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4

2010.09.13

빈 라덴 또 지하드 투쟁 촉구?

9·11테러 9주년 여전히 행방 묘연…미군 추적대에 걸리면 사살될 가능성

  •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정치학 박사 kimsphoto@hanmail.net

    입력2010-09-13 12: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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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 라덴 또 지하드 투쟁 촉구?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미국 뉴욕 맨해튼은 동서로 허드슨 강이 흐르고, 고구마처럼 남북으로 길게 뻗은 모습이다. 맨해튼에는 국제정치의 중심기구인 유엔(국제연합) 본부와 세계 금융을 쥐락펴락하는 월스트리트 등이 자리한다. 월스트리트 금융가에서 몇 분만 걸어가면 2001년 9·11테러를 당했던 세계무역센터의 재건축 현장이 나타난다. 2749명의 희생자를 낸 110층짜리 건물이 서 있던 자리에는 2015년까지 모두 5개의 고층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올해 1월 뉴욕에 들른 길에 이곳에 가보니, 대서양 쪽에서 불어오는 겨울바람에 아랑곳없이 많은 사람이 작업복에 안전모를 쓰고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오랫동안 못 잡아 음모론 확산

    3000명 가까운 목숨이 희생된 9·11테러에 미국인이 받은 충격은 엄청났다. 지금까지 그 악몽과 테러의 두려움으로 신경정신과 상담을 받는 사람들도 있다. 9·11테러가 일어났을 때 늦깎이 공부를 하느라 맨해튼에 머물던 필자는 그곳 하늘을 뒤덮은 연기와 매캐한 냄새를 잊지 못한다. 문제는 당시 많은 미국인이 9·11테러가 왜 일어났는지 그 배경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이 아메리칸드림을 이루려고 이곳으로 몰려드는데, 왜 그들은 우리를 미워하는가?”

    필자와 함께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밟던 백인 학생조차 이렇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21세기 문턱인 2001년 9·11테러의 비극이 벌어지고 9년이 흘렀다. 테러의 기획자이자 주역인 오사마 빈 라덴(테러조직 알 카에다 지도자)은 아직껏 미국에 잡히지 않은 채 잠행 중이다. 그의 목에는 5000만 달러의 현상금이 걸렸지만, 워낙 오래 끌다 보니 이제는 ‘음모론’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빈 라덴 관련 음모론에는 여러 버전이 있다. 누리꾼 사이에 가장 그럴듯하게 퍼진 음모론의 뼈대를 추리면 ‘빈 라덴은 건강이 좋지 않아 이미 죽었다. 그런데도 오바마 행정부는 올 들어 아프가니스탄에서 강화하는 전쟁을 정당화고자 그가 살아 있는 것처럼 꾸미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음모론은 말 그대로 음모에 바탕을 둔 것이고, 어디까지나 허구의 이야기일 뿐이다.



    9·11테러 후 지난 9년 동안 빈 라덴과 측근 아이만 알 자와히리(이집트 출신의 의사로 알 카에다의 2인자)는 모두 40회에 걸쳐 그들의 육성 메시지를 밝혔다. 대부분 아랍계 위성방송인 알 자지라 방송을 통해서다. 빈 라덴이 살아 있는 것은 물론, 미국과 서방세계를 겨눈 투쟁의지를 포기하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증거가 바로 언론매체를 통한 육성 메시지다. 빈 라덴이 깜짝 메시지를 발표할 때마다 세계의 눈과 귀는 그에게 쏠렸고, 그의 존재감을 새삼 확인했다.

