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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게임 중독, 네 탓이오 네 탓!”

하와이 유저 엔씨소프트 상대로 소송 … 논란 후폭풍에 한국 게임업계 긴장

  • 이설 기자 snow@donga.com

“게임 중독, 네 탓이오 네 탓!”

“게임 중독, 네 탓이오 네 탓!”

중세를 배경으로 한 온라인게임 ‘리니지2’에 등장하는 캐릭터.

“6년간 ‘리니지 2’에 몰두한 결과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할 수 없게 됐다. 게임에 심하게 중독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처음부터 게임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게임 중독 가능성을 사전에 알리지 않고, 안전한 이용방법을 설명하지 않은 제작자 엔씨소프트는 직무상 과실 책임을 져야 한다.”

국내 최대 게임사인 엔씨소프트가 하와이발(發) 소송에 휘말렸다. 하와이 지역신문인 ‘호놀룰루 스타-애드버타이저’에 따르면 상이군인인 크레이그 스몰우드(51) 씨가 8월 이와 같은 이유로 하와이 연방지방법원에 300만 달러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국내 온라인 게임업체가 게임 중독 관련 혐의로 소송을 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리니지 2’는 엔씨소프트가 2003년 출시한 롤플레잉 게임(RPG)이다. 인기 만화작가 신일숙 씨의 ‘리니지’를 토대로 한 게임으로, 2007년 60여만 명의 동시접속자를 기록할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RPG 게임은 시간을 투입할수록 아이템 획득률과 단계별 성취도가 높아져 중독성이 높다. 한때 리니지를 즐겼다는 이후정(25) 씨는 “리니지는 제대로 하려면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PC방에 죽치고 하는 폐인들이 주로 ‘리니지’를 한다”라고 말했다.

‘게임 과몰입’이란 게임에 지나치게 빠져 정상 생활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 현실과 가상을 혼동하는 게임 부적응, 게임을 하지 못하면 불안해하는 게임 과다 등 다양한 증상을 아우른다. 올해 초 게임에 빠져 아이를 굶겨 죽인 부부, 게임하듯 폭력을 행사한 범죄자 등이 ‘게임 과몰입’ 상태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게임 과몰입’과 관련한 이번 소송은 게임업계 전체를 긴장으로 몰아넣었다. 다음은 한국게임산업협회 김성곤 사무국장의 말이다.

예방조치 했어야 vs 당사자 책임



“게임으로 인한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게임 과몰입 문제가 언급됐다. 국내 대부분 게임업체가 RPG에 주력하고 있다. 이번 엔씨소프트 소송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국내 업체들 사이에서 게임 과몰입 문제를 해결해야 수출길이 순탄해질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번 소송의 핵심은 ‘게임 과몰입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느냐’다. 스몰우드 씨의 소송 제기와 관련, 엔씨소프트는 한 인터뷰에서 “국내처럼 미국에서도 한 시간마다 휴식을 취하라는 문구를 넣는 등 예방조치를 취했다”고 반박했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도 “맛있는 음식에 중독된 사람에 대한 책임은 그 음식을 만든 사람이 져야 하는가”라면서 엔씨소프트의 편을 들었다. 하지만 RPG 게임이 지나친 경쟁심을 조장한다는 반대 목소리도 거세다. 게임분쟁연구소 정준모 변호사는 “게임 과몰입 소송은 중독성을 증명하기 힘들고 회사를 상대로 한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담배 소송’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담배 소송과 관련한 회사의 반박 논리는 ‘중독되는 사람은 극히 일부다. 당사자가 자기 조절을 제대로 못한 결과이기에 회사는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게임도 사람마다 몰입 정도가 다르고, 중독 정도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담배 소송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재미와 몰입도는 비례하지만 ‘리니지 2’는 지나치게 경쟁을 조장하는 측면이 있다. 그런 면에서 제작사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본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상호책임론을 들었다. 엔씨소프트는 게임의 특성을 충실히 전달할 책임에, 사용자는 자기 조절의 책임에 소홀했다는 것. 이 소장은 “일종의 서비스 업체인 제작자로서는 재미있는 게임을 개발하는 게 당연하다. 재미는 곧 몰입도로 이어지므로 ‘게임 과몰입’을 콘텐츠 탓으로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 한편 사람마다 게임에 대한 내성도가 다르므로 과몰입으로 인한 각종 문제가 불거졌을 때 그에 대한 설명을 할 필요는 있다”라고 지적했다.

