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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Y

왜, 소흘IC 부근 1.7km는 곡선인가

서울-포천 민자고속도 무봉리 구간 … 어설픈 설계·특혜 의혹까지 꼬일 대로 꼬여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왜, 소흘IC 부근 1.7km는 곡선인가

왜, 소흘IC 부근 1.7km는 곡선인가

서울-포천 민자고속도로 구간 중 논란이 된 포천시 소흘읍 무봉리 일대.

경기 포천시 무봉리에서 벽돌·블록, 레미콘을 생산하는 삼양기업 석정희 이사의 사무실 책상에는 요즘 고속도로 선형계획도와 진정서가 수북이 쌓여 있다. 경기 동북부 지역을 잇는 서울-포천 민자고속도로가 작업장 주요 부분을 지나도록 도로 선형이 설계되면서 일터를 폐쇄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레미콘 공장은 주민 혐오시설이라 석씨와 150여 명의 직원이 주민들 설득에 1년여를 매달린 끝에 문을 연 공장인 만큼 더욱 가슴이 먹먹하다. 2006년 시멘트 사일로(Silo·저장장치)와 크러셔(Crusher·파쇄기) 등 60여억 원을 들여 설치한 기계설비도 가동을 멈춰야 한다.

서울-포천 민자고속도로는 서울북부고속도로(주)와 대우건설 컨소시엄이 건설할 구리-포천 간 총연장 53km의 4~6차로 고속도로. 당초 2015년 완공 계획이었지만, 현재 진행 상황대로라면 내년 봄 착공해 2016년경에 완공될 예정이다.

석씨가 더욱 기막힌 것은, 이 회사는 2004년 현재의 사업장 앞쪽에 공장설립 승인을 받았지만 이곳에 고속도로 직선구간이 생길 계획임을 알고 설립 인가를 취소하고 부득이 현재의 위치로 옮겼기 때문이다.

2002년 최초 사업 제안 당시 대우건설 컨소시엄은 포천시 무봉리 소흘IC 부근 1.7km 구간을 직선구간으로 제안했었다. 하지만 2007년 9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곡선구간으로 설계가 변경됐고, 고속도로에 편입되지 않으려고 ‘옮긴’ 석씨의 사업장은 공교롭게도 고속구간에 다시 편입됐다.



“레미콘 공장은 주민들의 반대가 심해 옮기려고 해도 마음대로 못 한다. 거래 은행들은 노선 변경으로 작업장 토지가 수용된다며 추가 담보를 요청하거나 대출 상환을 재촉해 손해가 막심하다. 이래저래 막막하다.”

400년 마을이 두 동강 날 판

인근에서 공장 임대업을 하는 대도산업개발 윤영기 회장은 요즘 고속도로 선형 설계 박사가 다 됐다. 그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아 40여 년간 소유하던 선산과 토지에 최근 7년간 50억 원을 들여 공장 13동을 지었다. 그런데 고속도로가 곡선구간으로 변경되면서 그의 공장용지는 졸지에 3등분이 될 처지에 놓였다.

왜, 소흘IC 부근 1.7km는 곡선인가

2002년 설계한 직선구간(파란색)과 2007년 변경된 곡선구간(빨간색). 주민들은 곡선구간으로 골프연습장은 ‘살았지만’ 마을과 공장은 ‘죽게’ 됐다고 하소연한다. 곡선구간은 탄약고 옆을 지나게 돼 현재 탄약고 지하화가 논의되고 있다.

“13동의 공장을 지으면서 20여 가지 인허가 절차를 걸쳤고 포천시에 취·등록세, 재산세, 지방세 모두 성실히 납부했다. 공장 설립 허가를 내주고는 고속도로 난다고 토지를 수용하면 기업인은 누구를 믿고 공장을 짓나. 개인적으로 만나본 도로설계 전문가들은 직선구간으로도 충분히 안전을 담보할 수 있고, 새로운 선형도 가능하다고 하는데 굳이 곡선구간을 고집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

250여 가구 600여 명이 사는 무봉리 마을 주민들도 곡선구간 변경으로 400년 전통의 마을이 두 동강 날 처지라며 하소연을 한다. 이 마을 이원석 주민대책위원장의 말이다.

“곡선구간으로 확정되면 지상 5m 높이의 고속도로가 마을을 가로지르고, 주민들은 터널을 통해 지나다녀야 한다. 직선구간은 고속도로와 마을이 떨어져 이런 일은 없다. 공익사업도 좋지만 마을을 두 동강 내면서까지 이렇게 해야 하나. 차량 통행으로 인한 소음문제도 그렇다. 당초 제안대로 직선구간으로 해달라고 국토해양부와 관계기관에 수십 차례 진정했지만 감감무소식이다.”

