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4

2009.12.08

“한국서 1년간 25조 벌어갔다니!”

외국인, 파생금융상품서 대박 … 환율 하락에 베팅한 한국은 ‘쪽박’

  • 윤도진 이데일리 증권부 기자 spoon504@lycos.co.kr

    입력2009-12-03 13: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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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서 1년간 25조 벌어갔다니!”

    금융위기 이후 13개월간 파생시장에 불거진 엄청난 적자는 외환시장이 요동쳤기 때문이다.

    최근 한 일간지는 지난해 금융위기 이후 1년 동안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자본시장에서 파생금융상품 거래로 챙긴 수익이 25조원에 달한다고 보도해 충격을 던졌다. 금융위기가 한국의 내부 사정 때문에 촉발된 것도 아니고, 금융위기라는 높은 파도에 휩쓸린 것은 국내 투자자나 외국인 투자자나 마찬가지였을 텐데 그 와중에 외국인만 한국에서 25조원을 벌어갔다니! 외국과의 경쟁이라면 스포츠 경기 하나에도 밤잠을 설치는 국민 정서를 생각하면 ‘사촌이 땅을 산 것’보다 몇 배나 더 배 아픈 소식이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한국은행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지난해 9월부터 올 9월까지, 정확히는 총 13개월 동안 파생금융상품수지가 185억5320만 달러 적자(유출超)를 기록했다. 월별 평균 환율로 환산하면 24조8232억원, 올해 우리나라 예산 10분의 1에 가까운 규모다.

    요동친 환율로 국가예산 10분의 1 ‘증발’

    파생상품이란 간단히 말해 주식이나 외환, 채권 같은 자산을 선물과 옵션이라는 금융기법과 배합해 만든 상품이다. 자본시장에서는 금융기관이나 기업들이 수익을 극대화하거나 위험을 줄이고자 앞다퉈 파생상품을 내놓기도 하고, 투자대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파생상품수지를 되짚어 보면 한국은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연간 단위로 4년간 흑자(유입超)를 유지해왔다. 2006년 잠시 소폭 적자(3억4990만 달러 유출超)를 기록했지만 2007년에는 51억52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다시 말해 한국이 늘 손해보는 장사를 한 것은 아니란 얘기다.



    그런데 지난해 금융위기 이후 13개월간 파생시장에서 불거진 엄청난 적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외환시장이 요동을 치기 시작한 데서 비롯됐다. 여기에 국내 금융기관이나 수출기업 대부분이 향후 환율 하향세를 예상하고 너도나도 환율변동 위험을 피하기 위해 ‘선물환’이나 ‘키코(KIKO·Knock-In, Knock-Out)’라는 환헤지 파생상품을 보험처럼 이용한 것이 문제가 됐다.

    한국은행 이영복 국제수지팀장은 “기본적으로 국내 금융기관들이 금융위기 이전에 선물환을 매도한 게 악재가 됐다”고 밝혔다. 그는 “그전까지 이익을 봤던 기관들이, 환율이 하향 안정될 것이라는 데 베팅했다가 금융위기 이후 환율이 급격히 상승하자 통화 관련 파생거래에서 큰 손실을 봤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초 930원이던 달러-원 환율은 지난해 9월 미국의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지면서 9월 말 1200원까지 올랐다. 지난 3월에는 급기야 1600원 가까이까지 치솟았다.

    선물환은 나중에 일정액의 외국 통화를 미리 정한 시세로 매매할 것을 약속해둔 외국환 상품으로, 국내 기관들은 환율이 내릴 것이라 예상하고 선물환을 매도했다. 하지만 금융위기로 환율이 급등하자 손실을 보게 된 것이다. 키코 역시 환율이 일점 범위 안에서 변동할 경우 미리 약정한 환율에 약정금액을 팔 수 있도록 한 파생금융상품인데, 이 범위를 넘어서면 손실 발생이 불가피한 탓에 기업들의 손실이 불거졌다.

    그렇다면 외국인들은 무슨 용쓰는 재주가 있기에 금융위기 와중에 파생상품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겼을까. 한국은행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정확히 말해 한국이 손실을 본 것은 맞지만 외국인들이 이익을 벌어갔다는 말은 틀리다. 외국인들이 한국과 적극적으로 파생상품 거래를 해 수익을 내려 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파생상품 거래, 특히 환헤지 거래에서 외국인들에게 수익을 내준 것은 우리나라 ‘선수’들이 환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외국 ‘선수’들이 벌여놓은 파생상품 시장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서 1년간 25조 벌어갔다니!”

    ‘키코(KIKO)’에 가입했다가 피해를 본 중소기업 관계자들이 대책을 호소하고 있다. 이 중 일부는 시중은행을 상대로 “키코 상품이 불공정 약관으로 돼 있어 계약이 무효”라는 내용의 채무부존재 확인소송과 은행의 불완전 판매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환율안정, 수지개선 중 … 외환시장이 관건

    내기에 비유하자면 환율이 내려갈 확률을 9, 오를 확률을 1로 보는데 ‘오른다’는 쪽에 걸 선수는 없다. 하지만 카지노에선 반대편에 걸어주는 딜러가 있어야 게임이 성립되는 것처럼, 파생상품도 판을 벌이는 쪽은 ‘오른다’에 걸어 유동성을 공급해줘야 거래가 이뤄지는 것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다만 판을 만들어놓고 있는 것이 외국인이었다는 게 파생상품 거래를 통해 막대한 자금이 해외로 유출된 이유인데, 이는 원화가 아닌 달러가 기축통화인 이상 우리로선 어쩔 수 없다”라고 말했다. 파생상품을 매매하는 시장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의 기량이 외국 ‘선수’들보다 떨어지는 문제는 아니라는 얘기다.

    다행히 최근에는 환율이 안정되면서 파생상품수지도 적자폭을 줄여가고 있다. 지난 5월에는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로 가져온 달러를 대규모로 상환하면서 일시적으로나마 13억4110만 달러 흑자를 기록했고, 6~7월엔 각각 2억7270만 달러, 7억2100만 달러 적자로 종전보다 손실을 줄였다.

    전문가들도 선물환이나 키코 같은 환헤지 상품은 올해까지 대부분 포지션 정리가 되고, 세계 경기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을 경우 환율도 안정될 것이기 때문에 파생상품수지 적자도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만일 또다시 환율이 급등락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어떨까. 이영복 팀장은 “다시 금융위기 같은 상황이 터져 외환시장이 급변동한다면 파생상품수지 변동성이 확대될 개연성은 크다”고 말했다. 다만 지난 1년여 간 겪은 ‘손실의 기억’이 국내 기업과 금융기관들 사이에 학습효과로 남아 있고, 정부도 관건인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미국과 통화 스와프를 체결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은 그나마 걱정을 덜 수 있는 부분이다.

    좋지 않은 경험은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국내 기관과 기업들도 외환시장 변동에 대비하는 방법을 다양하게 확보해야 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외환시장을 보는 시각엔 ‘쏠림 현상’이 있게 마련이지만, 기관별로 자체 유동성을 충분히 확보하고 해외 거래처와의 결제통화를 다각화하는 식으로 헤지 방식을 넓힌다면 피해는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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