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9

2009.01.13

천수이볜 재수감 곱씹어보기

  • 하종대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입력2009-01-07 1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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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의 아들’로 불리던 천수이볜(陳水扁) 대만 총통이 석방되는가 싶더니 2009년 새해를 앞두고 또다시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

    타이베이(臺北) 지법 차이서우쉰(蔡守訓) 재판장은 지난 12월29일 오후 재판을 열고 12시간 넘는 심리 끝에 30일 새벽 “범죄 혐의가 중대한 데다 관련 인물 간 증거 인멸과 조작의 우려가 있다”며 천 전 총통의 재수감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천 전 총통은 석방된 지 17일 만인 이날 새벽 3시50분경 당초 수감됐던 타이베이의 투청(土城) 구치소에 재수감됐다.

    천 전 총통에 대한 구속 수감은 정권 교체와 ‘죽은 권력’에 대한 검찰의 ‘하이에나’ 수사, 사법부의 독립성 결여 등 곱씹어볼 만한 대목이 적지 않다.

    천 전 총통에 대한 비리 수사는 2008년 5월 그가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자마자 곧바로 시작됐다. 새 총통에게 충성 경쟁을 벌이듯 대만 검찰의 수사는 속도를 냈고, 9월부터 천 전 총통 주변 인물에 대한 구속이 잇따르더니 두 달 뒤인 11월13일 천 전 총통도 결국 철창에 갇혔다. 그러나 그의 재판을 맡은 타이베이 지법 저우잔춘(周占春) 재판장은 12월12일 “(천 전 총통은) 도주의 우려가 없다”며 무보석으로 석방했다.

    정치에 휘둘린 대만 사법부



    저우 재판장의 석방 판결은 ‘살아 있는 권력’의 뜻을 거슬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으면서도 적잖은 파장을 낳았다. 그가 천 전 총통 시절 사법원 인사처장을 지냈다는 점을 근거로 일각에서 석방 결정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대만 검찰은 즉각 항고했지만 저우 재판장은 기각했다. 그러자 타이베이 지법은 그의 재판권을 빼앗아버렸다. 지난 12월25일 재판장 회의와 투표를 거쳐 만장일치로 천 전 총통에 대한 재판을 2006년부터 그의 국무기요비(국가기밀비) 유용 혐의에 대한 재판을 맡고 있던 차이서우쉰 재판장에게 넘기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민진당 등 야당이 크게 반발했다. 차이 재판장은 2007년 8월 당시 국민당 총통 후보였던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타이베이 시장 재직 시절 판공비를 유용한 혐의로 검찰이 기소한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던 인물로 친(親)국민당 성격의 판사였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저우 재판장이 석방한 천 전 총통을 곧바로 재수감했다.

    천 전 총통은 수감되자마자 16일간 단식을 강행하며 정치적 박해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7억4000만 대만달러(약 299억원)를 돈세탁해 해외로 빼돌린 까닭에 대만 국민들은 그에게 별로 동정심을 표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권력의 입맛에 맞지 않는 재판을 한다며 재판권을 빼앗은 사법부를 보면서 대만 국민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자꾸 한국의 어두웠던 정치시절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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