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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뜨겁게 덴 성희롱 상처 아물지 않았다

피해자들 ‘영혼의 아픔’ 있지만 당당하게 생활

  • 이설 기자 snow@donga.com

뜨겁게 덴 성희롱 상처 아물지 않았다

“아나운서 하려면 다 줘야 한다.”

한나라당 강용석 의원이 성희롱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연세대 토론동아리 학생들과 함께한 저녁자리에서였다. 사건이 이슈화되자 누리꾼들은 해당 여학생 찾기에 나섰다. ‘얼마나 예쁜지 보자’는 이상한 사냥. 그 통에 관련 없는 학생의 사진이 인터넷에 떠도는 등 애꿎은 피해자가 속출했다. 1993년 ‘서울대 신 교수 사건’으로 학내, 직장 내 성희롱이 공론화된 지 17년. 피해자들은 여전히 2차 피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2001년 ‘S대 K교수 사건’, 2003년 ‘S전기 사건’의 피해자인 최아룡(39) 씨와 이은의(36) 씨는 지금도 이따금 그때 기억에 몸서리친다.

#S대 K교수 사건 피해자 최아룡 씨

요가원 원장으로 번역·집필 작업

뜨겁게 덴 성희롱 상처 아물지 않았다
광화문에 자리한 ‘세상 속으로 가는 요가원·몸과 마음 연구소’는 독특하다. 요가 매트와 책이 한 공간에 뒤섞여 있다. 책꽂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몸’ ‘요가’ ‘명상’ ‘영화’ ‘문화연구’. 이곳 원장 최아룡 씨는 요가를 가르치는 틈틈이 번역과 집필 작업을 한다. 지금은 혼자지만, 여러 사연으로 대학사회에서 밀려난 이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



이런 결심을 하기까지 사연이 있다. 2001년 ‘S대 K교수 성희롱 사건’의 주인공이 바로 그다. 그해 10월 31일 저녁 회식자리. 박사과정 3학기 학생이던 그에게 지도교수가 “내가 너를 여인으로 만들어주겠다”고 하더니 끌어안고 스킨십까지 했다. 이후 그는 학교에 남아 사건을 공론화했고, 민·형사 소송에서 유죄판결을 이끌어냈다. 그로부터 10년, 최씨는 나지막하고 담담하게 그간의 드라마를 이야기했다.

“늘 양가적으로 생각하게 돼요. 공부, 일, 결혼 등 모든 게 늦어져 억울하다가도 그 일로 얻은 경험들이 고맙기도 해요. 많이 편안해졌지만 지금도 속에서 뭔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습니다.”

사건 직후 몸이 먼저 마음을 알아챘다. 기가 빠져나가 앉아 있기도 힘들었고, 시간이 지나자 온몸에 두드러기까지 번졌다. 지도교수가 없어져 무엇을 공부할지도 몰랐다. 모든 게 와르르 무너진 상황, 일단 몸부터 추스르자 싶었다.

“머릿속이 복잡해 전공 책을 덮고 예전부터 해오던 요가에 매진했어요. 2003년 요가원을 열고 노숙자, 성매매 여성, 미혼모, 장애인들에게도 요가를 가르치며 사회를 다시 바라볼 수 있었어요.”

학내 성희롱 피해자들은 사건을 공론화하든 안 하든 몸담은 조직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 가해자가 학생인 경우는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교수가 얽히면 유학을 가거나 다른 대학으로 적을 옮긴다. 그는 가해자가 학교에 남아 있는 상황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논문이 통과되지 못한 채 졸업이 됐다. 학위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대학원에 특별 재입학을 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수료하고 논문을 쓰게 된 것만으로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기적’이라고 말한다.

“불합리한 상황에서 피해자가 뒤로 숨게 되는 건 권력이 기회를 잡고 뒤흔들기 때문이에요. 지도교수의 도움 없이는 살아날 수 없다는 생각에 절대복종하는 거죠. 그래서 해외 학회에 글을 발표하고 혼자 경비를 마련하는 시도를 하고 있어요. 강용석 의원 사건 해당 학생들이 전화기를 끄고 잠적한 배경도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그는 2008년 독일인 교수를 만나 결혼했다. ‘호러’를 연구하는 남편은 가해자와 같은 대학에 재직 중이다. 그간의 힘든 시간을 털어놓는 그에게 남편의 위로는 큰 힘이 됐다. 그는 “대한민국은 모든 문화가 지나치게 억압적이다. 권력에 기대 기회를 탐하지 않아도 되는 문화가 정착하도록 다 같이 노력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S전기 피해자 이은의 씨

직장에 남아 비공식 성희롱 상담사 활동

뜨겁게 덴 성희롱 상처 아물지 않았다

이은의 씨가 ‘한국여성민우회’와 함께 제작한 ‘평등한 일터를 만드는 당당한 달력’.

