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1

2008.09.02

설명서야 애물단지야 ‘교과서의 굴욕’

내용 광범위 ‘설’만 길어 교실 안팎서 ‘왕따’ 경직된 검정제도 변화된 사회 반영 어려워

  •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입력2008-08-25 13: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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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명서야 애물단지야 ‘교과서의 굴욕’
    “교과서는 참고서일 뿐이죠.” 고등학교 2학년 김우진(17) 군은 과목마다 2~3권의 문제집과 참고서를 갖고 있다. 이과생인 만큼 수학 참고서는 6권이 넘는다. 김군에게 교과서는 내신성적을 위해 ‘참고’하는 책의 하나일 뿐이다.

    “문제 수도 충분하지 않고, 별다른 해설도 없고, 불필요한 듯한 ‘설’만 길고…. 교과서보다는 차라리 잘 요약, 정리된 참고서가 보기에도 편해요. 선생님들도 그러세요. 교과서만으론 턱없이 부족하다고.”

    초등학교 3학년 딸을 둔 주부 김선미(32) 씨 역시 교과서에 불만이 많다. “교과서에서 다루는 내용이 광범위하고 추상적이라 섣불리 가르치기 어렵기 때문에 아이를 학원에 보낸다”는 그는 “한 단원을 끝내는 데 얼마만큼 시간이 필요한지, 아이에게 관련된 내용을 어디까지 가르쳐야 할지 등에 대해 교과서만 봐서는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가격·내용과 편집방식 모두 통제

    설명서야 애물단지야 ‘교과서의 굴욕’

    미국 맥그로힐의 교과서 Treasures 초등학교 1학년용 일부와 한국 초등학교 1학년 말하기·듣기 교과서. 판형과 디자인, 분량 등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위), 새로운 구성과 형식으로 화제가 된 고등학교 ‘차세대’ 과학 교과서(아래).

    교과서에 대한 이 같은 아쉬움은 비단 두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교과서가 학교에서 따돌림당하는 일은 오래된 현상”이라고 말한다. 그는 “예전에 비해 교과서 디자인이 개선된 면은 있지만 ‘생각해보자’ ‘탐구해보자’류의 물음만이 남아 있는 현행 교과서는 입시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입시를 벗어나) 심도 깊은 공부를 하기 위한 자료로도 불충분해 학생들에겐 그저 애물단지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렇듯 학생, 학부모, 교사에게 홀대받는 우리 교과서와 달리, 선진국에는 최상의 교육자료라고 평가받는 교과서가 많다. 백과사전 두께의 교과서는 풍부한 내용은 물론, 뛰어난 디자인에 장정도 튼튼해 수업용 교재뿐 아니라 해당 분야의 전문서적으로도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한 연구원은 “교과서가 발달한 선진국은 보통 개발에만 3~4년, 길게는 10년 이상 걸리고 수백명의 집필진이 참여한 대형 프로젝트도 많다”고 전한다. 반면 우리 교과서는 대부분의 경우 개발 및 제작 기간이 2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물론 ‘자장면 한 그릇 값도 안 되는’ 저가의 한국 교과서(교과서 평균가격은 초등 824원, 중등 1575원, 고등 3179원이다)와 권당 몇만 원을 호가하며 시장규모도 큰 해외 교과서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미국이나 영국 등 일부 선진국에서는 교과서가 개인 소장이 아닌 학교 재산의 일부다. 그래서 학년을 마친 뒤 후배가 선배의 교과서를 물려받는다). 반면 우리나라는 교과서 가격을 비롯해 내용과 외형 체계 등을 모두 정부가 통제하고 있다. 그리고 그 영향력은 상당하다.

    현재 교과서는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정부가 교과서 발행의 전 과정을 관장해 저작권을 가지는 국정교과서와 정부가 정한 일정 기준에 맞춰 민간이 교과서를 개발한 후 검정심사를 통과해 적합성을 인정받는 검정교과서, 그리고 국·검정 교과서가 없거나 보충이 필요한 경우 시·도 교육청 인정도서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친 뒤 사용할 수 있는 민간 제작 도서인 인정교과서다. 2008년 현재 초등학교 교과서와 중·고등학교의 국어, 도덕, 역사 과목은 국정교과서이며, 검정교과서로는 중학교 12개 과목 362권, 고등학교 76개 과목 542권이 쓰이고 있지만 2007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초등학교 5·6학년 예체능 과목과 중·고등학교의 국어, 도덕, 역사 과목이 국정교과서에서 검정교과서로 바뀌는 등 검정교과서 수가 확대될 예정이다.

    2년도 채 걸리지 않고 개발 및 제작

    설명서야 애물단지야 ‘교과서의 굴욕’
    현재 우리나라의 교과서 시장은 한 해 1200억~1300억원 규모(검정교과서 기준)지만 그에 딸린 자습서와 평가문제집 같은 파생상품을 고려한다면 그 10배인 1조원대에 이른다. 게다가 한 번 검정을 통과하면 다음 교육과정 개정이 있을 때까지 큰 변화가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교과서를 만드는 한 출판업체 관계자는 “교과서를 내는 업체는 여러모로 유리한 점이 많다”고 설명한다. 이 관계자는 또 “검정교과서를 발행하는 출판업체는 검정교과서 발행조합을 구성하고 있어 해당 회원 출판업체끼리는 타 업체의 교과서 지문을 저작권료 없이 이용하는 특혜를 누릴 수 있다. 최근에는 대형 학원들이 자체 발행하는 교재에 교과서 지문을 사용한 후 지불하는 저작권료를 통한 수입도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검정교과서의 경우 각 출판업체가 직접 발행업무를 맡는 게 아니라 (사)한국검정교과서가 대행하고 있으며 이후 발생하는 이익은 교과서 주문 부수와는 관계없이 모든 회원업체가 균등하게 나눠 갖는다. 즉, 일선학교에서 채택되지 않는 교과서라도 검정에 통과했을 경우 일정 액수 이상의 수입을 보장받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교과서를 내는 출판업체들의 최우선 목표는 검정에 통과하는 것이다. 교과서의 실질 사용자인 학생과 교사보다 정부 심의기관의 눈치를 더 살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일선 학교 교사들을 포함한 일부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정부의 교과서 통제 방식이 지나치게 경직됐다고 비판한다.

