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9

2009.01.13

“몰빵식 환헤지, 이러다 또 탈난다”

‘올해의 딜러’들이 말하는 2008년 외환시장의 애환과 교훈

  • 진행=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9-01-07 17: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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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빵식 환헤지, 이러다 또 탈난다”

    12월31일 ‘2008 올해의 딜러’로 선정된 이병섭 신한은행 차장(왼쪽)과 고용희 하나은행 차장이 격동의 한 해를 회고했다.

    2008경제계 키워드’를 꼽자면 환율은 최상위에 오르고도 남을 만하다. 933원으로 2008년을 시작한 원-달러 환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급상승해 1500원 선을 뚫을 정도로 크게 출렁이다, 지난 12월30일 종가 1259.5원으로 마감됐다(45쪽 그래프 참조). 1년 내내 ‘외환전쟁’ ‘롤러코스터 환율’ ‘원화가치 폭락’ 등 무시무시한 단어가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고, 기업과 가정은 고(高)환율 직격탄에 고전했다.

    격동의 한 해가 마무리돼가던 지난 12월15일, 국내 외환딜러들의 모임인 한국포렉스클럽은 인터뱅크(Interbank·외국환 업무를 허가받은 은행 간 외환거래를 담당하는 딜러) 부문 ‘올해의 딜러’로 고용희(42) 하나은행 차장과 이병섭(43) 신한은행 차장을 선정했다. 환율전쟁 최전선인 원-달러 스팟, FX스와프 부문에서 각각 활약하고 있는 이들은 거래를 활발히 벌여 외환시장 유동성 공급에 크게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외환딜러들이 1년 중 유일하게 느긋한 점심식사를 할 수 있는 날이라는 12월31일(서울외환시장은 12월30일까지 열린다), ‘올해의 딜러’들을 만났다.

    -2008년 외환시장을 외환위기 때인 1997~98년과 비교하면 어떤가요.

    고용희 | “더 어려웠습니다. 그때는 우리와 동아시아의 내부 문제 때문에 외환위기를 겪었죠. 그만큼 해결책을 빨리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미국발(發) 위기였습니다. 우리 스스로 풀 수 없는 문제인 거죠. 또 10년 전보다 금융시장 개방 폭이 커서 국내에 미치는 외부의 영향을 막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병섭 | “외환위기 때는 주식시장의 사이드카처럼 하루 환율 변동 폭을 제한하는 장치가 있었어요. 그러니 이번처럼 하루에 100원 넘게 변동할 일이 없었죠. 하지만 달라진 서울외환시장의 위상을 확인한 해이기도 해요. 신한은행은 2008년 3월부터 리먼브러더스와의 거래를 중지했어요. 메릴린치와의 거래도 중단했고요. 외환위기 때는 거꾸로 그들이 한국과의 거래를 거절했죠.”



    -지난 한 해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을 꼽는다면.

    | “단연 리먼브러더스 파산 소식이죠.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9월15일 아침, 제주도 고향 집에 있다가 미국 뉴욕에서 날아온 소식을 받았습니다. 그 순간 밀려든 공포감은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출근해야겠는데 비행기 표를 구할 수 없어 전화로 뉴욕시장에 내놓은 모든 주문을 취소했습니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가장 기억 남는 사건”

    |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10월30일)이 리먼브러더스 파산 다음으로 꼽을 수 있는 뉴스라고 봐요. 이때부터 롤러코스터 외환시장이 안정 국면으로 접어들었으니까요. 이후 한국은행이 시중에 푼 외환이 170억 달러가량 되고요. 그 덕에 외환위기 가능성이 매우 낮아졌죠.”

    “몰빵식 환헤지, 이러다 또 탈난다”
    -각국 통화와 비교해볼 때 원화가치 하락이 두드러졌습니다. 달러 대비 원화가치가 작년보다 25%가량 떨어졌는데요.

    |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때문에 자금이 필요한 외국인들이 주식을 매도해 달러로 바꿔 나갔기에 달러 수요가 컸습니다. 무역수지 적자도 영향을 끼쳤고요.”

    | “그동안 원-달러 환율이 너무 낮았기에 재조정된 면도 있다고 봐요. 외환위기 때는 반도체 수출 호조, 이번에는 조선 수주량 호조로 환율이 지나치게 낮게 유지돼왔거든요.”

    -앞서 거래한 사람을 추종하는 데 따른 쏠림 현상이 국내 외환시장에서 지나치게 나타나기도 했는데요.

    | “하루 외환거래량이 70억~80억원으로 외환시장 규모가 작은 것이 원인 중 하나지만, 외환시장 참가자 수가 적은 게 더 큰 문제라고 봅니다. 많은 국민이 참여하는 주식시장은 쏠림 현상이 훨씬 덜하죠. 결국 참가자 수가 증가해야 해결될 문제입니다.”

    | “우리 기업들의 헤지 습관을 지적하고 싶어요. 환율이 계속 낮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 생각해 외환위기 때는 바이(Buy) 헤지를 안 했고, 이번에는 특히 조선업계에서 유입되는 달러를 전부 팔아 문제가 됐죠. 이런 투기성 짙은 ‘몰빵’식 헤지 습관을 버려야 해요.”

