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9

2009.01.13

대한민국 1급 공무원 그들은 누구인가

최소 28년 걸려 오르는 공무원 최고의 꿈 … 단 280명뿐인 정부 ‘컨트롤 타워’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9-01-07 16: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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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1급 공무원  그들은 누구인가
    2008년 12월31일 오전 8시,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육부) 고위 공무원 A실장은 평소와 다름없이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로 출근했다. 1981년 25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생활을 시작한 이후 28년째 매년 맞이하는 마지막 날이지만, 이날은 A실장에게 특별했다. 공무원 신분으로 한 해를 마감하는 마지막 날이기 때문이다.

    A실장은 지난 12월16일 사표를 제출한 7명의 교육부 1급 공무원 가운데 한 명이다. 아직까지 교육부 정식 인사가 발표되진 않았지만, A실장이 현직에 그대로 머물러 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1급 공무원이 승진할 수 있는 자리인 차관급에도 외부 인사 영입설에 무게가 실리고 있어 그나마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요즘 정부 고위 공무원 중에는 A실장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가 적지 않다. 1급 공무원 ‘사표 행렬’이 교육부를 시작으로 국세청에 이어 농림수산식품부, 국무총리실, 검찰청 등 전 부처를 돌아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로까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위 공무원들의 이러한 일사불란한 움직임에 ‘청와대 주도설’이 등장할 정도다.

    1급 공무원은 공무원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최고위 직급이다. 정무직인 차관이나 장관으로 오르기 직전, 공무원으로서는 마지막 단계다. 그런 1급 공무원이 왜 이처럼 수난을 겪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들은 누구일까.

    사실 현행 국가공무원법상 ‘1급 공무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가 2006년 고위 공무원단을 만들면서 3급 이상 공무원 직제를 폐지하는 대신 1~3급을 통합해 ‘가, 나, 다, 라, 마’ 다섯 등급으로 나눴기 때문. 그중 가, 나 등급이 과거 1급 직위에 해당하는 정부 각 부처의 실장이나 본부장, 차관보급을 맡고 있어 이들을 편의상 1급 공무원이라 부른다.



    ‘소수점 이하’ 존재들의 줄사표 굴욕

    간혹 과거 2급에 해당하는 공무원이 뛰어난 능력 등 여러 이유와 배경으로 가, 나급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드문 경우다. 이들을 포함해도 1급 공무원은 극소수다.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정부 전 부처를 통틀어 1급에 해당하는 공무원은 280여 명으로, 고위 공무원단 1500여 명의 20%에도 못 미친다. 고위 공무원 10명 중 2명꼴도 안 되는 셈. 100만명에 육박하는 전체 공무원 수에 비하면 그 비율은 소수점 이하로 내려간다. 그만큼

    1급으로 올라가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관련 통계자료를 보면 9급에서 3급 이상 고위 공무원단에 포함되기까지는 35년이 걸리고, 7급에서는 30년, 5급에서는 25년 정도 걸린다. 다시 고위 공무원단 내에서 1급(가, 나급)까지 승진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최소 3년에서 5년 정도라고 한다. 결과적으로 5급 행정고시(이하 행시)에 합격해도 1급까지 오르는 데 최소 28년은 걸리는 셈이다.

    행안부 인사정책과에서 인사통계를 담당하는 김흥로 씨가 2005년 발표한 ‘고위직 공무원의 보직과 승진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도 비슷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 논문에 따르면 기획재정부 5급 사무관이 4급 과장으로 승진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평균 16년5개월, 4급 과장에서 3급 국장까지는 8년, 다시 3급 국장에서 1급까지는 3년5개월 등 모두 27년10개월이 걸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현직 각 부처의 1급 공무원들을 보면 상당수가 1980년 전후에 각종 고시에 합격한 이들이다. 정창수 국토해양부 기획조정실장은 1980년 23회 행시 출신이고, 안현호 지식경제부 기획조정실장은 1981년 25회 행시로 공직에 진출했다.

