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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강유정의 ‘영화에 수작 걸기’

불온한 욕망 들추는 불쾌한 진실

박찬욱 감독의 ‘박쥐’

  • 강유정 영화평론가·국문학 박사 noxkang@hanmail.net

불온한 욕망 들추는 불쾌한 진실

불온한 욕망 들추는 불쾌한 진실

신부 ‘상현’ 역의 송강호(위)와 ‘태주’ 역의 김옥빈.

영화 ‘박쥐’는 심장의 위치가 어디인지 알게 해주는 강렬한 작품이다. 눈을 찌르는 듯한 색감의 대조, 불길한 적막을 찢는 괴기한 관악기의 음률은 존재론적 질문을 휩싸고 돈다. ‘친구의 아내와 놀아난 신부’, 이 한 줄의 시놉시스만으로도 호기심이 발동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박쥐’는 불륜과 살인이 뒤엉킨 치정 멜로이자, 그 지독한 통속성을 경신한 완성도 높은 미학적 결과물이다. 그런데 이 영화, 아름답지만 매우 불쾌하다. ‘박쥐’는 박찬욱 영화에 대한 기시감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박쥐’는 드라큘라가 등장하는 장르 영화의 외피를 입고 있지만 사실상 박 감독이 지금까지 견지해온 주제를 심화 반복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옳다. 박 감독은 그의 영화를 통해 세상의 금기를 넘어서는 일탈을 탐구해왔다. ‘공동경비구역 JSA’가 남과 북이라는 경계 넘기, ‘복수는 나의 것’이 사회계급 넘어서기, ‘올드 보이’가 근친상간이라는 금기 위반을 다룬다면 ‘박쥐’는 인간의 경계에 대해 질문한다. 과연 어디서부터 인간이고, 어디까지가 인간인가. 박 감독은 인간다움의 정의를 다시 묻고 있는 것이다.

반론이 가능하다. 언뜻 보면 이 영화는 ‘사제’를 통해 신성한 인간과 죄책감의 문제를 다루는 듯싶다. 하지만 영화에서 신부는 직업에 불과하다. 이 직업은 박 감독이 정말 던지고 싶은 질문을 가리는 훌륭한 커튼이 돼준다. 친구의 아내와 섹스를 하고 피를 빨아먹거나 살인하는 것은 신부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다.

그런데 이쯤에서 한번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신부가 아니라면, 그러니까 평범한 인간이라면 남의 아내와 섹스하고 피를 먹고 살인을 해도 되는 것일까? 물론 대답은 ‘안 된다’다. 신부 상현이 저지르는 행동은 신부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친구의 아내를 탐하거나 흡혈을 하거나 살인을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바로 인간의 조건이다.

‘박쥐’가 불쾌하고 불편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신부 상현은 한 여자를 만나 신부이기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최소 윤리를 위배한다. 상현이 흡혈귀가 된다는 설정은 그가 태주를 향한 욕망에 굴복한 순간 버린 것이 사제라는 직함이 아니라 인간성 자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상현은 태주에게 말한다. “내가 흡혈귀가 되지 않았다면 너랑 섹스했겠어?”라고. 하지만 이 말은 모순이다. 상현은 선후관계를 인과관계로 오해하고 있다. 상현은 흡혈귀가 되고 난 뒤 태주를 탐한다. 사실 그는 여자와 섹스하고 살인하기 위해 흡혈귀가 됐다. 흡혈귀는 상현의 일탈과 위반을 설명할 수 있는 훌륭한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순교를 다짐했다가 ‘실수로’ 흡혈귀가 되었기에 그는 자신의 욕망을 일종의 전염병처럼 다룬다. 그에게 욕망은 매우 우연한 사고로 설명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 욕망은 어딘가로부터 수혈된 피가 아닌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있었던 것이다. 상현은 다만 미칠 듯이 뿜어져 나오는 욕망의 근간을 자신의 내면이 아닌 외부에서 찾고 있을 뿐이다. 수혈된 피, 그것은 핑계에 그친다. 이런 점은 허벅지를 내려찍는 상현의 모습에 잘 드러나 있다. 이 장면에서 상현은 성자보다는 오난의 형상에 가까워 보인다. 수혈 전부터, 흡혈귀가 되기 이전부터 그는 한 치도 안 되는 성기의 요구에 쩔쩔매는 불쌍한 인간이었다.

그러므로 영화는 불온한 욕망을 숨긴 채 살아가야만 하는 모든 인간의 운명을 그린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욕망을 마음껏 드러내기 위해 흡혈귀 바이러스 같은 사고가 필요한 평범한 사람들의 드라마 말이다. 상현을 억누르는 신부라는 직함은 우리에게 아버지, 학생, 교수와 같은 수많은 사회적 호명으로 변주된다. 우리는 호명에 값하기 위해 허락되지 않은 욕망을 은닉한다. 남의 아내를 보고 욕망을 느끼지 않아서가 아니라 마음속으로 뜨겁게 간음하지만 ‘이름’을 지키기 위해 외면한다. 박 감독은 명민하게도 치정 멜로, 괴기극이라는 매우 대중적인 장르를 통해 비대중적인 위반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만일 ‘박쥐’를 보고 불편하고 불쾌하다면 그것이야말로 박 감독이 욕망했던 바로 그 반응일 것이다.



주간동아 2009.05.19 686호 (p84~84)

강유정 영화평론가·국문학 박사 noxk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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