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2

2017.04.05

문화

“박근혜 능력으로 대통령직은 무리”

전두환 전 대통령, 회고록에서 2002년 대선 때 비화 밝혀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7-04-04 09:5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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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월 초 회고록을 출간할 예정인 전두환 전 대통령과 ‘전두환 회고록’ 제1권 혼돈의 시대, 제2권 청와대 시절, 제3권 황야에 서다.[뉴스1]
    • [동아DB]
    총 3권으로 구성된 ‘전두환 회고록’은 200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제1권 ‘혼돈의 시대’는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서거에서부터 자신이 대통령에 오르기까지 과정을 다루고, 제2권 ‘청와대 시절’은 대통령 재임 중 국정운영 내용을 담고 있다. 제3권 ‘황야에 서다’는 자신의 성장 과정과 군인 시절, 그리고 대통령 퇴임 이후 일 등을 담았다(이하 호칭은 생략).





    제1권 ‘혼돈의 시대’

    전두환은 10·26사태 이틀 뒤인 1979년 10월 28일 당시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과 처음 독대했고, 이후 최 대통령이 퇴임할 때까지 직접 만나거나
    통화한 일이 모두 70회가량 된다고 회고록에 기술했다.

    그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이 그 자리(합동수사본부장)에 있었어도 그처럼 자주 부르거나 전화를 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 개인에 대해 호감까지는 몰라도 신뢰감을 보여주셨다고 생각한다.



    어떤 때는 대통령이라는 신분에서 수하의 사람에게 쉽게 하기 어려운 얘기를 털어놓으시는 것처럼 느껴졌다.

    얘기를 마치신 후 아주 후련하다는 표정을 짓곤 하던 모습이 내게는 쉬 잊히지 않는 느낌으로 남아 있다”고 기술했다. 전두환은 회고록에서 최 전 대통령이 자신의 대통령직 승계와 관련해 끝까지 함구한 데 대한 아쉬움을 이렇게 토로했다.

    “내가 12·12 때 겁박했다거나, 그 어른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도록 상황을 몰고 갔다거나 하는 음해를 받는 사실에 대해 속 시원한 해명 말씀 없이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느꼈다.” 하지만 전두환은 “나의 시간 속에서 그 어른은 언제나 나의 선임자였다”며 긍정적으로 추억했다.



    제2권 ‘청와대 시절’

    전두환은 회고록 제2권 ‘청와대 시절’에서 1987년 6·29 선언에 얽힌 비화를 상세히 소개했다. 회고록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1987년 6월 17일 오전 10시
    전두환은 청와대 집무실로 당시 민주정의당(민정당) 노태우 대표를 불렀다.
    전 : “국민의 뜻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소. 직선제 수용을 전제로 한 대책을 마련하시오.”
    노 : (낭패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안 됩니다. 각하. 민정당이 4·13 호헌조치에 따라 호헌을 주장해오다 당론을 바꿔 이제 다시 직선제를 받아들인다고 하면 민정당 내부를 설득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직선제 아래에서 과연 이번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전 : “직선제로 해도 반드시 승리할 수 있소.”

    6월 19일 청와대 별관
    노 : “각하의 직선제 수용 지시를 수용하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제가 직선제 수용을 포함한 민주화 조치를 건의한 것으로 하고, 각하께서 크게 노해 호통치는 그림을 연출해주십시오.”
    전 : (속으로) ‘노 대표가 너무하는군.’

    6월 22일 청와대
    전 : “나더러 반대해달라고 한 것은 없던 일로 합시다. 그것은 국민을 속이는 것이고 위선적인 처사요. 세상에는 비밀이 없는데 나중에 진실이 알려지면 훗날 나와 노 대표를 국민이 어떻게 볼 것인지 생각해야 하지 않겠소.”
    전두환은 이날 청와대에서 윤보선, 최규하 전 대통령을 만나 ‘4·13 호헌조치를 거두겠다’는 뜻을 밝혔다.