    1급끼리 마음만 먹으면 장관 골탕 먹이기는 식은 죽 먹기

    대한민국 1급 공무원  그들은 누구인가

    과천 정부종합청사의 각 부처 안내표지판. 요즘 관가에는 칼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1급 공무원에 오르면 그만큼 권한과 임무도 커진다. 한국방송통신대 이선우 교수(행정학과·한국인사행정학회장)는 “이들은 각종 사업 집행권한 등 국가정책과 관련해 무한한 권한을 갖는다. 대기업으로 치면 등기이사급 정도는 된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각 부처 조직의 핵심인 기획조정실장은 예외 없이 1급 공무원의 몫이다. 기획조정실장은 해당 부처의 각종 정책 및 계획 수립·조정권한과 부서 예산 편성 및 조정권한 등 막강한 파워를 갖는다. 조직 진단 및 평가, 역량 평가, 소관 법령안 심사 등 부처의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이기도 하다.

    물론 그만큼 해야 할 일도 많다. 장관이나 차관 주재회의는 물론 때에 따라서는 청와대 회의에도 참석해야 한다. 부서 정책이나 예산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국회를 오가며 로비하는 일도 주로 실장급이 맡는다. 때로는 실무 담당자가 작성해 과장, 국장을 거쳐 올라온 서류를 차관 또는 장관에게 직접 보고하고 결재를 받는다.

    1급 공무원들의 전문성은 대단하다. 한 분야에서 20~30년간 근무하면서 다져온 지식과 노하우는 이론적으로만 접근하는 학자들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는 6급 이하 공무원들로 구성된 공무원 노조도 인정하는 바다.

    “한 분야에서 수십년간 다진 전문성은 탁월하다. 현 정부가 이런 전문 인력을 줄 세우기 위해 강제적으로 사표를 요구하는 것은 행정 낭비”라는 게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정용천 대변인의 지적이다.

    장관이나 차관이 해당 부처의 업무와 관련한 전문 지식이 없을 경우 1급 공무원들에 의해 곤란을 겪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한다. 다음은 익명을 요구한 한 고위 공무원의 전언이다.

    “새로 임명된 장관이 전문 지식도 없으면서 의욕만 앞세우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는 공무원 나름대로 대처하는 노하우가 있다. 솔직히 부처 내 1급 공무원들끼리 마음만 먹으면 장관 하나 골탕 먹이는 건 일도 아니다. 장관이 지시를 내리면 이런저런 이유로 이 부서 저 부서 돌리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은근슬쩍 뭉개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1급 공무원의 급여 수준은 민간기업보다 높지 않다. 행안부는 최근 고위 공무원단의 2009년 임금을 동결한다고 발표하면서 일부 보수제도를 개편했다. 올해부터 고위 공무원단 직급이 실장급과 국장급 등 2단계로 간소화된 데 따른 것. 이 개편안에 따르면 1급(가, 나급) 공무원은 고정적으로 연간 1080만원의 직무급과 직급보조비 900만원을 받는다. 여기에 성과연봉으로 최고 1208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고위 공무원 기준급 상한액이 7200만원인 점을 고려하면 1급 공무원이 연간 받을 수 있는 최대치는 1억300만원 정도다. 하지만 1급 공무원이 일반적으로 받는 5000만~6000만원의 기준급을 적용하면 연봉은 8000만~9000만원대로 떨어진다.

    정권 바뀔 때마다 신분 위협

    대한민국 1급 공무원  그들은 누구인가

    서울시와 자치구 공무원들이 세종문화회관에서 특강을 듣고 있다.

    1급 공무원들의 가장 큰 고민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위태로울 수밖에 없는 법적, 태생적 한계다. 공무원은 헌법상 신분을 보장받는다.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는 헌법 제7조 2항이 관련 규정이다. 이를 근거로 만들어진 법이 국가공무원법이다. 하지만 이 법에는 단서가 붙어 있다. ‘1급 공무원은 그 의사에 관계없이 면직 휴직 강임 처분할 수 있다’는 것.

