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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항공사, 담합 걱정에 죽을 맛

‘자진신고 감면제’ 국제적 강화 움직임 … 최근 공정위 소명자료 제출 요구에 전전긍긍

  • 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

항공사, 담합 걱정에 죽을 맛

항공사, 담합 걱정에 죽을 맛
“담합했다 걸리면 죽는다. 담합을 하고도 살려면 제일 먼저 자수하라!”

요즘 재계에 횡행하는 담론이다. 이는 조선 단종 때 강도와 절도를 방지할 목적으로 다섯 가구를 하나의 ‘통(統)’으로 묶고, 그 통 안에서 강도나 절도범을 숨겨준 사례가 발각되면 다섯 가구 전체를 변방으로 이주시키는 ‘오가작통제(五家作統制)’와 1958년 북한이 다섯 가구마다 한 명씩의 당 선전원을 배치해 당이 다섯 가구의 생활 전체를 지도하려고 만든 ‘오호(五戶)담당제’의 붕괴를 연상시킨다.

이 담론은 미국이 만든 독점금지법(Anti Trust Act) 때문에 생겼다. 이 법의 위력은 2005~2007년 집중적으로 한국에 알려졌다. 2005년 5월 하이닉스가 미국에서 가격 담합을 한 혐의로 1억8500만 달러, 2005년 11월 삼성전자가 같은 혐의로 3억 달러, 2007년 8월 대한항공이 항공화물 가격을 담합한 혐의로 3억 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독점금지법은 양벌(兩罰) 규정을 적용하기에 담합을 한 기업에는 고액의 벌금, 담합 임무를 수행한 직원에게는 징역형을 부과한다.

유럽연합(EU)에서는 이 법을 ‘경쟁법(Competition Act)’으로 통칭하고, 한국에서는 ‘공정거래법(Fair Trade Act)’이라고 부르는데, 이 세 법은 담합을 살인이나 테러에 준하는 악질 범죄로 보는 공통점을 갖는다. 그래서 담합을 뿌리 뽑기 위해 희한한 묘책을 집어넣었다. 담합을 했더라도 가장 먼저 그 사실을 신고한(자수한) 기업에는 면책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를 영어로는 ‘리니언시(leniency·관대함, 인자함) 프로그램’, 우리말로는 ‘자진신고 감면제도’라고 한다.

미국의 독점금지법은 대단히 무섭다. 이 법은 담합을 한 기업에겐 해당 기업이 담합 기간 동안 미국 내에서 올린 총매출액의 15~80%를 벌금으로 부과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통상적으로 순익은 매출액의 10%를 넘기 어려운데 매출액의 15~80%를 벌금으로 물리니, 이 기업은 순익 이상을 토해내거나 문을 닫아야 한다. 이러니 미국에서는 담합했을 때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리니언시 프로그램을 이용해 가장 먼저 자수하는 것뿐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자 미국에서는 희한한 현상이 일어났다. 후순위 업체가 면책특권을 이용해 일거에 선발업체를 날려버리는 방법으로 이 제도를 이용하게 된 것이다. 가장 먼저 자수한 기업은 면책을 받지만 담합에 참여한 다른 기업은 ‘허리가 꺾어질’ 정도로 많은 벌금을 부과받으니, 이 제도를 잘 활용하면 후순위 기업은 한순간에 쟁쟁한 선발기업을 초토화할 수 있다. 맹수가 사라진 산에서는 토끼가 왕초로 등극한다.

리니언시 프로그램에 걸려든 업체들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받는다. 첫째는 담합 사실과 미 법무부가 부과한 벌금을 인정해야만 한다는 고통이다. 개중에는 억울한 피해자도 있을 수 있는데 이 법은 도무지 봐주는 것이 없다. 억울함을 해소하려면 변호사를 고용해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데, 이 법은 무죄를 증명하지 않는 한 유죄를 전제로 한다. 즉 완벽하게 무죄를 증명하지 못하면 해당 기업은 담합한 것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100% 무죄를 입증하지 못하면 오히려 벌금이 늘어난다. 버둥거릴수록 더 세게 조이는 덫처럼.

이러한 고통을 피하려면 먼저 유죄를 인정(Plea Agreement)하고 미 법무부가 부과한 벌금을 내겠다고 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나 유죄를 인정하면 벌금을 감해달라는 민사소송을 내지 못하게 되니 기업은 꼼짝 못하는 처지가 된다. 사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담합으로 피해를 봤다고 판단한 소비자들이 집단으로 제기하는 소송을 ‘후폭풍’으로 맞아야 한다.

"담합했다 걸리면 죽는다. 담합을 하고도 살려면 제일 먼저 자수하라!”월드 와이드한 특성을 갖고 있는 항공사는 담합을 하기 쉽고 공정거래법에도 걸리기 쉽다. 지금 세계적으로 항공화물의 가격 담합에 대한 조사가 펼쳐지고 있어 관련 항공사들은 크게 긴장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자수하는 기업이 있을 것인가?


“담합했다 걸리면 죽는다”

항공사, 담합 걱정에 죽을 맛

불안한 날개들. 미국이 항공화물 가격 담합에 대해 고액의 벌금을 부과한 데 이어, 유럽과 한국도 같은 조사에 착수해 항공사들이 긴장하고 있다.