    가장 최근에 나온 빈 라덴의 육성 메시지는 올해 3월 알 자지라 방송을 통해 공개된 성명.빈 라덴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아프간에 병력을 증파하는 등 부시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고 있고, 미국 정치인들 또한 팔레스타인 영토를 점령한 이스라엘을 지원한다”는 비난을 퍼부었다. 그는 9·11테러 용의자들이 미국에서 사형당할 경우 “우리 손아귀에 들어오는 당신들(미국인) 누구든지 처형할 것”이라는 경고도 덧붙였다. 빈 라덴이 언급한 인물은 9·11테러 사전공모 혐의로 2003년 파키스탄에서 붙잡혀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로 압송된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다. 그는 파키스탄 출신의 쿠웨이트 국적자로, 미 정보당국에선 빈 라덴과 아이만 알 자와히리에 이어 알 카에다 서열 3위로 꼽아왔다. 지난해 11월 에릭 홀더 미 법무장관은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가 뉴욕에서 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보안 문제를 걱정한 뉴욕 시의 반대로 재판이 미뤄진 상태다. 9·11테러 관련 재판이 뉴욕에서 열리는 것은 사건 발생지에서의 재판이므로 법률 논리상 합리적이다. 그렇지만 많은 뉴욕 시민은 그 재판으로 ‘뉴욕에 대한 또 다른 테러 위협’이 늘어날 것을 걱정한다.

    ‘이슬람 율법’과 다름없는 목소리

    빈 라덴 또 지하드 투쟁 촉구?

    아프가니스탄 파르완 주와 카피사 주 경계에서 미군과 아프간 군경합동팀이 일대를 오가는 차량에 불심검문을 하고 있다.

    그동안 빈 라덴의 반미조직 알 카에다 세력은 크게 위축됐고, 빈 라덴도 잠행을 거듭하느라 조직에 대한 지도력이 떨어진 게 사실이다. 그러나 9·11테러라는 엄청난 사건을 기획하고 성공시킴으로써 전 세계 반미 지하드(jihad·성스러운 전쟁)의 중심인물로 자리매김했고, 세계 반미투쟁 집단에서 그의 영향력을 앞서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9·11테러 후 서유럽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빈 라덴의 반미 지하드 이념을 따르는 자생적인(빈 라덴과는 아무 연계가 없는) 투쟁조직이 생겨나 테러를 저질렀다. 빈 라덴이 잊을 만하면 발표하는 육성 메시지는 그들에게 투쟁 지침이자 파트와(fatwa·이슬람 율법)나 다름없다. 미 정보당국이 빈 라덴 개인의 체포 또는 사살에 애쓰는 것도 그의 영향력이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려는 전략적 필요에서다. 그러나 아직껏 빈 라덴을 제거하지 못한 상태다.

    9년 동안 빈 라덴은 아프간-파키스탄 접경 산악지대에 몸을 숨겨온 것으로 보인다. 그곳은 정부의 공권력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는 부족들의 주거지역이다. 파키스탄과 아프간 현지에 가보면, 그곳의 반미 감정이 생각보다 높은 것에 놀란다. 만에 하나 빈 라덴이 토착민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했다면, 엄청난 현상금 때문에라도 그는 벌써 사담 후세인처럼 교수형을 당했거나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아프간-파키스탄 접경지대에는 적외선 야간투시경을 머리에 두른 미군 특수부대 정예요원, 미 중앙정보부(CIA) 소속 특수작전요원, 그리고 5000만 달러의 현상금을 노린 ‘인간 사냥꾼’(일부는 전직 특수부대원 출신)이 잠복근무 중이다. 빈 라덴과 함께 잠행 중인 것으로 보이는 아이만 알자와히리도 ‘사냥꾼’들이 노리는 사냥감이다.

    빈 라덴의 운명이 미군 추적대의 손에 결정된다면, 그 끝은 어떤 모습일까. 체포보다는 사살 쪽으로 기운다. 빈 라덴을 생포했을 경우 그의 재판을 둘러싼 논란은 미국에도 결코 이롭지 못하다. 재판 과정에서 격앙된 이슬람 민심은 제2의 9·11테러를 불러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 재판을 뉴욕에서 열지 못하는 이유와 같다). 따라서 지구촌 사람들은 빈 라덴이 체포됐다는 소식보다 사살됐다는 소식을 듣게 될 확률이 높다. 빈 라덴은 지난해 9월 9·11테러 8주년 즈음에 ‘미국민들에게 보내는 성명’에서 “미국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부당한 행위를 지지했기 때문에 9·11테러를 감행했다”고 주장했다. 올 3월 성명 후 5개월 동안 빈 라덴은 침묵을 지켰다. 9·11테러 9주년을 맞아 새로운 육성 메시지로 반미 지하드 투쟁을 촉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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