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0

2010.04.06

어떻게 조각이 내 맘대로 변하지?

어네스토 네토 ‘Navedenga’

  • 김지은 MBC 아나운서·‘예술가의 방’ 저자 artattack1@hanmail.net

    입력2010-03-31 10: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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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조각이 내 맘대로 변하지?

    ‘Navedenga’, 365.8×457.2×640.1cm, 1998

    “당신이 그림을 보기 위해 뒷걸음질할 때 등 뒤에 부딪히는 것이 바로 조각이다.”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지만, 조각은 기본적으로 공간을 점유하는 3차원적 입체 조형물이란 의미가 가장 크겠죠. 우리 몸이 공간에서 움직이다 마주하는 대상이란 뜻이니까요. 회화가 대부분 벽에 붙어 있다면, 조각은 구체적인 물질로 구현돼 우리가 사는 공간에 설치됩니다. 그런데 보통 우리는 조각과 부딪히지는 않습니다. 그냥 조각 주변을 돌면서 감상하죠.

    하지만 브라질 출신 작가 어네스토 네토(Ernesto Neto·46)의 작품을 보면, 조각이 등 뒤에 부딪힌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습니다. 또 우리가 알고 있는 조각의 개념이 현대 미술에서 어떻게 변하는지도 가늠할 수 있죠. 4월 26일까지 뉴욕 현대미술관 MoMA에서 전시하는 네토의 작품 ‘Navedenga’(1998)는 반투명한 섬유를 마치 침대에 드리운 커튼처럼 설치한 뒤, 모래로 무게 중심을 잡아 조각의 형태를 만들고, 조각 안에는 부드러운 형태의 스티로폼을 두었습니다. 천장에는 역시 정향(향신료를 추출할 수 있는 열매로 열대지역에서 난다)을 가득 담은, 같은 천의 주머니가 매달려 있죠. 전시공간을 가득 채운 네토의 작품은 보는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한 번에 전체 모습을 인지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전통적인 조각과 다른 점입니다. 작품을 제대로 보기 위해 관객은 자발적으로 조각의 주변으로 몸을 움직여야 합니다. 작품 안으로, 밖으로 움직이다가 사람 피부처럼 부드러운 천에 손을 댑니다. 전통조각이 주로 단단한 질감의 재료를 깎거나 붙여 만들었다면, 이 작품은 관객이 어떤 방향으로 힘을 가하느냐에 따라 형태가 변합니다.

    그의 조각에는 언제나 후각이 따라붙습니다. ‘Navedenga’는 브라질의 원시림을 상상케 하는 정향 냄새가 어떤 사람에게는 고향을, 어떤 사람에게는 이국적인 공간을 떠올리게 하죠. 관객에 따라 작품의 해석이 다양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작품 제목 ‘Navedenga’는 그가 만든 신조어인데요. 포르투갈어로 ‘nave’, 즉 배를 의미하는 듯합니다. 환상 속에나 나올 법한 우주선 같기도 하고 아기를 보호하는 엄마의 뱃속 같기도 합니다. 매우 촉각적이면서도 방 전체를 채운 방대한 스케일로 여성성과 남성성을 동시에 보여주는데요. 두 특성의 공생은 마치 생물처럼 풍성한 의미를 잉태합니다.

    이처럼 ‘Navedenga’는 능동적인 관객의 참여로 작품을 완성하는 현상학적 조각이자, 조각과 건축의 경계를 실험하는 공감각적 설치물입니다. 이는 관객의 능동성을 요구하며 예술 장르에서의 관객의 의미를 새로운 틀로 재해석하는 것입니다. 작품과 관객의 ‘몸’ 사이에 일어나는 관계, 이 시대의 조각이 가장 관심을 갖는 부분이라는 걸 알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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