될까. 알 카에다 핵심에 관련된 몇몇 수감자를 빼고 대부분은 풀려날 것이다. 그때 그들을 어느 비행기에 태워 보낼 것인지도 오바마로서는 골치 아픈 문제다. 일부 수감자에게는 본국행이 새로운 고난과 인권탄압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집트나 우즈베키스탄 출신 수감자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면, 그곳 독재자들(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 우즈베키스탄의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이 그들을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분자’로 몰아 감옥에 가둘 확률이 매우 높다. 시리아, 예멘, 알제리 같은 곳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 국가는 세속적인 권력자들이 독재를 펴면서 체제 위협세력인 ‘무슬림 형제단’과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들의 움직임에 촉각을 세워왔다. 이런 곳에 수감자를 돌려보내면 사지로 몰아넣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렇듯 관타나모 수용소는 오바마에게 ‘뜨거운 감자’다. 관타나모 처리를 놓고 워싱턴 백악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길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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