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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기호의 ‘笑笑한 일상’②

가짜 하늘 공소리 퍽퍽 아싸, 트리플 보기

가짜 하늘 공소리 퍽퍽 아싸, 트리플 보기

가짜 하늘 공소리 퍽퍽 아싸, 트리플 보기
명절을 맞아 고향에 며칠 다녀왔다. 두 해 전부터 굳어진 기본 코스에 따라 명절 전야를 처가에서 보내고, 다음 날 고향으로 내려갔다. 우리나라 사위들은 왜 처가에만 가면 그렇게 잠이 쏟아지는 걸까? 연구해보면 근사한 논문 한 편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논문 한 편 쓸 시간에 장모님과 도란도란 얘기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일일 테지만, 어쩌나 나 또한 똑같은 사위인 것을. 10시간 넘게 침대에 붙어 있다가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고향으로 내려갔다.

결혼생활을 안정적으로 영위하기 위한 필수 요건 중 하나는 바로 ‘균형’이다. 그러니까 장모님에게 용돈을 10만원 드렸다면, 어머니한테도 똑같은 액수를 드리는 것(때론 어머니에게 더 적은 액수를 드릴 필요가 있다. 그것이 남편들이 가져야 할 ‘균형감각’이다). 처가에서 10시간 넘게 잠만 잤다면, 고향집에 도착해서는 곧장 대문 밖으로 사라지는 것, 그것이 내가 아버지와 할아버지, 삼촌들과 형에게서 배운 명절날 남편들이 가져야 할 올바른 균형감각이다(아내가 음식 만드는 것을 도울 수도 있으나, 그것도 어머니나 할머니 눈치 때문에 쉽지가 않다. 기껏 밤이나 까주는 정도인데, 그것도 무슨 밤 까는 기계가 나와 20분도 채 걸리지 않아 끝나고 만다).

대문 밖으로 나오면 할 일은 뻔하다. 고등학교 동창생들을 만나, 한가위 보름달 바라보며 괜스레 컹컹 짖어대는 옆집 개와 어깨동무할 정도로 술잔을 기울이는 것. 동창들도 모두 남편이 되고, 아이 아버지가 되었으니 나와 똑같은 균형감각을 가졌을 터. 밤 까는 기계 덕분에 만나는 시간만 앞당겨졌을 뿐이었다.

삼겹살집을 개업한 친구의 가게에서 네댓 명의 친구들을 만나 술잔을 기울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대로 고향에 자리잡은, 조금씩 허리둘레가 늘어나고 있는 친구들이었다. 몇 해 만에 만난 친구들도 있어 술자리가 제법 유쾌하고 떠들썩할 것 같았는데 웬걸,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묵묵 서로의 술잔만 비우는 시간이 늘어났다. 거, 서브프라임 사태가 말이야, 비정규직 문제가 말이야, 종교 편향 문제가 말이야…. 뚝, 뚝. 각자 하는 일도 다르고, 지나온 세월 역시 다르니 한두 번 말이 오갈 뿐, 도통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7년째 비정규직인 친구도 있었고, 주택자금대출 이자 때문에 낮엔 보험영업, 밤엔 대리운전을 하는 친구도 있었다. 말 한마디 한마디 꺼낼 때마다 이 친구 저 친구 눈치를 살펴야 했다. 그러니 어쩌나. 늘어가는 것은 술병뿐이었고, 재떨이의 담배꽁초뿐이었다.

두 시간이 지나지 않아 1차가 끝나고, 2차로 가볍게 맥주나 한잔 마시러 가겠구나 싶어 도로로 우르르 몰려나왔을 때였다. 한 친구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말했다.



-그냥 필드나 가볼까?

친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나머지 친구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한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처음 나는 ‘필드’라는 생맥줏집이 있나, 거기 여종업원이 예쁜가 잠시 착각했다. 한데 친구들의 뒤를 쫓아 상가 2층에 자리잡은 한 업소에 들어가보니, 놀랍게도 거기 정말 ‘필드’가 있었다. 이름하여 ‘스크린골프장’. 친구들은 익숙한 듯 각자의 장갑을 찾아 끼고, 커다란 방으로 들어가 골프 클럽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야, 이거 비싸지 않냐?

내가 소심하게 골프공 하나를 만지작거리며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나인 홀 도는 데 1만원, 18홀은 2만원. 당구 치는 거랑 비슷해. 그러니까 우리들도 칠 수 있지.

가짜 하늘 공소리 퍽퍽 아싸, 트리플 보기

처음 나는 ‘필드’라는 생맥줏집이 있나, 거기 여종업원이 예쁜가 잠시 착각했다. 한데 친구들의 뒤를 쫓아 상가 2층에 자리잡은 한 업소에 들어가보니, 놀랍게도 거기 정말 ‘필드’가 있었다. 이름하여 ‘스크린골프장’.

생각보다 가격이 저렴한 게 의외이긴 했지만, 그럼 뭐 하나. 자치기라면 모를까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골프채를 잡아본 적 없던 나는 쭈뼛거리며 친구들의 뒤에 가만 서 있기만 했다.

-오늘은 제주도 중문 골프장으로 가보자.

친구 한 명이 의자 옆에 있는 컴퓨터를 만지며 그렇게 말하자, 스크린엔 정말 중문 골프장 전경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나무 하나, 벙커 하나, 모두 살아 있는 듯 우리 앞에 펼쳐졌다. 친구들은 스크린을 향해 아이언과 우드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한두 번 쳐본 솜씨가 아닌 듯 비거리도 길고 벙커 탈출도 능숙했다.

-근데 정말 필드도 나가본 거야?

나는 의자에 앉아 음료수를 홀짝거리며 친구들에게 물었다. 그러나 필드에 나가본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

-한 번 나가는 데 적어도 30만원이라는데…. 한 번 나가볼 마음으로 얘네들하고 계도 만들어 부어봤는데, 그게 어디 쉽나. 그냥 우리한테는 이게 딱이야. 그래도 여기서 얘네들하고 이렇게 클럽 잡고 있으면, 정말 부자가 된 기분이거든.

스크린에 가 닿는 골프공 소리는 퍽퍽, 소총 소리만큼이나 컸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그 다음엔 스크린이 만들어낸 가짜 공이 저 멀리 가짜 하늘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마치 우리 앞엔 보이지 않는 장벽이 하나 있고 우리가 갈 수 있는 최대치는 바로 그곳까지라는 듯, 그 나머지는 그저 신기루처럼 만들어진 거짓 위로에 지나지 않는다는 듯 그것을 암묵적으로,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스크린은 완강한 직선으로 세워져 있었다. 나는 괜스레 술기운에 휩쓸려 울적해졌다. 그런 내 옆에서 7년째 비정규직인 친구가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쳤다.

-트리플 보기!

스크린골프장에서 나와 친구들과 헤어져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내가 대문 앞에 쪼그려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미안한 마음도 살짝 들어 조용히 그 옆에 나도 쭈그려 앉았다.

-왜 나와 있고 그래? 힘들어?

아내는 내 말에 아무런 대답 없이 손가락으로 땅바닥만 이리저리 어지럽혔다. 그러다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상해. 기름 냄새만 맡으면 속이 메슥거려.

-뭐, 잘못 먹은 거겠지?

나는 아내의 등을 토닥거리며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러나 불쑥 이런 말이 아내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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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생리도 안 하고….

나는 퍼뜩 술기운이 달아나는 것을 느꼈다. 무춤, 허리도 바로 세워졌다. 또 다른 필드가 내게 펼쳐지고 있었다.



주간동아 2008.10.07 655호 (p6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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