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9

2009.01.13

축구 프리스타일 세계대회 한국서 연다

  •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입력2009-01-07 19: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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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 프리스타일 세계대회 한국서 연다
    베컴, 루니, 호날두, 호나우디뉴, 카카, 앙리, 메시…. 불세출의 축구 스타들이다. 축구세계에선 가히 ‘신’에 범접할 만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이들조차 기꺼이 고개를 숙이는 또 한 명의 축구 스타가 있다. 축구 프리스타일 세계챔피언 우희용(45) 씨다. 한국에선 아직 낯선 이름이지만 축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유럽에서는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세계적 ‘축구 아티스트’다.

    축구 프리스타일은 축구공을 지면에 떨어뜨리지 않고 발과 어깨, 가슴, 머리 등 온몸을 이용해 자유자재로 연기를 펼쳐 보이는 고난도 기술이다. 과거에는 보통 축구선수들이 개인기 향상을 위해 연습하는 ‘리프팅’ 기술 정도로 인식됐으나, 우씨는 1990년대 중반 유럽에서 축구 잔기술을 더욱 체계화해 누구도 따라하기 어려운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승화시켰다.

    고3 때 무릎 부상으로 축구선수 생활을 중단한 우씨가 세계적인 원조 축구 프리스타일 챔피언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다. 축구를 포기하고 고교 졸업 후 용역회사에 입사해 근무하며 4년간 남몰래 피나는 연습으로 기술을 익힌 우씨는 1989년 5시간6분30초 동안 쉬지 않고 헤딩을 해 기네스북에 등재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프리스타일을 세계적인 문화 코드로 만들어보자고 마음먹게 된 계기는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축구 프리스타일에 대한 현지인들의 관심과 열정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

    “로마에서 나폴리로 이동하는 도중 집시 여인 5명에게 둘러싸여 지갑을 소매치기 당했는데 오히려 그게 전화위복이 됐죠. 한 달 쓸 돈을 다 빼앗겼는데 어떡합니까. 끼니 때울 돈이라도 마련하려고 월드컵 경기장 주변뿐 아니라 길거리에서도 축구 묘기를 펼쳐 보였는데, 거기서 돈도 돈이지만 프리스타일에 대한 작은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이후 주변의 권유로 독일행에 오른 우씨는 여러 공연을 통해 갈채를 받았고, 현지 언론에 소개되며 알아보는 이들이 늘었다. 이후 하와이와 미국에 이어 2002년 한일월드컵 직후엔 축구 종주국인 잉글랜드까지 건너가 프리스타일의 진수를 선보였다. 덕분에 잉글랜드에선 세계적 스타 호나우디뉴와 함께 나이키 광고를 촬영하게 되면서 명성을 얻었다. 2003년 네덜란드에서 열린 첫 프리스타일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며 이 부문 세계 지존으로 인정받은 우씨는 이듬해 ‘세계프리스타일축구연맹(WFFF)’을 창설해 축구 종주국인 잉글랜드의 위상에 도전장을 던졌다.

    “올해 목표는 프리스타일 원조국으로 한국에서 첫 세계대회를 여는 것이에요. 1월 연맹의 사단법인 등록을 마치고, 6~7월경 대회를 개최할 계획입니다. 장기적으로는 12년 후 올림픽에서 최소한 시범종목에라도 채택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꿈이자 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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