    -급격한 환율 변동을 막기 위해 외국인 송금 제한 등 제재 장치를 신설하자는 의견도 있는데요.

    |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인데, 그게 가능할까 싶습니다. 시장 참여자가 늘고 리스크 관리에 더 신경 쓰는 것으로 부작용에 대비해야죠.”

    | “외환 전문 애널리스트 부족도 풀어야 할 과제예요. 외환시장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이 나와야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어 쏠림 현상도 줄어들 겁니다.”

    -요즘 환율 때문에 어려운 기업이나 개인이 참 많습니다.

    | “주변에 가뜩이나 반 토막 난 해외펀드가 환율 때문에 또 반 토막 난 사람들이 많죠. 형님이 사업을 하는데 엔화 대출 때문에 매우 힘든 상황입니다. 환율은 경제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생활 등 모든 면에 영향을 끼칩니다. 그걸 다시 한 번 깨닫는 계기가 됐다고 봅니다.”

    | “저라면 절대 엔화 대출을 받지 않았을 거예요. 경기가 좋을 땐 엔화 대출이 유리해 보이지만 불황기에는 요즘 같은 문제가 터지게 마련이죠. 이에 대비한다고 엔화 대출을 받으면서 환(換)헤지를 하는데, 그럴 경우 원화 대출과 별 차이가 없어요.”

    -2008년 ‘환란’을 통해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 “외환위기 때 환율의 중요성을 절감했음에도 지난 10년간 잊고 지낸 게 사실입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 환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깨달았으면 합니다. 환율이 좋을 때 앞으로도 마냥 좋으리라는 사고를 버려야 합니다. 언젠가는 꼭 브레이크가 걸리거든요. 개인이나 기업이나 그때를 염두에 두고 리스크 관리를 해나가야 합니다.”

    | “외환위기 때는 환헤지를 전혀 안 했고, 이번에는 환헤지를 과도하게 했기에 피해가 컸어요. 외국인들은 한국 주식에 투자할 때 자금의 30~40%를 환헤지해요. 반면 우리 기업들은 80~90%를 헤지해왔죠. 이제는 적정한 헤지 비율을 맞춰나가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또 큰 피해가 닥칠 겁니다.”

    -요즘 재테크를 잘하려면 환율부터 공부하라고 하던데요. 환테크로 돈을 벌 수 있다고도 하고요. 외환딜러들은 어떤가요.

    |“증권사 직원과 마찬가지로 외환딜러들도 외환 거래가 금지돼 있습니다. 그래서 외환적금조차 하지 않는 딜러들이 태반입니다.”

    | “저는 은퇴한 뒤에도 외환 거래로 돈을 벌 생각은 하지 않아요. 환율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거든요. 외환시장을 예측하려면 시시각각 움직이는 뉴스를 모두 챙겨야 해요. 또 분석에도 힘써야 하죠. 그런 노력을 기울이면서까지 큰 위험을 감수하느니, 차라리 다른 일을 해서 돈 버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2009년 환율 및 외환시장을 전망한다면.

    | “2008년에는 외부 요인에 의한 환시장 변동 폭이 컸습니다. 새해에는 내부 요인으로 변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벌써부터 건설업과 조선업 구조조정 얘기가 나오니까요. 이런 요인이 해소되면 이른 시일 안에 환율이 안정될 것으로 봅니다.”

    | “원-달러 환율이 1500원 이상으로 급상승하는 일은 없으리라고 봐요. 장기적으로는 달러가치가 하락할 거고요. 미국이 살아남으려면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줄여야 하니까 달러 약세가 될 수밖에 없는 거죠. 또 새해에 경상수지가 흑자로 돌아서면서 원화가치가 상승할 거예요. 원-달러 환율이 1200원 선에서 움직이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외국에서도 한미 통화 스와프 이후 한국에 외환위기가 발생하지는 않으리라 전망하고 있고요.”

    “몰빵식 환헤지, 이러다 또 탈난다”
    고용희 차장은
    1992년 조흥은행 입사.

    1996년 원-달러 스팟 딜링 시작. 2003년 싱가포르 외국환 중개사인 트래디션(Tradition), 2006년 싱가포르 유나이티드 오버시스 뱅크(United Overseas Bank)에서 머니 브로커로 활약. 2007년 3월 하나은행에서 원-달러 스팟 담당.

    “몰빵식 환헤지, 이러다 또 탈난다”
    이병섭 차장은 1992년 조흥은행 입사.

    1997년 이종통화 거래를 시작으로 외환 딜링 시작. 외화채권 투자를 거쳐 2003년 9월부터 FX스와프 담당. 조흥은행이 신한은행으로 합병된 이후에도 FX스와프 딜러로 활약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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