“커밍아웃한 뒤 ‘왕따’에서 ‘은따’가 됐죠. 그래도 후회는 없어요. 가장 혹독하고 비인간적인 상황에서 벗어났으니까요.”

경쾌한 말투와 기분 좋은 웃음. S전기에서 8년째 대리로 근무하는 자칭 ‘은따’ 이은의 씨는 “어두운 모습으로 그려지는 건 절대 사절”이라고 말했다. 당당한 가해자와 위축된 피해자 공식은 깨뜨려야 한다는 것. 2003년 6월부터 1년 반가량 상사에게 성희롱을 당한 그는 가까스로 용기를 내 사실을 알렸다. 결과는 집단 따돌림과 인사 불이익. 이후 여성단체의 도움으로 적극적으로 사건을 공론화하자 “투사가 돼서 이름을 알리려고 하느냐. 너무 극성이다” 등의 수군거림이 시작됐다.

“처음부터 제가 ‘파이터’였던 건 아니에요. 용기를 내서 사실을 알렸는데 회사가 ‘거짓말쟁이’라고 외면하니 감당이 안 됐죠. 회사는 인권위나 법원에서 저에 대해 ‘원하는 부서에 배치받으려고 거짓 성희롱을 꾸몄다’고 주장했어요. 피해자가 느끼는 수치심과 감정을 모르면서 의도를 추측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씨는 지난 4월 받아든 판결문을 읽고 또 읽었다. 구절마다 5년간 마음고생이 녹아 있었다. 재판부는 “S전기는 원고가 직장 내 성희롱 피해를 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오히려 불이익한 조치까지 취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원고가 정신적 고통을 입게 되었음은 경험칙상 명백하다”며 가해자와 회사가 4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대부분의 기업이 이런 사건을 지나치게 서두르거나 느리게 처리해 은폐하려 한다. 가해자에게 돈을 줘서 바로 내보내거나 2, 3년간 사건을 질질 끌며 피해자가 지치기를 기다리는 것. 이씨는 “판결이 났지만 다른 여직원이 성희롱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때까지 회사에 남아 있을 것”이라 말했다.

“한 후배의 말이 ‘간부가 쌈을 싸서 입에 넣어달라고 하더니, 손가락을 세게 빨았다’고 하더군요.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었지만,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고요. 대부분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들은 조용히 떠나는 쪽을 택하죠. 법적 대응으로 구제받는 것도 힘들고, 한창 일하고 결혼해야 할 나이에 인생이 망가지니까요.”

서른여섯 살 미혼. 지난 5년은 친구를 만나거나 연애를 하는 일상을 전혀 누리지 못했다. 판결이 난 지금은 다소 여유가 생겼지만, 남성에 대한 경계와 혐오가 생겼다. 이해관계에 따라 태도가 돌변하고, 군대놀이 하듯 무조건 복종하는 ‘찌질함’의 극치를 봤다는 것. 그는 “조직 상층부 남성들은 ‘술자리 농담’이라며 그들만의 조직문화를 들먹인다. 그 통에 피해자들만 2차 불이익에 시달린다. 이 부분에 대한 자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몇몇 중대사건을 겪으며 성희롱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은 일취월장했다. 흐릿하게나마 성희롱의 개념을 알게 됐고, 술자리에서 상대방 표정을 살피는 일도 잦아졌다. 하지만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아직도 싸늘하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어진 성폭력전문상담활동가는 “제도가 마련됐지만 인식은 그 기준을 못 따라간다”고 지적했다.

“향후 몇 년간은 성희롱 보도가 늘어날 겁니다. 사건 자체가 많아졌다기보다, 이제는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거죠. 아쉬운 점은 성희롱 피해자인 여성을 대하는 일반 인식이에요. 유아 성폭력은 남녀노소 불문 손가락질하면서 성인 여성은 용모, 복장, 처신 등 생활수칙을 들먹이죠. 시간과 사회구성원들의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봅니다.”



주간동아 2010.08.02 748호 (p52~53)

이설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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