    행안부 백운현 기획조정실장의 고민도 바로 여기에 있다. “1급 공무원은 집권자의 국정철학을 행정에 접목해 구현하고 일반 공무원과 정무직 간의 가교 구실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집권자가 생각하는 가치를 공유하고,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국정 일선에서 길잡이 노릇을 해야 한다. 그런 만큼 (집권자와) 생각하는 가치가 다르다면 다른 자리로 옮겨야 하지 않겠나. 법적으로 1급 공무원의 신분을 보장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이선우 교수도 “1급은 권력자가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는 첨병이다. 따라서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하면서도 정치적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무원을 적으로 만든 정부는 실패한다.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3개월 안에 공무원들의 버릇을 고쳐놓겠다’고 호언장담하다가 3개월 만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임기 내내 고생한 것만 봐도 그렇다. 이명박 정부는 지금 첫해부터 공무원을 적으로 만들고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 부처는 지난 12월31일 오후 부처별로 일제히 종무식을 열고 한 해를 마무리했다. 교육부 종무식은 오후 2시에 열렸다. A실장은 이를 준비하기 위해 출근하자마자 정신없이 바빴다. 9시 차관주재 회의에 참석하고 곧바로 장·차관의 실·국 순시를 보좌했다. 점심식사 후 종무식 직전에 열린 정책간담회에도 참석해야 했다. 2008년 마지막 날을 보내면서 A실장은 한시도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28년 공직생활 동안 그는 늘 그렇게 바빴다.

    국가공무원 1급과 지방공무원 1급

    중앙에선 차관보·실장, 지방에선 부지사·부교육감


    평균 50대 1에 육박하는 공무원시험의 좁은 공직 관문을 통과하는 순간 치열한 경쟁은 시작된다. 각 단계마다 놓인 공무원 조직사회의 계단을 밟아 ‘노력 플러스 운’으로 올라갈 수 있는 최고 직급은 1급이다. 정무직인 차관 이상의 자리엔 급수가 없다.

    흔히 1급 공무원을 관리관이라고 한다. 1급 관리관이 할 수 있는 직위는 중앙부서의 경우 차관보, 실장, 감사원 사무차장, 실·국장, 소청위원, 행정조정관 등이다. 지방직은 서울특별시의 경우 기획관리실장, 종합건설본부장, 공무원교육원장 등이며 광역시·도에는 부시장, 부지사, 시·도 부교육감 등이 있다.

    국가공무원 1급은 자기 부처가 만든 정책의 타당성을 청와대, 국회, 다른 부처에 알리는 일을 주로 맡는다. 물론 다른 부처와의 협의도 중요한 업무다. 예산안 편성 시기엔 기획재정부와 밀고 당기기를 하며 조직, 인사권을 두고 행정안전부와 옥신각신한다.

    지방공무원 1급은 해당 시·도지사를 보좌하며 시·도 사무 총괄 및 소속 공무원을 감독한다. 특수한 경우에는 지방자치단체장(이하 지자체장)의 권한을 대행하거나 직무를 대리하기도 한다. 행정부시장·행정부지사를

    2명 두는 시·도의 경우는 법령에 따라 사무분장이 이뤄진다. 예를 들어, 서울시 행정1부시장의 경우 기획·예산관리, 행정관리, 보건복지 등의 업무를 담당하며 행정2부시장은 도시계획·건설, 상하수도 등의 업무를 맡는다.

    지방은 중앙과 달리 1급 공무원이 많지 않고, 정무직 고위 공무원도 적기 때문에 국가공무원 1급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영향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선거로 선출된 지자체장의 힘이 막강하기 때문에 지방공무원 1급은 지자체장의 눈치를 살피기 일쑤다.

    실제로 그동안 지방공무원의 임면권은 지자체장에게 전적으로 일임돼 있어 지자체장이 이를 악용해 친인척이나 선거에 도움을 준 지역 유력인사들을 특채로 대거 채용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최근 서울 관악구의 인사비리 혐의가 감사원에 적발된 것도 빙산의 일각이라는 반응이다. 1급 공무원도 약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다 보니 지방선거 때만 되면 공무원의 중립성이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지방의 한 공무원은 “1급 공무원뿐 아니라 고위직 공무원들은 선거에 앞서 직·간접적으로 충성맹세를 강요당한다”며 “지자체장의 눈 밖에 나면 끝”이라고 귀띔했다. 반면 국가공무원 1급과는 달리 지방공무원 1급은 한 지방에서 오랫동안 기반을 닦았기 때문에 지방선거에 직접 나서기도 한다.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도 지방선거 출마 공직자 232명 중 3급 이상 고위 공무원이 44명에 달했다.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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