    6월 24일 청와대
    전두환은 오전에는 민주당 김영삼 총재와, 오후에는 신민당 이민우 총재, 한국국민당 이만섭 총재 등 야당 대표와 연쇄회동을 갖고 야당 지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날 저녁, 전두환은 노태우 대표와 청와대 별관에서 만찬을 함께 하며 이렇게 말했다. “6·29 선언의 성공을 위해 노 대표가 구상하고 주도하는 정치적 제안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파격적인 조치라 하더라도 모두 받아주겠소. 내 약속하오.”

    6월 27일 청와대 별관
    전두환, 노태우, 전두환의 장남 재국이 만난 자리에서 노 대표는 자필로 써온 6·29 선언 발표문을 읽었다.
    전 : “이제 최종 결론이 났으니 최대한 보안을 유지해야 합니다. 청와대나 안가에도 오지 말고 예상치 못한 급한 일이 생기면 우리 큰애를 통해 서면으로 연락하시오. 재야에 밀리는 상황에서 발표하면 빛이 나지 않으니까 민헌국(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이 주도하는 대행진 행사 추이를 지켜보고, 일요일인 28일 하루 더 지켜본 뒤 조용하게 되면 29일 극적으로 발표하시오.”



    제3권 ‘황야에 서다’

    10·26사태 직후 당시 합동수사본부는 김계원 대통령비서실장 방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금고를 발견하고, 9억5000만 원 상당의 수표와 현금을 찾아냈다. 정부 공금이 아니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사용한 자금이었다는 권숙정 비서실장 보좌관의 진술에 따라 이 돈은 장녀 근혜 양에게 전달됐다.

    전두환은 회고록에서 “얼마 후 박근혜 씨가 10·26 진상을 철저히 밝혀달라는 부탁과 함께 내게 수사비에 보태달라며 3억5000만 원을 가져왔다”고 기술했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새누리당 대선후보 시절이던 2007년 TV토론에서 “9억 원을 받아 3억 원을 수사 격려금으로 돌려준 것이 아니라 6억 원을 받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한편 전두환은 회고록에서 최태민에 얽힌 비화도 소개했다. “10·26 이후 박정희 대통령 시절 영애 근혜 양과 함께 구국봉사단, 새마음봉사단 등을 주도해왔던 최태민 씨를 상당 시간 전방의 군부대에 격리시켜놓았다. 그때까지 근혜 양을 등에 업고 많은 물의를 빚어낸 바 있고, 그로 인해 생전의 박정희 대통령을 괴롭혀온 사실은 이미 관계기관에서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다. 최씨가 더 이상 박 대통령 유족의 주변을 맴돌며 비행을 저지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격리시켰다.

    그러나 처벌을 전제로 수사하지는 않았다. 최씨 행적을 캐다 보면 박정희 대통령과 그 유족의 명예에 큰 손상을 입히게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나의 이러한 조치가 근혜 양의 뜻에는 맞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 뒤  (근혜 양이) 구국봉사단 등의 활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해왔지만, 시대 상황에 비춰볼 때 적절치 않다고 판단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두환은 2002년 대선 때 박 전 대통령이 자신에게 도움을 청했던 일화도 회고록에서 소개했다. “(2002년 대선 때) 박근혜 의원은 내게 사람을 보내 자신의 대권 의지를 내비치며 힘을 보태줄 것을 요청해왔다. 나는 생각 끝에 완곡하게 그런 뜻을 접으라는 말을 전하라고 했다.

    박 의원이 지닌 여건과 능력으로는 무리한 욕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 의원이 대통령이 되는 데는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통령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는 어렵다고 봤고, 실패할 경우 ‘아버지를 욕보이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전하라고 했다. 나의 이러한 모든 선의의 조치와 충고가 (박근혜에게) 고깝게 받아들여졌다면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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