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7

2008.12.30

‘거리의 천사들’ 밤마다 노숙자 곁으로

대한예수교 장로회 통합 봉사단체, 12년째 급식과 생필품 나눠줘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08-12-24 14: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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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의 천사들’ 밤마다 노숙자 곁으로

    ‘섬김의 집’에 모인 대한예수교 장로회 통합 총회장 김삼환 목사 부부(왼쪽 사진 윗줄 왼쪽에서 4, 5번째). 김삼환 목사는 “우리는 봉사한다기보다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며 돌아간다”고 강조했다.

    12 월11일 밤 11시경. 서울 종로구 이화동 ‘섬김의 집’ 2층 사무실로 개신교 최대 교단인 대한예수교 장로회의 통합 총회장 김삼환 목사(명성교회) 부부가 들어섰다. 곧이어 총회 임원인 지용수 부총회장(양곡교회)과 서기 이성희 목사(연동교회), 부서기 이순창 목사(연신교회), 회록서기 김재영 목사(성안교회), 부회록서기 공병의 목사(포항동해큰교회), 회계 박덕근 장로(군산남부교회), 부회계 임동진 장로(남이제일교회), 사무총장 조성기 목사가 차례로 도착했다. 이들을 맞이하는 ‘거리의 천사들’(www.st1004.net) 자원봉사자 20여 명이 어우러지면서 66㎡(20평)도 채 안 되는 방은 콩나물시루처럼 변했다.

    노숙자들 자립 성공했을 때 보람 최고

    이들 목사 부부가 봉사활동에 나선 곳은 지하철역 을지로 3가와 을지로 입구 부근. 이미 그곳은 종이상자로 잠자리를 만들어 노숙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봉사자들과 동행한 경기심포니오케스트라 소속 바이올리니스트가 찬송가를 연주하자 노숙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역 한쪽에서는 목사 부부, 자원봉사자들이 보온밥통과 미역국을 준비하고 있었다. 노숙자들은 줄을 서서 김삼환 목사가 퍼주는 밥과 국 그리고 양말을 받은 뒤 적당한 장소를 골라 조용히 밤참을 먹기 시작했다. 일부는 자원봉사자들에게 감기약, 비타민제 등을 요구하기도 했다. 노숙자들 중에는 자원봉사자들과 친분이 있는지 “그동안 어디 다녀오셨어요?”라며 안부를 묻는 이들도 있었다.

    벌써 12년째 매일같이 이어져오는 행사다. ‘거리의 천사들’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갑자기 일자리를 잃고 아무런 대책이나 준비 없이 거리로 내몰린 채 방치됐던 실직 노숙자들의 자살, 동사, 질병, 사고, 굶주림을 방지하고 삶에 지친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당시 총회상담소 소장 안기성(54) 목사가 청량리에서 영등포역까지 걸어가며 노숙자들에게 식사와 생필품을 나눠주면서 본격화했다.

    이후 매일 밤 11시경이면 자원봉사자들이 지하철역 을지로 3가, 을지로 입구, 시청, 광화문, 종각 등에서 노숙자들에게 식사와 간단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모포나 양말 같은 의류들을 전달해왔다. 지금은 여러 교회와 봉사단체가 함께 참여해 요일별로 20여 명의 인원이 순번을 정해 봉사에 나서고 있다. 12월11일 행사도 2006년부터 ‘거리의 천사들’에서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삼환 목사가 12월 총회 임원회의를 가진 뒤 지하철역 부근 노숙자들의 생활 현장으로 뛰어든 것이다.



    김삼환 목사는 지난해 10월 총회장에 취임한 후 서울 청량리 다일공동체, 태안 기름유출 피해가정 등 현장을 방문해 봉사하면서 총회 임원회의를 행하고 있다.

    한편 자원봉사단의 목표는 노숙자들에게 단순히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거리의 천사들’ 윤건 총무는 “그분들이 하루빨리 거리생활을 접고 사회로 돌아오는 것이 목표”라며 “매일 밤 그분들을 돕고 만나는 것은 서로 신뢰를 쌓기 위한 하나의 도구다. 그분들이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소중하다고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다 보니 노숙자에 대한 초기 대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거리의 천사들’은 이들의 조속한 사회 복귀를 위해 일자리를 알선하고 생활 지원을 해주고 있다. 올 들어 73명을 거리에서 사회로 돌아오게 했다는 것이 윤 총무의 설명. 이들 가운데 새로운 삶을 찾은 노숙자들은 한사랑봉사단을 만들어 자신들이 받은 것처럼 남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안 목사는 “노숙생활을 접고 강원도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지은 쌀을 보내준 분, 새 일자리를 찾은 뒤 첫 월급에서 10만원을 떼어 보내준 분, 주차장에서 일하게 됐다며 반갑게 맞아주면서 한사코 주차비를 받지 않던 분, 7년 노숙 끝에 ‘거리의 천사들’ 봉사자로 나오신 분에게 큰 힘을 얻은 덕에 지금까지 이 활동을 해올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받는 것보다 주는 기쁨 더 크다”

    자원봉사자들의 마음도 다르지 않다. 이들은 ‘거리의 천사들’ 활동을 통해 ‘받는 것보다 주는 기쁨이 더 크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낀다고 한다. 윤 총무는 “실제로 자원봉사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우리가 드릴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는 말이다. 가족 단위로 함께 하면서 가족의 사랑을 회복하는 경우도 봤다”며 “노숙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봉사자 자신을 위한 사업이 아닌가 할 만큼 기쁜 마음으로 봉사활동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6년부터 ‘거리의 천사들’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대학원생 이용준(28) 씨는 “어느 날 종각역 근처 건물 옆에 누워 있던 노숙자에게 밥을 갖다 줬더니 감사하다며 기도를 해주겠다고 해 깜짝 놀랐다”고 털어놓았다. 이씨는 그날 일행 3명과 함께 노숙자의 기도를 받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서울 창문여고 이명채(54) 교사는 2007년 3월 말 남편이 고등학교 총동문회 사회봉사위원장을 맡으면서 봉사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 교사는 다른 동문 가족들과 함께 매주 목요일에 봉사활동에 나선다. 이젠 목요일이 다가오면 다른 일은 으레 미뤄놓는다. 1기 동문에서부터 재학생까지 두루 참여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재학생 어머니들이 봉사단을 조직해 참여할 만큼 그 규모가 커졌다.

    “노숙자들을 만나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부정적 시각으로 그들을 대하기 쉽지만, 우리에게 지금 당장 그런 불행이 안 닥쳤을 뿐 요즘 같은 불황기엔 누구라도 가족이나 직장에서 버림받는 아픔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모두 좀더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거리의 천사들’은 밤 10시 이후에는 몸이 아픈 노숙자가 있어도 치료해줄 여력이 없어 야간 이동진료 시 의사들의 봉사활동 참여를 늘릴 계획이다. 또한 일자리 지원센터를 통해 노숙자들이 사회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계속 추진할 사업 가운데 하나다. 이렇게 활발히 활동하고 있음에도 윤 총무는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우리는 매일 봉사활동을 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봉사자들이 가져온 기부 물품을 중심으로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노숙자들의 요구를 다 충족시켜줄 수 없습니다.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일수록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합니다.”(후원 문의 02-766-6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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