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7

2010.10.11

게임의 룰에 복종 … 남자 축구팀위한 기도문

  • 황승경 국제오페라단 단장 lunapiena7@naver.com

    입력2010-10-11 11: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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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나라 선수지만 마치 마라도나를 보는 듯했다. 17세 이하 여자 월드컵 준결승전 북한과 일본 경기. 북한 선수 7명을 차례로 따돌리며 골문 앞으로 돌진하는 조그만 요코하마 선수(요코하마 구미)의 그 현란한 드리블, 슛! 들어갔다.

    3일 후, 이번엔 호날두를 보는 듯했다. 한국과 일본의 결승전. 3대 2로 패색이 짙던 후반 33분, 교체된 이소담(현대정보과학고)이 미드필드 중간에서 힘껏 쏜 그림 같은 장거리포는 그대로 골문에 빨려 들어갔고, 이 골은 연장전과 승부차기까지 가서 우리가 승리할 수 있었던 사실상 결정골이었다. 둘 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이번 대회 최고의 골이었다. 아니, 남자 월드컵에서도 보기 힘든 인상적인 골 아니었을까.

    첫 골을 멋있게 성공시킨 이정은(함안대산고), 통쾌한 프리킥의 김아름(포항여자전자고), 마지막 승부차기를 성공시킨 장슬기(충남인터넷고)도 대단했다. 사상 최초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여민지(함안대산고)의 골은 어땠나. 남자 경기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골이었다. 골 하나하나 시원시원하게 들어갔다. 남자 축구처럼 치사하게(?), 웃기게, 어이없게 들어가지 않았다. 그녀들에게는 할리우드 액션도 없었고, 들어갔느니 안 들어갔느니 하며 비디오 판독을 할 필요도 없었다.

    옆에서 흥분하자 ‘한 축구’하는 아버지가 거드셨다.

    “왜 저 선수들 멍청히 보고만 있어~. 달라붙지도 않고, 태클도 없고…. 한계야 한계.”



    하지만 이런 당신의 생각, 나중엔 바뀌셨다.

    “정말 잘하네, 남자 축구도 저래야 해.”

    싸우고 욕하고 반칙과 파울을 잘해야, 축구를 잘하는 줄 아는 어리석은 남자들.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프로 축구선수가 되려면 반칙도 잘해야 한다고. 그런 ‘나쁜 남자’들이 멋있기도 했고.

    하지만 그녀들은 남자들처럼 치사하지 않았다. 남자들처럼 달라붙지 않았다. 골문 앞에서 헛발질하지도 않았다. 지금까지 그들만의 발길질(스스로 엄청 잘난)보다 더 짜릿한 흥분과 쾌감을 안겨준 여자 축구를 보면서 나는 축구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렇다. ‘원래 축구는 저래야 하는 것일지 모른다’라고 보여준 축구가 아이러니하게도 아직 때 묻지 않은 17세 이하 소녀들 경기였다.

    알고 있다. ‘게임의 룰’을 지킨다는 것은 지금껏 살아보았을 때 여자들에게는 당연한 것이지만 사내들에게는 정말 어려운 것임이 틀림없다는 것을. 오늘밤 어느 영국 왕의 기도문이 생각난다.

    게임의 룰에 복종할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센티멘털(感傷)과 센티멘트(情緖)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옵소서.

    게임의 룰에 복종 … 남자 축구팀위한 기도문
    남자들, 이번 기회에 인생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이번 여자 축구를 보면서 그리고 뜨거웠던 여름을 보내며 올린 나의 짤막한 기도문이다. 경험상 들어주지는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황승경 단장은 이탈리아 노베 방송국에서 축구 전문 리포터로 활약한 축구 마니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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