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2

2010.08.30

떴다 제주항공, 잡았다 일본 하늘

항공시장서 한류 바람 주도… “비용 절감 노하우 배우자” 일본서 조명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0-08-30 10: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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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떴다 제주항공, 잡았다 일본 하늘
    “비행기표값이 이렇게 싸니 일본 국내보다 훨씬 가기 쉬워요.”

    “해외를 더 가까이 느끼게 됐습니다. 한국 가는 게 아니라 꼭 이웃 현에 가서 놀러 가는 느낌이에요.”(8월 6일 일본 NHN ‘Biz스포’에 실린 인터뷰에서)

    2007년 8월 한국과 일본은 항공자유화협정, 일명 오픈스카이(Open-sky)를 체결했다. 기존에는 취항할 수 있는 국제선 노선과 운임을 두 정부의 협상에 따라 정했으나, 오픈스카이를 맺으면서 항공사가 정부의 간섭 없이 자유로이 정할 수 있게 된 것. 그러면서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저비용항공사(Low Cost Carrier·이하 LCC) 간의 경쟁이 치열해졌다. 3년이 지난 지금, 8월 6일 일본 NHN의 한 시사경제 프로그램이 제주항공의 성공 비결을 소개했다. 오픈스카이를 둘러싼 항공기 전쟁에서 한국 제주항공이 우위를 선점했다는 방증이다.

    ‘일본의 서쪽하늘 현관’이라 불렸던 오사카 간사이(關西)공항. 세계적인 경기불황으로 노선 수와 운항 편수가 급속도로 줄어들어 최전성기보다 이용자가 30% 감소했다. 하지만 ‘Biz스포’ 프로그램에 따르면 간사이공항에서 제주항공의 카운터만 유일하게 붐빈다. 간사이공항과 서울 간 왕복운임이 최소 1만5000엔(21만 원). 일본 항공사의 절반 수준으로 일본 항공사의 오사카~도쿄 국내선보다 저렴하다. 제주항공이 지난해 3월 취항한 인천~일본 오사카 노선은 연간 30만 명이 이용하고 있다.

    주먹밥 기내식 … 25분 만에 출발 준비



    제주항공의 국제선 취항을 통한 해외 진출이 활발하다. 2008년 7월 국내 LCC 최초로 제주~일본 히로시마 간 국제선을 운항한 것을 시작으로 2009년 3월 인천~오사카, 인천~기타큐슈, 인천~태국 방콕, 김포~오사카 등의 노선을 출항했고 올 3월에는 김포~나고야 노선도 열었다. 2008년 1만1000명이 제주항공 국제선을 이용했고 2009년에는 16만 명으로 증가했다. 2010년 상반기에도 벌써 29만 8000명을 돌파했다. 지난 7월에는 국토해양부로부터 홍콩, 필리핀 노선도 취항할 수 있는 ‘국제항공 운수권’을 배분받아 11월 안으로 인천~홍콩, 인천~마닐라, 부산~세부 정기노선을 새로 취항할 예정이다.

    제주항공으로서는 국제선 취항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2004년 고속철도(KTX)가 개통되면서 국내 항공시장 ‘파이’가 줄어들었다. 게다가 국제선은 국내선과 비교했을 때 비행거리는 큰 차이 없는데 운임은 2배 이상이라 수익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실 동아시아 저가항공의 최초는 1996년 일본의 대형 여행사인 H.I.S.가 세운 ‘스카이마크항공’. 하지만 제주항공이 연일 ‘LCC 신화’를 갱신하며 성공하다 보니 ‘원조’ 일본이 ‘후발주자’ 한국에 ‘역(逆)유학’ 오는 상황이 벌어졌다. 6월 말 NHK의 정통 뉴스해설 프로그램 ‘클로즈업 현대’를 비롯해 아사히신문, 후지TV 등 매체가 제주항공의 비법을 배우러 왔다. 8월 중에만 8개 매체에서 취재하러 왔을 정도. ‘클로즈업 현대’는 제주항공의 서비스 모습을 보여준 뒤 “오픈스카이로 인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데 일본은 경쟁할 만한 힘조차 갖추지 못했다”고 자평했다.

