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5

2017.02.15

사회

뛰는 실세 위 나는 ‘브로커’

미얀마 한인 커피수입상에 농락당한 최순실과 산자부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17-02-13 16:03:3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지난해 7월 4일 딴 민 미얀마 상무장관이 청와대를 예방해 박근혜 대통령을 접견했다. 당시 청와대는 ‘아웅 산 수 치 여사가 이끄는 야당이 집권한 이후 가장 고위급 인사의 방문’이라고 크게 홍보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도움이 시급한 미얀마의 장관급 인사는 자주 한국을 찾는 편이었다.

    오히려 특이한 인물은 딴 민 장관의 일정을 사실상 총괄한 김호범(44·가명)이라는 젊은 미얀마 교민이었다. 청와대 행사에 미얀마 측 인사로 참석한 그는 이튿날 양국 통상 관련 장관을 자신의 서울사무소 개소식에 부르는 등 위세를 과시했다. 그가 바로 최순실의 미얀마 핵심 인맥으로, 논란이 된 ‘미얀마 K타운’ 사업을 설계한 장본인이다.

    미얀마 K타운 사업이 특검 수사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유는 최씨가 자신의 존재가 폭로되기 직전까지 가장 애착을 보인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설문 수정 등을 처벌하는 데 형사법적 논란이 있다면 이 사안에서는 알선수재죄라는 뚜렷한 혐의가 포착됐다.

    실제 최씨는 조카 장시호에게 “대대손손 물려줄 집안의 자산”이라고 말하며 이 사업에 전력을 기울였다. 주미얀마 한국대사를 자기 입맛에 맞는 인사로 갈아치운 것도 모자라 정부의 정부개발원조(ODA) 자금을 집행하는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이사장직까지도 관련 사업(전시, 컨벤션) 전문가를 앉혔을 정도다. 심지어 김씨가 운영하는 MITS KOREA(미얀마 검사 및 검수 서비스)의 지분 15%를 직접 챙기고 이후 상장 계획까지 갖고 있었다. 이 때문에 최씨 주위에서는 ‘독일에서 이루지 못한 부동산 대박의 기운을 미얀마에서 느꼈기 때문’이란 해석도 나왔다.





    K타운 사업의 핵심은 부동산

    2011년 본격적으로 개혁·개방에 나선 미얀마는 한국이 가장 많이 투자하는 아시아 신흥국 가운데 하나다. 2014년 본격화된 코이카의 3대 무상협력사업 규모만 해도 미얀마개발연구소(2000만 달러), 새마을운동(2200만 달러), 구제역방지시스템(600만 달러) 등 총 550억 원에 이른다. 이 밖에도 각종 정부 산하기관이 유·무상으로 지원하는 액수도 상당하다는 평가.

    미얀마 K타운 사업은 ODA 자금 6000만 달러(약 760억 원)를 활용해 미얀마 수도 양곤에 사무실 및 각종 대형전시가 가능한 복합 컨벤션센터를 짓는 프로젝트다. 유례없이 빠르게 추진돼 늦어도 지난해 하반기 박 대통령의 미얀마 순방과 동시에 본격화됐어야 할 사업이었다. 이를 위해 청와대와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가 긴밀히 움직였다.

    검찰과 특검의 수사 결과에 따르면 이 같은 계획은 2015년 10월 등기를 마친 가칭 ‘한류문화재단’, 즉 사단법인 미르의 설립과 무관치 않았다. 최씨는 케이팝(K-pop)과 케이푸드(K-food), 케이스포츠(K-sports) 등 이른바 한류문화를 공연하고 전시하기 위해 독자적인 공간 확보가 필요하다는 논리로 청와대 및 정부 고위 관계자들을 압박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미얀마 교민인 김씨다. 그의 아버지는 미얀마에서 25년 이상 사업과 선교활동을 병행하며 군사정부 시절 관료들과 적잖은 인맥을 형성했다.

