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3

2010.04.27

베낀 것 다시 베끼는 것도 예술

리처드 페티본의 ‘Andy Warhol(Marilyn Monroe)’

  • 김지은 MBC 아나운서·‘예술가의 방’ 저자 artattack1@hanmail.net

    입력2010-04-20 15: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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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낀 것 다시 베끼는 것도 예술

    Richard Pettibone(b. 1938), ‘Andy Warhol(Marilyn Monroe)’ 8.9×7.6cm, 1978, CHRISTIE’S IMAGES LTD. 2010

    이 작품은 누구의 것일까요. 미술에 문외한이라도 이 정도는 알고 있겠죠. 어떤 분은 “또 앤디 워홀이야?”라고 식상해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 작품의 크기가 겨우 8.9×7.6cm라는 사실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될 것입니다. 그야말로 손바닥보다도 작은 크기인데요. 앤디 워홀의 작품 ‘마릴린 먼로’(1967)의 원래 크기인 91.4×91.4cm의 10분의 1도 안 됩니다.

    그림엽서보다 작은 이 작품의 작가는 캘리포니아 출신의 리처드 페티본(Richard Pettibone·72)입니다. 그는 모더니즘과 팝아트의 작품을 축소 복제하는 작가로 유명한데요. 그가 이렇게 미니어처 크기로 축소해 만든 작품 리스트에는 몬드리안, 브랑쿠지, 뒤샹, 리히텐슈타인, 스텔라 등 미술사에 빠지지 않는 대가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페티본이 원작을 축소 복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뒤샹이 변기에 가명으로 서명한 뒤 ‘샘’이라고 이름 붙인 사건은 잘 알 겁니다. 그는 ‘작가의 아이디어가 곧 예술작품’이라고 선언함과 동시에 기존의 오브제를 그대로 다시 사용하는 레디메이드(ready-made) 예술 시대를 열었죠. 이제 작가는 무엇인가를 새로 만드는 존재가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존재로 개념이 바뀐 것입니다. 페티본에게 레디메이드의 재료는 바로 대가들의 작품 자체입니다. 세상의 모든 오브제가 레디메이드의 재료가 될 수 있는데, 작품이라고 예외가 되느냐는 거죠.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를 복제한 작품도 마찬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죠. 팝아트는 기존의 이미지를 마치 공장에서 대량생산하듯 찍어낸 것이 특징이고 그 대표주자가 바로 워홀입니다. ‘차용, 재활용, 복제’라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치를 페티본은 팝아트 자체를 복제함으로써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가 놀라울 정도의 정교함으로 ‘베낀 것을 다시 베끼는 전략’을 보여주면서 원래 크기로 베끼지 않고 작품의 크기를 대폭 줄인 까닭은 무엇일까요. 페티본은 관객에게 다시 한 번 묻습니다. 작가의 아이디어가 작품 그 자체라면, 작품의 크기가 줄었을 때 관객은 오리지널에서 가졌던 시각적 경험을 그대로 가질 수 있는가. 거대한 담론을 형성하는 작가의 아이디어는 과연 누구의 소유인가. 작품이 호주머니에 쏙 들어갈 정도의 크기, 즉 누구나 소유 가능한 크기가 됐을 때, 작가의 아이디어 역시 소장자의 소유가 될 수 있는 것인가.

    놀라운 것은 페티본이 워홀의 작품을 복제하기 시작한 것이 워홀이 1962년 전시회를 열고 불과 2년이 지났을 때부터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곧 페티본은 워홀이 유명해지기 이전부터 그의 작품이 지닌 팝아트의 복제라는 특징을 간파했다는 걸 의미합니다. 뉴욕을 중심으로 팝아트가 폭발적인 관심을 끌고 있을 때 페티본은 미국 서부 미술의 큰 줄기인 ‘개념미술’의 전통을 조용히 이어갔으며, 이런 노력은 2005년 펜실베이니아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나서야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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