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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철 교수의 5분 한국사

기둥서방 왕팔채와 지도층 세 치 혀

연이은 성희롱 사건에 전국이 술렁… 수기치인(修己治人)한 선조 뜻 제발 좀 배워라

  • 이영철 목원대 겸임교수 hanguksaok@hanmail.net

기둥서방 왕팔채와 지도층 세 치 혀

기둥서방  왕팔채와 지도층 세 치 혀
‘왕팔채(王八債)’라는 말은 중국 북방 속어로 기루(妓樓)에서 심부름하는 사람 또는 기둥서방을 뜻한다. 자기 여편네의 몸값으로 산다는 말이다. 다른 남자가 자신의 처와 관계한 것에 대해 남편이 요구하는 화대를 일컫기도 한다.

사내대장부로서 치욕스럽게 자기 아내를 나라에 바쳐 높은 벼슬을 하거나 부자가 됐을 뿐 아니라 아내를 몹시 환대해 세상 사람들의 조소거리가 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윤순(尹珣)이란 자다.

때는 폭군 연산군 시대로, 왕의 음란한 행동이 나날이 심해져 성균관과 원각사를 주색장으로 만들고 미녀와 준마를 구하기 위해 전국에 채홍준사(採紅駿使)를 파견할 무렵이다. 왕은 종친과 하루를 논다는 이유로 가까운 일가는 물론 촌수가 먼 사람도 불러 모았으며, 부인들까지 초대했다. 왕의 부름을 받은 젊은 부인들은 온갖 화장을 하고 몸에는 갖은 향(香)을 차고 입궁했다. 이때 윤순의 처 구씨(具氏)도 종실의 한 사람으로 영광스러운 이 초대연에 참가했다.

임금에게 아내 바치고 초고속 승진한 윤순

연산군은 특히 연회에 참가하는 부인들에게 자기 남편의 이름을 옷깃에 붙이고 오라고 명했는데, 부인 중에는 남편의 벼슬이 높은 것을 자랑하듯 커다랗게 써 붙이고 의기양양하게 들어오는 이도 있었다. 사실 연산군의 속마음은 딴 데 있었다. 종친들의 부인 중 누가 가장 예쁜지를 고를 심산이었다. 여인들은 하나하나 임금 앞에 조아리면서 “황은(皇恩)이 망극하옵나이다. 성수(聖壽) 만강하옵소서”라며 연회장으로 들어섰다. 윤순의 부인은 종실 사이에서 가장 아리따운 여인으로 평판이 났는데, 연산군은 이때 처음으로 구씨 부인을 봤다.



왕과 종친의 연회는 흥겹게 벌어지고 풍류 소리와 함께 무희들이 한바탕 춤을 추었다. 왕은 구씨 부인을 가깝게 불러놓고 농탕질을 했는데, 처음에는 앞에 앉히고 말만 주고받다가 술기운이 들자 옆으로 앉혀 손목도 만져보고 껴안았다. 구씨 부인은 약간 수줍은 태도를 취할 뿐, 연산군이 하는 대로 몸을 내버려두었다. 다른 신하들은 이런 꼴을 보면서도 못 본 체한 것은 물론이었다. 밤이 깊어지자 연회는 끝나고 왕의 침실에는 구씨 부인이 요염하게 꾸며져 나타났다.

다음 날 윤순에게 정2품 자헌대부(資憲大夫)의 직첩이 내려졌고,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로 승진했다. 부인의 힘으로 높은 관직에 오른 윤순은 그 후 부인 받들기를 조상 받들듯 하며 부인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순종했다. 연산군이 중종반정으로 축출됐는데도 윤순은 운 좋게 정국공신(靖國功臣) 4등으로 또다시 출세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훗날 사간원 간원이 윤순을 두고 중종에게 “윤순은 연산군의 총애를 받아 출사한 지 5년 만에 자헌대부로 승진했으며, 아내 또한 연산군 승은을 입어 대궐에 드나들어 추잡한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윤순이 초고속 승진하게 된 것은 계집을 판 값이라고 했습니다. 지금에 와서도 벼슬이 그대로이고, 아내도 전처럼 대우를 받고 있으니 뭇사람이 비루하게 여겨 비웃고 있습니다”라고 통박했다.

기둥서방  왕팔채와 지도층 세 치 혀
이어 중종 12년(1517) 부제학 이자 등이 “윤순의 처 구씨는 본래 음사(陰邪)하고 간특한 자질로, 그가 요사하게 꾸며 남의 마음을 혹하게 하는 모양은 실로 창기(娼妓)보다도 심한 데가 있습니다. 그는 또 재술(才術)이 능해 간사한 짓과 참소를 꾸미고 화란을 일으킬 만하므로, 사람들은 모두 그를 요물이라고 지목합니다. 심지어 이웃 향당에서도 그를 가까이하려 하지 않습니다. 윤순 또한 일개 시정의 거간꾼으로, 본래 사특하고 탐심이 있는 데다 망령되고 사납기까지 해 선류(善類)를 원수와 같이 여기는 자입니다. 그는 지난번 폐조(廢朝·연산군) 때 말 잘하고 아첨 잘하는 것으로 총애를 얻어 몇 달 사이 숭품(崇品)에까지 올랐고, 그의 처가 또한 궁중에 출입하면서 특별히 총애를 받았습니다. (중략) 전하께서는 쾌히 중론을 따르시고 용단을 내리시어 윤손의 조적(朝籍)을 삭탈하고, 구씨를 교외로 물리쳐 그들이 통교하는 길을 영구히 끊어놓게 하소서. 밝은 사람은 죄악이 싹트기 전에 끊고 화기(禍機)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조광조(趙光祖)도 문정왕후를 책봉할 때 정언(正言)의 직책으로 “음탕하고 더러운 물건이 대례(大禮)에 참례할까 염려되니 성 밖으로 내쫓고 성 안에 머물지 못하게 하소서”라고 진언하니 중종이 허락했다. 음탕하고 더러운 물건이란 윤순 부부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결국 중종 13년(1518) 대사헌 조광조의 도학정치(道學政治)가 펼쳐지면서 윤순은 숙청됐다. 당시 세인들은 “이제야 윤순의 왕팔채가 끝났다”라고 비웃었다.

여가부, 국회의원 대상 성희롱 예방교육 계획

최근 온 나라가 성추행과 성희롱으로 얼룩져 있다. ‘조두순 사건’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한나라당 강용석 의원의 성희롱 발언 논란과 경기도 의정부 한 초등학교장의 여교사 성희롱 사건 등이 불거지는 것을 보면 대한민국의 앞날이 걱정된다. 조만간 여성가족부가 국회의원을 상대로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라니, 국격(國格)이 말이 아니다.

지금이 황음의 군주 연산군 시대가 아닐진대도 여성을 비하하는 언행으로 자기 이름을 더럽히는 뭇 남성을 보면 옛 고사가 거짓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유럽 귀족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로 지도층으로서의 도덕적 의무를 강조했듯, 조선시대 사대부도 윤리적 최고 가치를 인간의 관계를 중시하는 사회적 관용인 인(仁)에 두었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식자(識者)와 치자(治者)의 도리로 수기치인(修己治人)이라 하여 자신의 몸과 인격을 연마한 후 지도자로서 정치에 참여했다. 정녕 이 땅의 지도층 남성을 자처한다면 먼저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봐야 할 것이다.



주간동아 2010.08.02 748호 (p80~81)

이영철 목원대 겸임교수 hanguksa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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