    미얀마 양곤의 부동산은 2011년 이후 ‘미쳤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비싼 것으로 유명하다. 시내 평범한 단독주택의 거래 가격이 50억 원 이상인 것은 물론, 임대료도 천문학적으로 높아 모 국제기구의 사무실 월세가 1억 원을 넘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씨도 “양곤의 부동산 가격이 압구정과 비슷하다”며 크게 놀랐다는 후문이다.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인 미얀마의 비정상적인 부동산 가격은 30년 이상 지속된 군부독재의 유산 때문이다. 즉 개혁·개방으로 수요는 폭증했지만 토지 상당수를 군인과 정부가 독점해 허가권을 비싸게 팔고 있는 것. 결국 미얀마에서 큰돈을 벌려면 공무원과 손잡고 부동산개발에 나서는 것이 최선이고, 이 과정에서 대사관이나 코이카 등의 도움을 받으면 더 빨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발탁된 김씨는 인맥을 활용해 양곤 인근 약 10만㎡(3만 평) 규모의 상무부 유휴 대지를 섭외함으로써 최씨의 환심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김씨를 소개한 장본인은 관세청 공무원. 커피와 중고차의 수출입을 위해 관세청을 드나들던 김씨를 고영태에게 연결해준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미얀마 K타운 사업에서 걸림돌은 김씨의 인맥이나 경험이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활용할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가 섭외해온 양곤 인근 상무부 유휴 대지는 컨벤션센터로 활용하기에는 도심에서 16km나 떨어진 평범한 주택가였다. 이백순 전 주미얀마 한국대사는 “도심은커녕 부도심도 아니라서 컨벤션센터 대지로는 부적절했다”고 기억했다.

    최씨가 직접 고른 삼성 출신의 유재경 주미얀마 한국대사와 김인식 코이카 이사장 모두 전임자와 엇비슷한 평가를 내리면서 사업은 기약 없이 미뤄지게 된다. 청와대의 하명을 받고 지난해 7월 14일 미얀마로 떠난 김 이사장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킨텍스 사장 출신답게 꼼꼼하게 사업성을 평가해 해당 대지가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내용을 청와대와 산자부에 보고한 것. 이에 발끈한 최씨가 자신의 미얀마 측근들을 대동해 현지답사에 나선 배경이 됐다. 결국 산자부의 재검토 지시를 받은 코이카가 9월 초 다시 현장을 방문한 뒤 최종적으로 ‘불가’ 입장을 천명하면서 미얀마 K타운 사업은 기세가 꺾이고 만다.



    “최순실이 브로커에게 당했다”

    미얀마 사정에 밝은 한 코이카 관계자는 “최씨 일당은 땅을 개발해 얻는 수익에만 신경 썼겠지만, 그 건물에서 생활해야 할 실무자 처지에선 어려운 문제였을 것”이라고 답했다.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투자가 불가능했다는 얘기다. 현지 사정은 모른 채 비선 실세의 사적 인맥에 속은 청와대와 산자부만 몸이 달아 대통령의 미얀마 추가 방문까지 추진한 셈이다.

    관세청 직원이 고씨에게 소개했다는 김씨의 이력도 미스터리하다. 그가 대외적으로 사용한 미얀마 상무부 산하 무역진흥국(Myanmar Trade Promotion Center)의 서울사무소장(관장)이라는 공직 직함의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씨가 하는 무역 사업의 근거는 1990년대 미얀마 상무부 산하에 세워진 MITS라는 합작법인이다. 서방의 금수조치가 계속되던 군사정부 시절 자국의 수출입 행정을 간소화하고자 만든 것이지만, 실제로는 사문화된 조직. 그는 아버지의 인맥을 활용해 이 기업의 한국지사 권한을 얻어 2014년 1월 한국에 MITS KOREA란 회사를 세웠다.

    문제는 그가 미얀마 정부와 인연을 앞세워 마치 “허가권을 독점해 선적 전 화물 검사는 물론, 통관과 세관 업무까지 가능하다”는 식으로 우리 정부기관에 접근한 것. 당시 코트라 양곤지사에서 일하던 한 관계자는 “당시 김씨의 과대홍보로 여러 기업으로부터 항의를 받은 바 있다”며 “실상 김씨의 사업은 일반적인 수출입 서비스와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무역 전문가들도 입을 모아 “특정 국가의 인증 및 통관과 관련된 사안을 일개 주식회사가, 그것도 해외에서 진행하는 사례는 없다”면서 의구심을 나타냈다. 양곤에서 유명 건설업체를 운영하는 교민 K씨 역시 “비교적 쉽게 만날 수 있는 상무장관을 팔아 국내서 장사한 사례”라면서 “그런 사람에게 속는 한국 정부가 우스운 모양새가 됐다”고 촌평했다.  

    미얀마 교민사회에서는 ‘비선 실세가 평범한 미얀마 브로커에게 당했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현재 김씨는 특검 조사를 마치고 미국으로 거처를 옮겼다. 서울에서 마치 미얀마 정부기관처럼 포장돼 있던 김씨의 ‘미얀마 무역센터’ 역시 문을 닫았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