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ART | 김지은의 Art & the City

고통받는 영혼을 위한 붓 터치

관능의 초상화가 렘피카

  • 김지은 MBC 아나운서·‘예술가의 방’ 저자 artattack1@hanmail.net

고통받는 영혼을 위한 붓 터치

고통받는 영혼을 위한 붓 터치

타마라 드 렘피카, ‘장밋빛 속옷 I’(1927), oil on panel, 41.1 × 32.5

1929년 미국 뉴욕 주식시장의 대폭락으로 시작된 ‘경제 대공황’의 여파를 스페인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국내 경제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국민의 원성을 샀던 국왕 알폰소 13세는 31년 공화정이 들어서면서 프랑스로 망명하는 처지가 됩니다. 어느 날 파리 근교를 여행하던 알폰소 13세는 자동차 타이어에 바람이 빠져 길 한가운데서 멈추게 되는데요, 전용 운전사가 타이어를 가는 동안 그는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국왕답게 그들에게 무엇으로 먹고사는지 물었지요.

“이 근방 제분소에서 일했는데, 공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실업자 신세가 됐다우. 한데 당신은 뭘로 먹고사시우?”

“나는 스페인 국왕인데, 나 역시 지금 실업자 신세라우.”

시골 제분소의 노동자나 한 나라의 국왕이나 실업자 신세를 면치 못했던 1930년대 일화입니다. 그러니 당시 예술가도 예외는 아니었겠죠?

폴란드 귀족 출신인 화가 타마라 드 렘피카(Tamara de Lempicka, 1898~1980)는 20대에 백만장자 반열에 오른 초상화가입니다. 알폰소 왕의 초상을 그린 주인공이었고요. 당시 프랑스와 미국에서 초상화 주문을 가장 많이 받은 그녀는 의뢰인이 마음에 안 들면 제작을 거절할 만큼 자부심이 강했습니다. 인상주의 화가들을 향해 ‘그림도 제대로 못 그리는 화가들’이라고 비난했을 정도니까요. 첫 번째 남편과 이혼하고 미국 주식에 손댄 렘피카는 경제 대공황이 닥치자 위기에 봉착하지만 주눅 들지는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용모에 재능까지 갖춘 이혼녀라는 자신의 위치를 활용해 사교계에서 쌓은 명성으로 부호들의 초상을 엄청난 값에 그려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했지요. 나중에 자신의 후원자이던 하울 쿠프너 남작과 결혼한 그녀는 ‘붓을 든 남작 부인’이라는 애칭으로 불립니다.



하지만 그녀 내면에는 언제나 남루하고 고통받는 영혼을 그리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고 하네요. 최근 딸의 증언을 통해 밝혀진 사실입니다. 현실 속에서 렘피카는 미국 화단에 불어닥친 추상표현주의의 폭풍에 밀려 자신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붓을 꺾고 말았거든요. 그녀의 초상화는 오늘날 새롭게 조명받는데요, 마치 미술관에서 고전주의 작가들의 작품을 보는 듯한 정교한 붓 터치, 장식적인 아르데코와 입체파·신고전주의 등의 영향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완벽히 표현해낸 화풍이 인상적입니다. 당시는 금기시됐던 퇴폐적이고 쾌락에 도취된 여성의 관능미는 그녀의 동성 연인으로 알려진 이라 페로(Ira Perrot)의 초상 ‘장밋빛 속옷 I’(La Chemise rose I, 1927)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New Exhibition

고통받는 영혼을 위한 붓 터치

일본현대미술전

김윤재 개인전 겸재의 진경산수화를 입체화한 ‘산수조각(山水彫刻)’이라는 독창적인 기법의 작품을 선보인다. 출품작 중 ‘그리운 금강산’ 시리즈 1은 겸재의 ‘금강내산(金剛內山)’을 모델로 삼아 제작했다. 서울 부암동의 독특한 갤러리를 방문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5월15일까지/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 www.curiosity.co.kr

고통받는 영혼을 위한 붓 터치

김윤재 개인전

일본현대미술전 ‘Re:Membering - Next of Japan’ 미노와 아키코, 다구치 가즈나, 곤도 게이스케 등 30대 일본작가 20여 명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인다. 1990년대 이후 일본 현대미술의 단면을 볼 수 있는 기회다/ 5월14일~6월25일/ 두산갤러리, 대안공간 루프/ 02-708-5050


김영갑 개인전 2005년 루게릭병으로 사망한 고 김영갑의 사진전이 열린다. 작가는 1985년 제주도에 정착한 뒤 사망 직전까지 그곳의 자연을 카메라에 담았다. 작고 후 처음 서울에서 열리는 전시회에는 제주도 중산간 지대의 아름다움을 파노라마 사진으로 담은 미발표작 40여 점이 전시된다/ 5월14일~7월19일/ 충무갤러리/ 02-2230-6629

호경윤 ‘아트인컬처’ 수석기자 www.sayho.org




주간동아 2009.05.19 686호 (p85~85)

김지은 MBC 아나운서·‘예술가의 방’ 저자 artattack1@hanmail.net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218

제 1218호

2019.12.13

“긴 터널 빠져나오자 우울의 고장”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