고속도로 공사 같은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진행할 때는 언제나 민원이 발생하게 마련. 하지만 무봉리 구간에서 일고 있는 주민과 기업인들의 반발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나라 SOC 사업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알 수 있다. 무봉리 마을의 문제는 전체 구간 중 유독 소흘IC 부근 1.7km 구간만 곡선구간으로 변경한 것이 핵심. 대우건설 컨소시엄 측은 이렇게 설명한다.

“2002년 제안한 노선은 5개 경쟁사가 함께 경쟁한 하나의 안(案)이었다. 2007년 9월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과정에서 곡선구간으로 변경한 안으로 심사를 받았으니 사실상 곡선구간 안이 첫 계획안이다. 바꾼 게 아니다.”

갑자기 직선에서 곡선으로 바꿨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토해양부에 제안할 때의 직선구간 설계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설계를 담당한 한맥기술단 관계자 2명의 설명이다.

“가능하면 치기(수용하기) 부담스러운 지장물과 군 시설, 주거밀집지역, 대규모 산업시설 등은 피해 선형을 설계했는데, 5년 사이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2002년에 제안한 직선구간으로 공사를 할 경우 지장물 보상비용은 더 커진다. 그때에 없던 골프장도 생겼다. 골프장은 영업 보상을 해줘야 해 더욱 부담이 는다. 게다가 직선구간으로 공사하는 안대로 하면 포천 방향 차량이 소흘IC로 나오는 램프 구간이 짧아 속도를 급격히 줄여야 하는 기술적인 문제도 있다. 교통 흐름과 토지 보상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다. ”

왜, 소흘IC 부근 1.7km는 곡선인가

고속도로 예정지가 주요 기계설비 가동 지역을 지나게 된 삼양기업. 이 회사는 공사가 시작되면 공장 문을 닫아야 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직선 안과 곡선 안에 대한 토지보상비용 차이를 묻는 질문과, 곡선 안이 공장지대와 주거밀집지역을 지나는 이유에 대해선 납득할 만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전문가가 설계 시 지형을 확인하겠지만 일일이 지장물까지 점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실례로 대우건설 관계자는 기자에게 “곡선 안으로 바뀌어도 삼양기업의 부지는 5~10%만 수용되므로 운영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지만, 그곳에 시멘트 사일로 등 주요 설비가 밀집돼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8월 23일 기자가 현장을 방문했을 때 이 회사 직원들은 “(고속도로가 예정된) 5~10%가 사실 우리 사업장의 전부다. 핵심 기계설비가 다 몰려 있다. 주차장 등 전체 공장부지에서 수용 면적만 따지는 것은 대표적인 탁상행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상하게 골프장만 대박

이날 기자가 곡선 선형계획도를 들고 1.7km 구간을 돌아보니, 직선구간으로 공사해야 토지보상비용이 적게 든다는 것이 눈으로도 확인됐다. 직선구간은 마을이나 공장단지와 떨어져 있고, 골프장을 빼면 대부분 농지와 하천을 지났다. 반면 곡선구간은 마을과 공장을 지나야 하므로 그만큼 보상비용이 늘어난다. 민자사업의 경우 토지보상비는 국민 세금으로 지급된다. 지역 주민들은 곡선구간 변경으로 약 400억 원의 토지보상비가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한맥기술단 관계자는 “400억 원은 과장됐다”면서도, 2002년 제안한 설계가 치밀하지 못했음을 인정했다.

“2002년 안(직선안)은 우겨서 넣은 측면이 있다. 대부분 경쟁사도 ‘이 정도로 해놓자’는 수준으로 낸다. 일일이 확인할 수 없지 않나. 경쟁을 거치기 때문에 최초 제안을 100% 가져가기 쉽지 않다. 하지만 2007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때에는 좀 더 치밀하게 설계했고, 곡선구간에 대해 심사위원들이 기술적인 평가를 했다.”

1차 직선 안은 적당히 설계했지만 2차 안은 꼼꼼히 설계했고, 그 결과 소흘IC 부근 선형만 바뀌었다는 얘기다.

문제는 여기서도 발생한다. 이 지역에서 직선구간 고속도로가 난다는 소식이 알려진 것은 최초 제안 2년 뒤인 2004년부터다. 이후 각종 개발행위는 고속도로 예정지를 피해 이뤄졌다. 그러나 곡선구간으로 변경되면서 직선구간을 피해 세운 공장들이 큰 타격을 받았다. 반면 곡선구간 변경으로 혜택을 입는 곳도 있다. 인근 골프연습장이 대표적이다. 애초 민자고속도로의 직선구간은 골프장 중앙을 관통하게 설계됐는데 곡선구간으로 변경되면서 골프장을 비켜가게 됐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골프장 앞에 소흘IC가 생기니 골프장으로서는 예상치 못한 ‘대박’을 맞은 셈.

