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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유관 기업 임원으로 뚝딱 변신

조사 대상 1급 공무원 68%가 관련 업체 재취업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퇴직 후 유관 기업 임원으로 뚝딱 변신

퇴직 후 유관 기업 임원으로 뚝딱 변신

공직자윤리법의 퇴직 공직자 취업 제한 규정에도 1급 퇴직 공무원의 민간기업 재취업은 꾸준히 늘고 있다. 업무 관련성이 있는 업체로의 재취업은 ‘공직자의 이해 충돌’ 문제를 가져온다.

정상에 오르면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하지만 정상에 오른 뒤 다시 새로운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사람들도 있다. 1급 공무원은 공직에서 퇴직하더라도 경력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민간보다 낮은 임금과 열악한 처우에서 벗어나 제대로 ‘대접’받기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들은 해당 전문 분야에 재취업해 자문을 해주는 대가로 고액 연봉을 받으며 새 인생을 시작한다. 정권의 부침(浮沈)에 따라 화려하게 공직으로 컴백하기도 한다. 이명박 정부의 한승수 국무총리, 김회선 국가정보원 2차장, 장용석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대표적인 ‘올드보이’들.

고위 공무원들의 민간기업 재취업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5급 이상 고위 공무원들에 대한 수요는 경기불황 속에서도 꾸준하다. 특히 1급을 지낸 고위 공무원들의 몸값은 하늘 무서운 줄 모른다. 몸담았던 부처 유관 기업, 각종 협회, 산하단체 등에서의 러브콜이 이어지는 한 고위 공무원들의 민간기업 러시는 계속될 것이다.

퇴직 후 평균 2개월여 만에 다시 출근

‘주간동아’는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와 한나라당 구본철 김태환 윤두환 정갑윤 주광덕 의원실의 도움을 받아 2007~2008년 재취업한 1급 상당 고위 공무원들의 ‘퇴직 후 재취업 현황’을 분석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1급 상당 고위 공무원들의 재취업 전 최근 3년간 소속 기관과 부서, 퇴직 일자와 재취업 일자, 취업 업체와 취업 직위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표 참조).

퇴직한 1급 상당 고위 공무원들의 경우 유관 기업으로의 재취업이 눈에 띈다. ‘주간동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90명 중 68%에 이르는 61명이 재직 당시 부처와 관련된 업체에 들어갔다. 퇴직 부서의 산하단체 및 건설근로자공제회, 해외건설협회 등 관련 협회의 장으로 간 경우도 32명(35.6%)에 달했다. 국방부 퇴직자 14명은 해당 부처의 정책결정 등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업체에 취직했다. 금융감독원, 국세청,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와 산하기관 등 경제 관련 부처 퇴직자 28명 중 18명도 유관 기업으로 재취업했다. 예를 들면 국방부 출신들은 두산인프라코어, 항공우주산업, LIG넥스윈, 현대중공업 등 방위산업체로, 금융감독원 출신들은 부산은행, 광주은행, 메리츠증권, 알리안츠보험 등 금융계 회사로 재취업한 경우가 많았다.



퇴직 후 유관 기업 임원으로 뚝딱 변신
이들은 1급 상당 고위 공무원이기 때문에 민간기업에 재취업하는 경우 부사장, 상무, 상무보대우 등 임원직급으로 가게 된다. 고문이나 사외이사도 재취업 시 흔히 따라붙는 직책이다. 조사 대상자 90명 중 사외이사는 8명(8.9%), 고문(상근, 비상근 고문 포함)은 16명(17.8%)에 이른다. 1급 상당 고위 공무원들의 퇴직 후 재취업 시기도 빨라지고 있다. 퇴직 후 재취업까지 걸린 시간은 평균 2.19개월이었다. 조사 대상자 중 재취업까지 24개월, 22개월이 걸린 두 사람을 제외하면 재취업에 걸린 시간은 평균 1.72개월로 크게 낮아진다. 특히 퇴직과 동시에 재취업한 공무원들도 50명(56%)에 이르러 ‘갈아타기’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런 조사 결과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고위 공무원들의 재취업을 단지 전관예우, 공무원에 대한 로비 등으로 색안경을 끼고 보지 말아달라”고 강변한다. 국내 대형 로펌 관계자는 “고위 공무원들이 로펌에 오는 경우가 늘었지만 이는 그들의 전문성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로펌에 오는 대부분의 공무원은 회계사, 세무사 등의 라이선스를 갖고 있다”며 “고위 공무원 출신 고문들은 변호사들이 미처 챙기지 못하는 세세한 분야까지 전문성을 갖고 컨설팅한다”고 설명했다.

“전문성 vs 전관예우” 끊이지 않는 구설

퇴직 후 유관 기업 임원으로 뚝딱 변신

국방부 출신 1급 공직자들의 군수업체 재취업이 두드러졌다. 사진은 방위사업청이 발주해 한진중공업이 수주한 해군 차기 고속정(PKX).

