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4

2007.12.11

경쟁사회 내몰린 젊은 층 ‘닮은꼴 삼국지’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07-12-05 14:0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경쟁사회 내몰린 젊은 층 ‘닮은꼴 삼국지’

    <b>한중일 인터넷 세대가 서로 미워하는 진짜 이유</b><br> 다카하라 모토아키 지음/ 정호석 옮김/

    일본의 단카이(團塊) 세대는 패전 후 출생률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을 때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를 말한다. 대체로 1947년부터 49년까지 태어난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학시절 격렬한 학생운동을 경험했으며 고도성장기의 주역이다. 또한 누구보다 책의 가치를 깨달은 세대로 지난 수년간 출판시장을 움직여온 주춧돌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늘 단카이 세대를 주목했다. 올해는 단카이 세대가 정년을 맞이하는 첫해여서 일본의 출판기획자들은 올해를 출판의 터닝포인트로 여겼다.

    한국의 386세대도 단카이 세대와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다. 학생운동 경험이라 하면 결코 뒤지지 않으며 고도성장기의 주역이기도 했다. 또 인문사회과학 세대라 부를 만큼 책의 가치를 깨달은 세대다.

    나는 두 세대를 비교하면서 출판시장의 앞날을 내다보곤 한다. 물론 386세대는 단카이 세대보다 나이가 적다. 하지만 우리는 일본보다 심정적인 정년이 빠르기 때문에 일본의 출판 흐름을 곧바로 뒤따르는 면이 없지 않다.

    ‘한중일 인터넷 세대가 서로 미워하는 진짜 이유’를 읽으면서 나의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한중일은 20년 주기로 고도성장기를 맞이한다. 1960년대의 일본, 80년대의 한국, 2000년대의 중국은 공교롭게도 그 시기에 각각 올림픽을 연다. 저자는 고도성장 과정에서 세 나라가 똑같이 겪은 노동유연화와 사회양극화 때문에 심리적 불안에 빠진 젊은이들이 외부에서 적을 찾고, 동시에 이들의 방향 잃은 귀속의식이 다시 ‘국가’로 향하면서 인터넷에서 편협한 애국주의가 세를 불리고 있다는 가설의 입증을 시도한다. 반일이나 혐한·혐중 감정이 ‘역사적 실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국의 속사정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개별불안형 내셔널리즘’이라 지칭한다.

    이 주장은 일리가 있어 보이지만 설득력은 크지 않다. 그러나 내가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체제가 강화되면서 개발체제였던 한중일 세 나라의 국내 시스템이 개혁 대상이 돼야만 했는데, 그 과정에서 가장 고통받은 사람은 젊은이라는 점이다. 기업이나 국가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던 ‘관료제’가 무너진 다음 개인화된 경쟁에 내던져진 세 나라 젊은이들의 모습이 닮은꼴이라는 저자의 지적은 매우 설득력 있다.



    대중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이행하는 문명 변화기에 ‘대단한 성공’을 꿈꾸었다. 그러나 한때 성공한 사람은 곧 허무감에 빠져들었고 실패한 사람은 더 끔찍한 좌절을 겪었다. 그래서 대중은 성공을 포기하고 ‘나만의 행복’으로 노선을 바꿨다. 지난해 우리 출판시장에는 행복이라는 담론이 넘쳐났다. 그런데 올해 출판시장에서 독자들은 현명한 삶을 추구했다. 현명한 삶이란 철학자의 지혜로움을 뜻하는 게 아니다. 일과 개인생활에서 철저하게 자기 이익을 추구함을 말한다. 그런 모습이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은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에 따른 임금제, 직업훈련의 기회를 보장하고 주거 및 각종 수당 등 후생복지를 마련한다는 ‘일본식 경영’으로 1억 ‘총중류사회’를 추구해왔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이런 체제가 급속히 붕괴하고 사회양극화가 진행되면서 젊은이들은 하류사회로 내팽개쳐졌다. 단카이 세대가 여전히 기득권익을 보호받는 가운데 젊은이들은 ‘프리터(아르바이트 등 비정규직 취업자)’나 ‘니트(취업 의욕도 없고 직업교육도 받지 않는 무직자)’로 전락해간 것이다. 미국에서는 하층의 일자리를 이민노동자들이 채웠지만 일본에서는 젊은이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올해로 IMF 관리체제를 겪은 지 10년이 되는 한국은 어떤가? 신자유주의 논리가 강고해진 대학은 그저 취업을 위한 지식이나 조건을 마련하는 통과의례 장소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이구백’ 탈출이 관건이다 보니 그곳에서 지성이나 낭만을 찾는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중국은 국유기업 개혁으로 사회주의 부문의 축소와 시장경제 공간의 확대를 지향했다. 90년대 후반 대학 졸업 인력에 대한 국가의 할당제도가 폐지된 뒤 많은 대졸자들은 시장 주도의 직업 선택에 직면했고, 개인사업을 하거나 예술가, 통역·번역가, 프리랜스 변호사 같은 성장 직종의 자영업자가 되고자 했다. 이것이 기회일 수도 있지만 ‘끊임없는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더 많다.

    저자가 지적한 대로 성장 중시 체제를 변혁하는 과정에서는 청년실업자가 양산되게 마련이라 ‘불안’이 청년층으로 집중됐다. 그런 현실에서 대중은 모든 문제를 매우 개인적으로만 해결하려 한다.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중일 세 나라가 처한 환경을 면밀히 분석하고 바람직한 미래를 그려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앞서 경험한 일본과 뒤따라오는 중국의 현실을 파악하고 비교해보는 것도 유용한 방안일 것이다. 유교 문화권인 동아시아 3국은 유사점이 많으니 말이다. 나는 동아시아 공동출판 프로젝트에 참여해 두 권의 책을 펴낸 경험이 있다. 1976년생인 저자가 만으로 30세인 2006년 쓴 이 책을 읽으면서 그 같은 프로젝트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