“(골프장의) 영업비용 보상은 신경 쓰면서 마을 주민은 외면한다”는 주민들의 불만과, 특혜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민들은 노선 설계 변경과 관련해 골프장 소유주의 인척과 경기 북부지역 유력 정치인이 친분관계가 있어, 선형 변경에 외압이 있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관계자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일축하지만, 전체 구간 중 소흘IC 부근 약 1.7km만 선형을 변경해 고속도로가 골프장을 비켜가게 된 게 단지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고 믿는 주민은 없는 듯했다.

주민들의 불신을 키운 것은 구리시의 학습효과도 컸다. 구리시와 주민들은 서울-포천 민자고속도로가 고구려테마공원 부지와 장자호수공원, 아차산을 가로지르고 구리 도심 발전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반대를 했다. 시민대책위원회까지 결성돼 1년 6개월 동안 대치하다가 최근 대한토목협회에 공동 설계용역을 줘 일부 노선을 조정했다. 무봉리 주민들도 “구리시처럼 잘못된 선형을 바꿔달라”고 요구하고, 일부 주민은 도로설계 전문가에게 의뢰해 마을과 공장단지를 지나지 않는 ‘제3의 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도로 예정지에 인허가 제한 못 해

이에 대해 국토해양부와 대우건설 측은 “노선을 바꿀 경우 또 다른 민원이 생기게 돼 쉽지 않은 상황이고, 무봉리 지역 곡선구간은 사실상 확정적”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되고 협의가 시작됐는데도 고속도로 예정지에 인허가를 내준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주민들은 수년 내 고속도로로 편입될지도 모르고 돈 들여 개발을 한 꼴이 됐는데, 인허가 권한이 있는 포천시는 곡선구간이 지나는 곳에 인허가를 내주고 있다. 포천시 관계자의 말이다.

“우리(포천시)도 2008년 10월경에야 (곡선구간을) 알았다. 소문이 무성해지면서 민원이 잇따라 우리가 설계도면이라도 달라고 했다. 그래야 인허가를 신청하는 주민들에게 설명을 할 수 있지 않나. 도면은 2009년 초에 받았다. 그때부터 민원인들에게 고속도로가 난다고 설명해주고 있다. 법적으로는 아직 확정 고시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민원인이 알든 모르든 인허가 신청을 하면 해줄 수밖에 없다. 법적으로 인허가를 제한할 근거도 없다.”

도로가 난다는 것을 알고 해당 지역에 개발행위 허가를 신청했다면 지장물 보상을 많이 받으려는 것이고, 반대의 경우라면 억울하고 분통 터질 일이다. 결국 최대한 빨리 확정 고시를 해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는 걸 막고 지장물 설치도 막아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속도전’의 발목을 잡는 일은 또 있다. 곡선구간으로 변경되면서 인근 육군3군사령부 56탄약대대 탄약고와 1km 이내로 공사가 진행돼 양거리(폭발물 폭파거리)를 감안하면 군 탄약고를 이전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이 때문에 현재 총리실과 국토해양부, 국방부, 포천시 등 관계 기관이 수차례 협의를 갖고 안전과 안보상 문제를 논의하는 것으로 ‘주간동아’ 취재 결과 확인됐다. 일부 탄약고는 지하화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부동산 경기 침체로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 늦춰지는 것도 사업이 속도를 못내는 이유다. 주민들이 탄약고를 옮기면서까지 굳이 곡선코스로 변경한 것을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도 나온다.

앞으로 서울-포천 민자고속도로는 정식 협정 체결→주민공람 및 이의신청→결정 고시→공사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미 관계부처 협의가 끝난 상태에서 진행되는 이의신청은 요식행위라는 데 이견이 없는 만큼 ‘무봉리 사람들’은 손해를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치밀하지 못한 준비와 대응으로 구리시 노선 확정에 몸살을 앓는 주간사, 고속도로 예정지 협의를 하면서 한편으론 그 자리에 인허가를 내주는 지방자치단체, 관계부처 협의가 끝난 후에 하는 형식적인 이의신청 절차, 끊임없이 등장하는 외압·특혜 의혹 등은 우리의 SOC 사업이 넘어야 할 숙제임이 분명하다.



주간동아 2010.08.30 752호 (p16~18)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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