미래에셋증권 변재상 상무 역시 “잘못을 저지르면 전직 대통령의 형, 동생도 잡아가는 세상에 로비를 기대해 고위 공무원들을 사외이사나 상근감사로 앉혀놓겠나. 회사의 중요한 위치에 걸맞은 전문성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며 “예를 들어 금융감독원 출신들이 기업의 상근감사를 맡는 것은 전문성을 살려 활동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등법원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도 “자부심이 크다는 판사들도 요즘엔 판결을 내릴 때 학계, 업계, 공무원들과 함께 논의한다. 각 분야에서 20~30년간 경험을 쌓은 공무원들의 전문성은 높이 살 만하다”며 “민간에서 이들의 전문성을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설령 전관예우나 로비를 한다고 해도 그 효과가 6개월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 짧은 기간을 위해 고문이라는 이름으로 몇 년치 월급을 주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런 주장에도 퇴직 고위 공무원들의 민간기업 재취업을 둘러싼 구설은 끊이지 않는다. 고위 공무원들이 퇴직 후 유관 기업에 종사하면서 불법 로비를 벌이는 일을 근절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해군본부의 군수지원계획 수립, 군수물자 소요제기, 조달·보급을 담당하는 해군본부 군수참모본부장이 조선업체로 가거나 지식경제부(구 산업자원부)의 반도체 산업 기본정책을 수립 및 지원하는 반도체전기과 공무원이 국내 반도체 회사에 취직하는 등 오해의 소지가 있는 유관 기업 재취업도 계속되는 상황이다(표 참조).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말처럼 실제로 퇴직 공무원과 기업의 부적절한 관계로 오인받는 일이 벌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2005년 6월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두산인프라코어에 ‘지게차 가격을 담합했다’며 15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2006년 1월 142억원으로 조정됐지만 두산은 이에 불복하고 법무법인 세종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소송을 제기했다. 3개월 후 세종은 두산에 과징금을 부과하는 데 관여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인 공정위 상임위원을 고문으로 영입했고, 공정위 약관제도팀장을 지낸 이를 상무로 영입했다. 두산은 2006년 10월 고등법원에서는 패했지만 2007년 대법원 선고에서는 일부 승소했다. 당시 세종과 두산은 어떤 로비나 공정위와의 연관성도 없다고 밝혔지만, 소송 과정에서 기업과 공무원 간 유착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이들이 로비스트로 활동한 것은 아닌지에 대해 의혹이 제기됐다.

한 기업 관계자는 “전문성을 우선시한다지만 실제로는 ‘해당 부처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라며 “한국 사회에선 아직 인맥을 무시할 수 없다. 퇴직 관료들이 공직에 있으면서 쌓은 인맥과 정보는 기업이 업무를 추진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털어놨다.

정부는 2008년 8월29일 고위 공무원이 퇴직 후 재취업하는 것을 엄격히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석 달 뒤인 11월28일 정부가 발의한 공직자윤리법 일부 개정안은 공직자 재산등록 범위를 조정하고,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에게 재산 등록 및 공개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만 담고 있을 뿐이다. 입법예고 당시 개정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퇴직 후 취업 제한 강화’에 대한 내용이 빠진 것.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입법예고 후 정부 각 부처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일부 조정이 있었다. 퇴직 공무원은 더 이상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인데, 재취업 제한은 직업 선택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이다. 기본권 제한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관점에서 다시 논의하게 됐다”고 밝혔다.

물론 기존의 공직자윤리법도 취업을 제한한다. ‘대통령령이 정하는 직급 또는 직무 분야에 종사하였던 공무원과 공직 유관단체의 임·직원은 퇴직일로부터 2년간 퇴직 전 3년 이내에 소속하였던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정 규모 이상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체 또는 영리사기업체의 공동이익과 상호협력 등을 위하여 설립된 법인·단체에 취업할 수 없다’(공직자윤리법 제17조 ①항)는 조항이다(상자 기사 참조). 그럼에도 조항이 느슨해 사실상 비윤리적 관행을 막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공무원들이 재취업을 예상하고 퇴직하기 3년 전부터 이른바 ‘노는 부서’에 적(籍)을 두고 ‘경력세탁’을 하기 때문에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취업 승인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다.