2007년 8월 미국에서 담합 혐의로 걸린 대한항공, 독일의 루프트한자, 영국의 브리티시에어, 호주의 콴타스, 미국의 아메리카항공은 집단소송을 걸어온 소비자들에게 수백억원의 화해금을 지불했다. 이러니 담합을 했다 걸리면 어떠한 변명도 해보지 못하고 죽는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유럽의 경쟁법도 지독하다. 영국의 경쟁법은 담합을 했다가 걸린 기업에는, 그 기업이 담합을 한 기간에 영국에서가 아니라 전 세계에서 거래한 매출액의 10%까지를 벌금으로 부과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일본의 공정거래법은(일본 이름은 독점금지법) 그래도 일본말로 약간의 ‘유도리(ゆとり)’가 있다. 일본은 가장 먼저 자진 신고한 기업에는 벌금을 100% 면제해주고, 두 번째 신고한 기업에는 50%, 세 번째 신고 기업에는 30%를 경감시켜준다. 그러나 네 번째부터는 ‘국물도 없다’.

일본이 이러한 제도를 만들었을 때 일본 기업들은 ‘일본인의 정서상 자진신고는 없을 것’이라며 비웃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에서 일본 기업들이 말려들고, 일본의 기업운영 현실이 각박해지자 큰 변화가 일어났다. 2006년 자진신고 감면 제도를 도입한 이 법 개정안이 시행되자 담합을 고발하는 사례가 150건 이상 발생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움직임이 일어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은 1981년 공정거래법을 만들었으나 오랫동안 이 법은 ‘죽어’ 있었다. 1998년 이 법은 외국 사례를 본받아 ‘자진신고 감면제도’를 도입했으나 역시 별다른 실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이 법과 관련 시행령 등을 고쳐, 담합했다 걸리면 담합을 한 기간에 올린 매출액의 10%를 벌금으로 부과하되 ‘1순위 신고 기업(또는 조사협력 기업)은 100% 벌금 면제, 2순위 기업은 50% 벌금 면제(3위 이하는 없다)’를 준다고 하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직원 단속에 타사 움직임까지 예의 주시

항공사, 담합 걱정에 죽을 맛

항공사들은 공항이라는 ‘한 곳’에 모여 있고 월드 와이드한 기업 특징 때문에 1순위 자진신고자는 봐주는 공정거래기관의 담합조사에 취약한 구조다. 세계적인 항공사가 밀집해 있는 인천공항.

1998년 이후 지금까지 한국에서 담합을 자진 신고한 사례는 42건에 불과하다. 2006년 자진신고 건수는 7건, 2007년에는 9건이었는데 올해는 8월 말 현재 12건에 이르렀다. 지난 2년 반 사이 전체 자진신고의 66.6%가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격화된 기업경쟁 환경과 우리와 정서가 유사한 일본의 추세를 볼 때 조만간 한국에서도 담합 자진신고 건수가 폭증할 전망이다.

이러한 트렌드가 조성될 조짐을 보이자 기업에는 비상이 걸렸다. 가장 예민하게 반응한 업종은 항공사다. 업종 특성상 항공사는 한 곳에 모일 수밖에 없다. 자동차 회사는 각자가 원하는 곳에 대리점을 개설할 수 있지만, 항공사는 공항이라고 하는 ‘한 곳’에 오롯이 몰려들어야 한다. 항공사는 그들의 여객기가 취항하는 세계 여러 곳에는 전부 직원을 두고 있는데 이것도 항공사로서는 걱정거리다.

전자제품 제작사로서 세계적인 판매망을 가진 회사는 삼성 소니 모토롤라 노키아 등 10여 개 기업에 불과하다. 자동차 경우라면 도요타 GM 벤츠 BMW 르노 현대 아우디 등 역시 10여 개가 전부다. 그러나 항공사는 나라마다 최소한 한 개 이상이 있다. 한국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일본에는 일본항공과 전일공(全日空)이 있고 미국에는 수십 개 항공사가 있다.

이렇게 많은 항공사가 공항이라는 한 곳에 모여 경쟁하다 보면 일정 수준 이상의 이익을 보장받기 위해 담합의 유혹에 빠져들게 마련이다. 항공사는 ‘월드 와이드’한 기업이기에 A국에서 담합한 사실이 밝혀지면 B국과 C국에서도 연쇄적으로 담합한 사실이 노출된다.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 유럽의 공정거래기관이 항공사를 상대로 항공화물 가격 담합을 조사 중이라고 한다. 이러니 항공사 처지에서는 담합했다 걸리면 곧 파산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된다. 그래서 항공사들은 자구의 몸부림을 친다. 자사 직원이 다른 항공사 직원을 만날 때는 무조건 만난 일시와 장소, 대화 내용을 적어 회사로 보고하라는 것이다.

때마침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도 한국에서 영업하는 수많은 항공사를 대상으로 공정거래법을 어기지 않았는지에 대한 소명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항공사는 자사 직원들이 담합에 가담하지 않았는지 점검하는 한편, 혹시나 흑심을 품은 경쟁업체가 뭔가를 터뜨리지 않을까 가슴 졸이고 있다. 2008년 가을 국내 항공업계를 흔드는 괴담은 ‘담합 금지’다.



주간동아 2008.09.16 653호 (p80~84)

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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