    기존 과학교과서와 차별되는 구성과 형식으로 화제가 됐던 ‘차세대’ 과학교과서의 집필자 중 한 명인 현종오(서울 월계고교 교사) 씨는 “지나치게 까다로운 교과서 검정기준 때문에 (‘차세대’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차세대’ 교과서를) 반대하는 이유 중에는 ‘책이 너무 두꺼워 아이들이 싸우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100쪽 정도를 줄이고 본래 하드커버였던 표지 대신 일반 교과서와 같은 형태로 바꿔야 했죠.” (현 교사)

    이 밖에도 학생들의 진로 선택에 도움을 주고자 실었던 생존 과학자들의 인터뷰는 ‘교과서에 등장한 인물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 학생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인물의 실명을 없앤 뒤에야 검정을 통과할 수 있었다. 현씨는 “경직된 관행이 교과서 발전을 지체시킨다”고 비판했다.

    교과서가 늘 교육과정에 따라 바뀌는 구조에 대한 지적도 있다. 경상대 사회교육학부 김영석 교수는 “한 교육과정이 10년간 이어지면 같은 교과서가 10년간 사용돼야 하기 때문에 교과서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사회를 반영하기 어렵다”면서 “교과서가 교육과정 설명서인 듯 여겨지는 지금의 체제를 바꾸고 외국처럼 교과서 개발을 별도로 진행해야 교과서 자체의 내실 있는 발전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자율경쟁 유도 창의적 환경 만들 것”

    이명박 대통령은 올해 초 당선인 시절 새 정부의 교육정책과 관련해 “교과서만 열심히 해도 대학에 갈 수 있게 만들라”고 지시했다. 이는 획기적인 대입개선책을 강구하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교과서 개선을 의미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교육과정·교과서 선진화를 교육 관련 18개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로 선정했으며 교육과학기술부에는 교과서선진화 팀이 신설됐다.

    교과부의 한 관계자는 “최근 일부 국정교과서가 검정교과서로 전환되고, 과학과 미술 등 일부 교과는 외형체계가 자율화되는 등 예전보다 교과서 규제가 완화된 상태”라면서 “앞으로는 시장에서의 자율경쟁을 좀더 유도해 다양하고 창의적인 교과서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교과서는 특수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일부에서 주장하듯 검인정제를 폐지하고 자유발행제로 급격히 전환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교과서로 하는 효율적인 공부법은

    생각하는 습관 기르고 전체 구조 파악이 성공 지름길


    설명서야 애물단지야 ‘교과서의 굴욕’

    1.제목과 함께 가장 먼저 눈여겨봐야 할 게 학습목표, 학습개요 같은 단원의 머리 부분이다. 잘 기억한 후 본문을 읽고 다시 확인한다. 2.본문은 무조건 읽는 게 아니라 앞서 확인한 단원의 목표를 상기하며 답을 찾듯 읽는다. 3.이미지 역시 많은 토론 끝에 선정한 것이다.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매년 등장하는 TV 속 수석 합격자들은 공부 비결을 묻는 질문에 늘 “교과서에 충실했다”는 교과서 같은 답변을 한다. 실제로 한 학습 컨설팅업체가 전국의 최상위권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80%가 넘는 이들이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학습 전문가들은 대다수의 학생들이 교과서 이용법을 제대로 익히지 못하는 반면, 상위권 학생들은 활용방식을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교육전문기업 이투스에서 생물을 강의하는 장성호 씨는 “교과서의 진가는 최상위권 학생들만이 파악하는 비밀”이라고 말했다. 그는 “참고서가 친절하고 보기에도 편하지만 이에 익숙해져 생각하는 과정을 생략하게 된다”면서 “혼자서 생각하는 습관을 갖는 게 결국에는 수능에서 성공하는 비법”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또 교과서의 핵심을 알려면 본문이 아닌 전체 구조를 파악하라고 조언한다. ‘교과서 공부법’의 저자 신성일 씨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본문만 읽고 교과서를 다 봤다고 착각한다”면서 “최상위권 학생들은 제목과 목차 등 전체 틀을 파악한 뒤 다시 꼼꼼히 이미지를 살피고, 또다시 전체 틀을 점검하는 등 교과서를 보는 시야가 넓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처럼 교과서 보는 시야를 넓히기 위해 교과서의 모양 그대로 2~3번 베껴 그려보는 방식을 제안했다. 신씨는 “큰 제목은 크게 작은 제목은 작게, 학습목표와 이미지까지 그대로 따라 쓰고 그려넣다 보면 교과서의 구조를 이해하게 될 것”이라면서 “교과서는 빽빽한 참고서와 달리 우뇌와 좌뇌를 모두 활용할 수 있는 구조로 돼 있어 잘 이용하면 지식을 습득하고 저장하는 데 더없이 좋은 교재”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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