행정안전부는 이 같은 관행을 막기 위해 공직자윤리법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던 것. 업무 연관 기업의 취업이 제한되는 퇴직 전 기간을 ‘3년’에서 ‘5년’으로 늘리고 자본금 50억원 미만, 연간 외형 거래액 150억원 미만 기업이나 협회에 ‘일정액 이상의 보수’를 받는 조건으로 취업할 때도 해당 분야를 관할하는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 확인이나 승인을 받도록 의무화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한편 공무원 재취업의 지나친 제한은 공무원의 전문성을 활용하지 못한다는 시각도 있다. 정부의 한 공무원은 “현행 규정에 의하면 사실상 퇴직하기 직전 3년간은 아무 일도 하지 말고 그냥 쉬라는 뜻 아니냐”며 “결국 공무원이 전문성을 잃고 난 뒤에나 재취업이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퇴직 공무원의 전문성을 사장시키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사회적 손실” … 공직자윤리법 강화 목소리

부산지방중소기업청장을 하다 2008년 5월 퇴직 후 한국산업기술시험원으로 자리를 옮긴 이유종 원장은 “외부 공무원이 민간으로 가는 것에는 장단점이 있다. 내부 승진으로 조직에 기여할 수도 있지만 외부로 나가 그동안 쌓은 경험을 발휘할 수 있다”며 “한국산업기술시험원에 처음 왔을 때 조직이 정체돼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외부에서 새로운 사람이 수혈됨으로써 조직에 새로운 활력을 가져왔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공무원의 전문성을 활용한다는 이익 측면보다 유관 기업에 재취업해 사회에 미치는 손실이 더 크다는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높다. 한국방송통신대 이선우 교수(행정학)는 “퇴직 공무원의 전문성을 살리지 못하는 점도 분명히 있고, 억울하게 취업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며 “그럼에도 유관 기업에 재취업하면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에 로비해 비리와 연관될 수 있다. 특히 공무원들이 퇴직 후를 생각해 공직 재직 시 관련 업체에 편의를 봐주는 일도 발생할 수 있는 만큼 공직자윤리법의 강화는 필요한 조치”라고 지적했다.

공직자 취업 승인은 어떻게?

취업 제한 업체 매년 고시 … 적발돼도 버티기 일쑤


퇴직 후 유관 기업 임원으로 뚝딱 변신

관보를 살펴보는 행정안전부 공무원들.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는 고위 공무원 재산등록 사항을 관보에 공개하며 재취업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공직자윤리법 제17조 ①항 본문의 규정에도 관할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승인을 얻은 경우에는 취업이 가능하다(공직자윤리법 제17조 ①항 단서).

공직자윤리위원회는 9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의사 결정은 합의제로 결정된다. 위원들의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합의를 이루는 과정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곤 한다. 취업 제한이 되는 유관 사기업체는 매년 고시된다. 2009년의 경우 3301개의 업체가 유관 사기업체로 지정됐다. 공직자윤리위원회는 공직자윤리법 시행령 제34조의 7가지 기준에 해당하는 경우 취업 승인을 해준다. 이때 정족수는 재적위원 과반수의 참석으로 개의되고, 참석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승인된다. 벌금과 같은 제재 조치는 참석위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시민단체들은 공직자윤리법이 존재함에도 공무원들의 퇴직 후 유관 기업으로의 재취업이 여전해 퇴직 공무원의 이해 충돌 방지라는 입법 취지를 못 살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취업 승인 신청이 상정되면 거의 대부분 승인이 떨어진다고 비판한다. 참여연대가 행정안전부로부터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구한 자료(2007년 6월1일부터 2008년 5월31일까지의 ‘퇴직 후 취업 제한 여부 확인요청자 명단’)에 따르면 공직자윤리위원회는 확인요청자 140명(복수 업체에 취업한 경우 중복 가능) 가운데 133명에 대해 업무 연관성이 없으므로 취업이 가능하다고 통보했다. 같은 기간, 업무 연관성이 있음에도 취업 승인을 신청한 퇴직 공무원 8명 중 6명의 취업 승인이 이뤄졌다.

하지만 정부 측은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취업 승인 신청이 이뤄지는 과정에 대해 오해가 있다고 항변한다.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업무 연관성 확인 요청을 하기 전까지는 3단계의 자체 검증 과정이 있다. 첫 번째는 퇴직자 본인의 자체검증으로, 스스로 재취업의 윤리성을 판단한다. 두 번째는 소속기관에 제출해 재검증을 받고, 마지막으로 해당 중앙부처의 검토를 거쳐야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상정된다. 행정안전부 윤리담당관실 박진일 사무관은 “세 번의 검증을 통한 자정(自淨) 과정에서 문제가 있는 공무원들은 대부분 걸러지기 때문에 공직자윤리위원회 상정 시 통과되는 사례가 높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가 하면 업무 연관성이 높아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적발되더라도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취업을 유지하는 제도의 맹점도 나타난다. 지난 1년간 적발된 임의 취업자는 6명이었으나 그중 5명이 적발된 이후에 공직자윤리위원회 의결에 대해 취소소송을 제기함으로써 취업을 유지할 수 있었다.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장정욱 간사는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적발된 퇴직 공무원들은 승소를 기대하기보다 일단 시간을 끌고 보자는 식으로 소송을 제기한다”며 “소송이 1~2년씩 지루하게 진행되는 동안 공직자윤리법에 규정된 2년의 시간을 넘기게 돼 자동적으로 취업을 유지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주간동아 2009.01.13 669호 (p26~30)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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