점입가경 ‘게임 과몰입’ 규제 논란

“게임 중독, 네 탓이오 네 탓!”

북미 최대 게임 박람회 ‘팩스 2009’에 참가한 엔씨소프트.

‘게임 과몰입’을 막으려면 기술적 규제와 게임문화 정비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현재 기술적 규제를 강제하는 법적 근거는 없다. 2008년 도입된 ‘그린 캠페인’과 올해 4월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광부)가 발표한 ‘게임 과몰입 대책’에 따라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기술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 ‘게임 과몰입 대책’은 문광부가 게임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마련한 가이드라인. 심야에 게임 이용을 제한하는 ‘셧다운 제도’, 너무 오랫동안 게임을 하면 흥미를 떨어뜨리는 ‘피로도 시스템’, 주민등록번호 도용 방지를 위한 ‘본인 인증 강화’ 등을 골자로 한다. 문광부 게임콘텐츠산업과 이영아 사무관은 “대책의 핵심은 각 게임사가 개별 게임에 맞는 예방조치를 도입하도록 하는 것이다. 도입 정도는 기업이 자율적으로 정하고, 문광부는 수시로 조치의 적절성을 평가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문광부와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는 올해 6월 ‘게임 과몰입’에 대한 법안을 제출했다. 둘 다 ‘게임 과몰입’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강제하는 내용이지만, 여가부의 법안 내용이 더 까다롭다. 이영아 사무관에 따르면 곧 국무총리실의 조정을 거친 통합안이 마련될 예정이다. ‘게임 과몰입’의 책임성과 마찬가지로 규제를 둘러싼 업계의 시각도 엇갈린다. 게임 관련법을 연구하는 한양대 황성기 교수는 “개정안과 관련해 위헌 시비가 있다. 나도 위헌 쪽에 한 표를 던진다”는 의견을 보였다.

“기술적으로 게임을 막는 것은 과잉이라고 본다. 게임할 권리와 행복 추구 권리 등의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게임 과몰입’은 제도의 문제라기보다 문화의 문제다. 부모에게 개별적으로 게임을 막을 가능성을 주는 등 자율적인 방향으로 가야 한다.”

김성곤 사무국장도 “현재 ‘게임 과몰입 대책’에 따라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자정활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규제를 일괄 강제하면 중소기업이 피해를 입게 된다. 게임에서 파생하는 문제는 게임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문제이므로, 사후 관리와 예방에 초점을 둬야 한다”라고 말했다. 반면 정준모 변호사는 “일괄 규제는 물론, 필요하다면 게임 내용도 감독해야 한다”라는 의견을 보였다.

“‘표현의 자유’ 논란이 나오지만, 게임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을 고려하면 기술적 규제를 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금주법을 실시해도 술이 맛있으면 사람들은 기어이 술을 구해 마신다. 게임도 재미있으면 아이디를 해킹하는 등 편법을 찾을 것이다. 흥미와 중독성을 낮추는 방법으로 내용을 제재해야 한다.”

모든 문화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 하나의 문화는 세상에 나온 뒤 좋고 나쁜 시행착오를 거쳐 제자리를 찾게 된다. 한국 온라인 게임이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은 1998년부터. 불과 10여 년 만에 TV와 영화에 이어 세 번째로 선호하는 여가활동이 됐고, 수출에서도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이동연 교수는 “게임업계가 봄날을 지나 이제는 성숙한 게임문화를 고민할 때”라고 강조했다.

“한국 게임은 온라인 게임만 기형적으로 발전했다. RPG 게임에 주력하면서 게임 부작용이 더 크게 불거진 측면도 있다. 고급 게임, 소셜네트워크 게임, 모바일 게임 등 게임 종류를 다양화하면 중독성이 희석될 것이다. 또 게임은 다른 문화 콘텐츠보다 시간의 소비가 필요하고, 시간 소비를 한 만큼 과몰입된다는 특징이 있다. 무엇보다 부모 등 주변 사람이 게임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간동아 2010.09.13 754호 (p54~55)

이설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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