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9

2009.01.13

포트헤들랜드와 유노윤호

  • 이형삼 hans@donga.com

    입력2009-01-07 15: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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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트헤들랜드와 유노윤호
    인체의 저항력이 약하면 질병에 걸리기 쉬우므로 평소 실행해야 할 사항과 거리가 먼 것은?

    ①예방접종 ②고른 영양 섭취 ③숙면 ④규칙적인 생활 ⑤적당한 운동

    중학교 1학년 제 딸이 치른 기말고사 문제(체육)입니다. 답이 뭘까요? 의사에게 물어봐도 못 맞히더군요. 답은 ③숙면입니다. 왜냐고요? 교과서엔 질병 예방법이 ‘적절한 수면’이라고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시험을 앞둔 딸아이가 달달 외고 있는 기출문제집(사회)을 보니 호주 대륙을 여러 지역으로 나눠놓고 빽빽한 설명을 붙여놨더군요. 여기는 플랜테이션, 저기는 관개농업, 이곳은 낙농업, 저곳은 삼림, 이쪽은 방목-소, 저쪽은 방목-양, 그리고 또 밀, 옥수수, 사탕수수…. 호주의 각종 지하자원 분포 현황을 그려 넣은 지도도 여간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제 딸이 친가, 외가가 있는 도시(대구)가 영남인지 호남인지를 안 건 아주 최근입니다. 아직도 호남이 왼쪽인지 영남이 왼쪽인지 헷갈려 합니다.

    딸아이와 함께 잠드는 걸 좋아합니다. 팔베개를 해주면 제 오른쪽 가슴, 옆구리, 겨드랑이 사이 어딘가에 머리를 들이밀고 잠이 듭니다. 피차 불편한 자세일 텐데 서로 아주 편합니다. 분리했던 변신 로봇을 다시 합체한 듯, 휴대전화 단말기에 충전 어댑터를 연결한 듯. 그러나 아이가 중학교 들어간 뒤부터는 같이 잠드는 날이 드뭅니다.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이런 ‘수준 높은’ 공부에 시달리느라 새벽 2시께야 잠자리에 들기 때문입니다. 책상에 엎어져 잠든 아이를 안아다 침대에 뉘는 경우도 자주 있고요.



    서울의 한 보건소 근무자에게 듣기로는 요즘 결핵을 앓는 고교생이 종종 발견된다고 합니다. 학교들이 쉬쉬해서 공식 통계엔 잡히지 않지만요. 영양실조가 주원인인 결핵은 대표적인 후진국형 질병이지요. 한데 국민소득 2만 달러가 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수도의 청소년들이 이 병을? 그럴 만도 합니다. 해 뜨자 등교해 별 보며 하교하고, 그 길로 학원행 봉고차에 지친 몸을 싣는 우리 아이들에게 ‘고른 영양 섭취’ ‘적절한 수면’ ‘규칙적인 생활’ ‘적당한 운동’은 언감생심이니까요.

    교육과학기술부의 1급 공무원 일괄 사표제출 요구 파문이 정부 전 부처와 지자체로 번져가고 있습니다. 효율제고를 위해선지, 정국전환용인지, 다른 속사정이 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그 끝은 국민의 생활과 맞닿는 ‘눈높이 혁신’이었으면 합니다. 예컨대 열세 살 여자아이가 호주의 포트헤들랜드와 마운트뉴먼이 철광석 산지라고 녹음기처럼 읊어대는 것보다 유노윤호와 시아준수(아이돌 그룹 ‘동방신기’ 멤버들입니다)의 생일을 꿰고 있는 게 훨씬 자연스러워 보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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