    떴다 제주항공, 잡았다 일본 하늘

    제주항공에 대한 일본 ‘동양경제’ 기사(왼쪽)와 NHK 방송 장면.

    일본 언론이 제주항공에 가장 주목하는 것은 ‘비용절감 노하우’다. 사실 한·일 고객이 일본 항공 대신 한국의 LCC를 선택하는 것은 저렴한 가격 때문이다. ‘클로즈업 현대’에서 방영한 영상 속의 한 일본 고객은 “일본 항공사를 이용하면 한국에 두 번 갈 돈인데, 제주항공을 이용하면 세 번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제주항공 국제선 기내식은 주먹밥 한 개가 전부. 착륙하면 손님들이 내리기 전부터 승무원들이 화장실 청소를 한다. 보통 항공사의 비행기는 착륙 후 다시 이륙할 수 있는 상태로 돌리기까지 1시간 정도 걸리지만, 제주항공은 25분이면 된다. 회전율이 빠르니 회사가 보유한 비행기 수가 적어도 가동률은 높다. 게다가 파일럿 역시 일본 항공사의 3분의 1 수준의 급료를 받고 일해 인력 운영에서도 자유롭다.

    에어아시아 바람 잠재울 수 있나

    제주항공을 운영하는 회사가 화장품 회사 (주)애경이라는 점도 일본 언론의 관심을 끈다. 애경그룹은 제주항공 주식의 약 75%를 보유하고 있다. 앞의 인터뷰에서 제주항공 김종철 사장은 “애경은 그동안 저렴한 가격의 화장품을 내놓음으로써 화장품을 잘 구매하지 않던 고객을 시장으로 끌어들었다. 위의 노하우를 살려 운임이 저렴한 비행기를 통해 이제까지 비행기를 잘 이용하지 않던 사람들까지 시장으로 끌어오겠다”고 밝혔다. 기내에서 레크리에이션을 진행하고 상품으로 자사 화장품을 주는 등 윈-윈 홍보를 하기도 한다.

    사실 제주항공의 하늘에 ‘맑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시아 최대의 LCC 에어아시아가 올 11월 인천에 상륙한다. 에어아시아는 인천~쿠알라룸푸르 티켓을 최저가 편도 6만 원에 내놓는 등 초저가 특가 이벤트를 내세워 기존 LCC를 위협하고 있다. 이에 제주항공에 수많은 자국 고객을 빼앗긴 일본 역시 대책을 마련 중이다. 일본 정부가 저비용항공사 전용 터미널 건설 계획 등 ‘나리타공항의 오픈스카이 대응법’을 고안하겠다 밝힌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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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항공은 ‘저렴한 가격’으로 한·일 고객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제주항공은 타 LCC와의 차별화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입장이다. 기내식과 음료 등 기본적인 서비스는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 첫 번째 전략이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에어아시아는 ‘하늘 위의 편의점’이라 불릴 만큼 모든 기내서비스를 유료화했다. 한국적 정서에서는 기본적인 부대서비스를 제공하는 제주항공의 서비스가 더 편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인은 기내식에 돈을 지불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또한 직원 전원에게 일본어 학습을 의무화하고, 도쿄로 접근할 수 있는 나리타, 하네다공항에 취항해 일본 전 지역을 아우르는 대표 항공사가 되겠다는 각오다.

    2007년 취항 이후 제주항공에는 악재가 끊이지 않았다. 국제유가는 급등했고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했으며, 2009년에는 신종플루로 여행객이 급감했다. 아시아나항공 이후 18년 만에 한국 민간항공사가 시장에 진입하자 국내 대형 항공사의 견제도 거셌다. 하지만 제주항공은 한국을 넘어 일본 소비자에게 인정을 받았다. 이제 제주항공이 일본을 넘어 세계까지 성공적인 비행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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