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6

2008.12.23

‘외담대’ (전자 방식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 억울한 피해자 만든다

신성건설 사태로 ‘1호’ 전자결제수단 허점 드러나 대기업 미상환 때 중소기업이 책임질 판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8-12-17 22: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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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담대’ (전자 방식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 억울한 피해자 만든다

    신성건설이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11월12일 오후 한 직원이 대책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전자 방식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과 관련해 신성건설 하청업체들과 갈등이 빚어진 우리은행 본사(아래 작은 사진).

    한국이 정보기술(IT) 강국답게 세계보다 한 발 앞서 내놓은 ‘IT 발명품’ 가운데 하나가 전자결제수단이다.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불거진 실물어음 폐해를 근절하고자 정부는 전자어음, 전자채권, 기업구매 전용카드 등 다양한 전자결제수단을 잇따라 선보였다. 이것들은 분실이나 연쇄 부도 염려가 없고, 투명한 관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용이 장려돼왔다. 실제 기업 간 거래에서도 전자결제수단 이용 실적은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추세다.

    그런데 11월 중순 부도 위기에 몰린 신성건설을 계기로 ‘1호’ 전자결제수단의 치명적 약점이 드러나 중소기업 생존을 위협하는 ‘제2의 키코(통화옵션 파생상품)’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관련 법도 딱히 없고 관리 감독도 안 받아

    2001년 첫 도입된 ‘1호’의 이름은 전자 방식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이하 외담대). 이는 구매기업(대기업)이 전자 방식으로 발행한 외상매출채권을 담보로 판매기업(하청업체)이 거래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고 만기일에 구매기업이 대출금을 상환하는 금융상품이다(다음페이지 그림 참조).

    그런데 신성건설이 10월 중순부터 만기가 돌아온 외담대를 갚지 않으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은행은 신성건설이 아니라, 신성건설에 자재나 노임을 제공하고 외상매출채권을 받아 외담대를 이용한 하청업체들에게 “상환하지 않으면 대출금 연체 사실을 금융거래 전산망에 게재하겠다”고 독촉했으며, 이에 하청업체들은 부도 위험을 호소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신성건설이 발행한 외담대는 우리은행 280억원, 하나은행 60억원 정도로 알려졌다. 졸지에 빚쟁이가 된 하청업체는 350여 개로, 그 피해액이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에 이른다.



    돈을 갚지 않은 건 신성건설인데 오히려 하청업체들이 은행으로부터 돈을 갚으라고 요구받는 이유는 외담대에 걸린 ‘옵션’ 때문이다. 시중은행들은 ‘구매기업이 대출금을 상환하지 않을 경우 판매기업이 그 책임을 진다’는 조항을 거래약정서에 포함시켰다. 신성건설에 자재를 납품했다가 우리은행으로부터 연체 등록 통보를 받은 A업체 임원은 “은행이 신성건설 신용을 보고 외담대를 해줬으면서 왜 그 책임을 중소기업에 떠넘기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현재 우리은행에서 외담대를 받은 100여 개 하청업체는 외담대의 문제점을 알리고 개선책과 지원책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금융당국에 공동으로 제출할 계획으로 준비 중이다.

    피해 업체들은 “차라리 과거 실물어음이 더 낫다”며 하소연한다. 실물어음은 만기일까지 갚지 않으면 부도 처리되지만, 외담대는 ‘대출금 연체’로 처리될 뿐이다. 즉 돈을 갚지 않은 신성건설은 부도를 면하는 반면, 옵션 때문에 채무를 떠안은 하청업체는 기업 존폐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갖가지 불이익을 받기 때문이다. 신성건설 채무를 대신 갚을 때까지 다른 기업들에게 받은 어음이 압류되고, 17~19%에 이르는 고율의 연체이자를 물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금융거래 전산망에 연체 사실이 기재돼 다른 은행들과의 거래가 막히는 등 신용 하락까지 감수해야 한다. 또 다른 신성건설 하청업체 B사의 재무 담당자는 “외담대는 대기업은 살리고 중소기업은 죽이는 금융상품”이라고 하소연했다.

    더 심각한 외담대의 치명적 약점은 구매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구매기업이 일부러 외담대 상환을 지연해 판매기업의 목을 죈다 해도 제재수단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성건설도 법원에 기업회생절차 신청을 낸 11월12일까지 실물어음을 어떻게든 막아왔지만, 이보다 한 달 전인 10월14일부터 외담대는 전혀 갚지 않았다.

    ‘외담대’ (전자 방식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 억울한 피해자 만든다

    12월11일 신성건설 하청업체들이 모임을 갖고 금융당국을 상대로 공동 탄원서를 준비하고 있다.

    제2의 키코 사태 우려

    외담대 이후 도입된 또 다른 전자결제수단인 전자어음과 전자채권은 금융결제원의 관리 감독을 받는다. 그러나 ‘1호’라는 태생적 한계 탓인지 외담대는 관련 법도 딱히 없고, 따라서 금융당국의 관리 감독도 받지 않고 있다. 자연히 금융당국은 시중은행들이 외담대를 어떤 기업들에 얼마나 해줬고, 현재 상환되지 않은 액수가 얼마인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국 관계자는 “외담대는 개별 은행의 대출상품일 뿐”이라며 “금융당국에 접수되고 있는 신성건설 관련 민원을 어떤 기관이 나서서 해결해야 할지 모호하다”고 밝혔다. 금융감독원 기업애로상담센터 관계자는 “이제야 외담대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시작했다”면서 “좀더 자세한 것은 애초 외담대를 만든 한국은행이 더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 정책기획국 관계자는 “한국은행이 외담대 활성화를 시중은행에 장려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신성건설 하청업체들이 문제 삼고 있는 옵션은 각각의 은행들이 알아서 만든 것”이라며 “한국은행은 (시중은행을) 감독할 지위에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한편 신성건설 건을 계기로 시중은행들은 10월 모임을 갖고 외담대 문제점에 대한 대책을 의논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담대 규모는 연간 최소 50조원 이상일 것으로 추산된다. 금융결제원 관계자는 “전자어음, 전자채권의 연간 발행 규모가 5조원 안팎인 점에 비춰보면 외담대는 그 정도는 너끈히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자결제수단 가운데 가장 먼저 출시됐을 뿐 아니라, 은행과 구매기업이 선호하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전자어음이나 전자채권과 달리 외담대는 한 은행에서만 거래할 수 있다. 즉 은행이 1개 구매기업을 고객으로 유치하면 수백 개 판매기업까지 고객으로 자동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또 구매기업으로서는 상환을 연체하더라도 그 책임이 판매기업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 관계자는 “‘을’ 처지인 중소기업으로서는 ‘갑’인 대기업과 은행이 하라는 대로 외담대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은 경기불황이 더욱 심화돼 외담대 사고가 빈번해질 가능성이 높다. 제2의 키코 사태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미 외담대 문제는 신성건설을 넘어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신성건설 말고도 외담대 상환을 연체하는 기업들이 여럿 있다”며 “하루빨리 금융당국이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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