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9

2009.01.13

1급 공무원 되기 ‘運一技九’

능력·처세술에 時運까지 따라야

  • 이선우 방송대 행정학과 교수·한국인사행정학회 회장 bunte@knou.ac.kr

    입력2009-01-07 16: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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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급 공무원 되기 ‘運一技九’
    누구나 자기 뜻대로 인생을 살지는 못한다. 공직생활도 마찬가지다. 동기들보다 빨리 승진한 공무원이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오히려 뒤처지기도 한다. 비록 승진은 늦었지만 그 때문에 덕을 보는 이도 있다. 앞서간 동기들이 1급 내지는 2급 국장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날 때 그 뒤를 이어 더 오랜 기간1급 이상의 직위를 영위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 어떤 공무원은 독특한 성격과 업무처리로 늘 상사와 갈등을 빚으며 승진에 애를 먹다가 정권이 바뀌면서 고속 승진하기도 한다.

    손무가 주창한 道·天·地·將·法 5원칙 지금도 통해

    고위 공무원단에 포함되는 3급 이상의 공무원들은 자신이 언제까지 근무할 수 있을지 예측하기 어렵다. 정년이 보장된 직업공무원이라고는 하지만 3급으로 승진해 10년 이상 공직에 머문 경우가 드물고, 1급의 경우 정년을 채우고 퇴직한 사례가 거의 없다. 그렇다고 고위급 공직자로 승진하기를 바라지 않는 공무원은 없을 것이다.

    공직에서 승진과 장기 근무에 필요한 제1 요소는 자신의 능력이고 제2 요소는 처세술, 제3 요소는 시운(時運)일 것이다. 시운은 어쩔 수 없는 변수라 하더라도 능력과 처세술은 고위 공직자의 필수 역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능력과 처세술은 어떤 것일까. 손자병법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손무가 그 답을 제시하고 있다. 손무는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오나라 왕인 합려를 만나 군주와 관료가 5가지 원칙에 충실하면 부국강병을 이룬다고 역설, 오나라를 중원의 강대국으로 우뚝 서게 했다. 이때 손무가 주창한 5가지 원칙이란 도(道), 천(天), 지(地), 장(將), 법(法)이다.



    도(道)는 정치를 의미한다. 행정공무원이라 해도 정치의 흐름을 무시하고는 좋은 정책을 만들 수 없고, 아무리 좋은 목적이라도 정치적 지지를 받지 못하면 정책화할 수 없다. 따라서 고위 공무원들의 임무 중 하나가 정책 설명을 위한 국회와의 소통이다. 요즘으로 치면 협상력과 설득력, 의사소통 능력, 비전 제시 능력 및 비전에 대한 소명의식, 전략적 사고 등이 해당될 것이다.

    천(天)이란 국민의 여론을 중히 여기는 것. 국가가 처한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풀고자 노력함으로써 국민을 만족시키는 일종의 고객지향적 사고를 고위 공무원들이 가져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지(地)란 정책의 적용 대상을 잘 관리하는 것인데, 요즘으로 치면 공무원들이 전문지식과 식견으로 무장해 추진하려는 정책과 관련된 이해 당사자들에게서 지지를 획득하는 합의 도출 및 조정·통합 능력을 갖춰야 함을 의미한다.

    장(將)이란 정책을 운영할 수 있는 우수한 인재 확보를 말한다. 법(法)이란 법과 제도를 엄격히 해 나라의 질서를 바로잡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손무가 제시한 5가지 원칙이 글로벌 시대라는 오늘날의 고위 공무원들에게 요구되는 역량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개방형 채용 통해 민간인도 3급 이상 임용 가능

    고위 공무원은 부서의 책임자가 된 후 자신의 기능에 대해 시의적절하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받는다. 고위 공무원에게 요구되는 기능은 부서관리자, 엘리트형 정책전문가, 경영전문가, 정치형 관리자, 또는 이 네 가지를 합친 통합형 관리자 등이다.

    부처 성격에 따라, 장·차관의 성향에 따라 실·국장급 고위 공무원들에게 요구되는 기능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정치인 출신, 공직 출신, 전문가 출신, 민간 출신 장관 등에는 정책전문가, 부서관리자, 정치형 관리자, 경영전문가 같은 기능이 요구된다. 그렇다고 특정 유형만 고집하라는 것이 아니라, 특정 유형의 관리자 기능에 충실하되 다른 기능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현재 정부는 고위 공무원 승진 후보자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역량심사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승진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실제 평가를 해보면 앞서 언급한 역량을 충분히 갖춘 후보자가 있는가 하면, 전혀 준비되지 않은 사람도 있다고 한다. 역량을 갖춘 후보자일수록 자신의 기능을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한다. 이러한 역량은 하루아침에 갖춰지는 것이 아니다. 공직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단련되고 훈련되는 것이다.

    요즘 고위 공무원이 되는 길은 과거에 비해 매우 다양해졌다. 특히 능력 있는 일반인이 3급 이상 국장급으로 곧바로 임용되는 경우도 많다. 이들 역시 역량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민간전문가라 해도 고위 공직자의 역량을 고루 갖춘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국장으로서의 자신의 기능 또한 정책전문가나 경영전문가에 국한시키는 경우가 많다. 공직사회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부족한 것도 이들이 임용 후 겪는 어려움이다.

    일본 행정부의 경우, 공직에 들어선 공무원들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과장급까지 승진 가능한 집단, 국장급까지 승진 가능한 집단 등으로 구분해 관리한다고 한다. 일찍부터 자신의 역량을 파악하고 그에 맞춰 공직생활을 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일단 공무원이 되면 모두 1급까지 승진할 목표를 세운다. 특히 고시에 합격해 5급 사무관으로 입직한 공무원들은 더 높은 꿈을 키우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정부가 역량심사제도를 통해 고위 공무원을 꿈꾸는 공무원들과 일반인에게 일정 기준을 제시해주고 있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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