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4

2007.12.11

뚱녀들의 유쾌한 반란 & 인종차별주의에 똥침 놓기

  • 심영섭 영화평론가 대구사이버대 교수

    입력2007-12-05 13: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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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뚱녀들의 유쾌한 반란 & 인종차별주의에 똥침 놓기
    일명 쓰레기의 제왕, 세상 속 저급한 것들의 열혈 광신도였던 감독 존 워터스는 1970년대 모든 조악함을 모아 주류 영화를 무장해제시켰다. 그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핑크 플라밍고’에서 주인공들은 주사기로 자가 인공수정을 하는가 하면 개똥 먹기를 불사하고, 심지어 ‘항문쇼’도 벌인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혐오 정서에 주류 감수성을 비틀어 막가파식 풍자정신을 일깨웠던 존 워터스.

    컬트 시대를 도래시킨 그가 비교적 주류 감성을 갖게 된 것은 1988년 발표한 ‘헤어스프레이’부터다. 분사되는 순간 공기 중에 사라지고, 달콤하고 끈끈한 감촉만 남기는 헤어스프레이처럼 10대의 감수성을 가볍게 엮은 영화는 2002년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로 재탄생해 토니상 최우수 뮤지컬상, 최우수 연출상 등을 받으며 히트 넘버가 됐다.

    물론 존 워터스의 영화가 원전인 만큼 여기에도 파격은 있다. 땅딸막하고 못생긴 소녀가 반드시 주인공이어야 하며, 1988년부터 주인공의 어머니인 에드나 역에는 존 워터스 영화의 트레이드마크인 여장남자 배우 ‘디바인’을 모델로 한 남자배우가 여장을 하고 나와야 한단다. 그래서 미국의 평자들은 뮤지컬 ‘헤어스프레이’를 ‘불가능한 뮤지컬’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기적’이라 평하며 “그 흥겨움에 극장이 안 떠내려갔나”식의 격찬을 쏟았다. ‘헤어스프레이’는 여전한 외모지상주의와 인종차별, 쇼 비즈니스계의 추악한 뒷면에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드는 것이다.

    섹시보이 존 트래볼타 여장 연기 압권

    늘 행복하고 낙관적인 통통과 뚱뚱을 넘나드는 ‘트레이시’는 볼티모어(볼티모어는 존 워터스의 고향이며, 볼티모어시는 1985년 2월7일을 ‘존 워터스의 날’로 정했다) 10대들에게 최고 인기를 끌고 있는 ‘코니 콜린스 쇼’에 출연하는 게 꿈이다. 댄싱퀸인 ‘미스 헤어스프레이’가 되기 위해, 짝사랑하는 동급생 링크의 마음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그녀. 어느 날 새 멤버를 영입하기 위한 ‘코니 콜린스 쇼’의 공개 오디션이 열리자 트레이시는 딸이 주눅들까 걱정하는 엄마 ‘에드나’(존 트래볼타 분)를 뒤로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오디션에 참가한다. 물론 여기에 흑인 친구 시위드와 트레이시의 절친한 백인 친구 ‘페니’(아만다 바인즈 분)의 문제적 사랑이 무르익어가고, 이를 온몸으로 저지하는 볼티모어 TV 방송국 매니저 ‘벨마’(미셸 파이퍼 분)의 음모가 인정사정 볼 것 없이 트레이시를 쥐어짠다.



    ‘헤어스프레이’에서는 ‘쭉쭉빵빵’ 미녀들이 싱거워 보일 정도로 육중한 미녀들이 유쾌한 반란을 펼친다. 고전적인 백인 미인으로 이름을 떨쳤던 미셸 파이퍼가 악녀 벨마 역을 맡은 것도 이 뮤지컬의 ‘뚱녀 예찬’ 메시지 때문이리라. 몸매는 드럼통이지만 춤과 노래만큼은 물 찬 제비 같은 여배우 니키 블론스키(그녀는 아이스크림 가게 종업원으로 1000대 1의 오디션 경쟁률을 뚫고 주연에 입성했다)는 좌중을 압도하며 시종일관 뮤지컬의 진수성찬을 펼쳐 보인다.

    게다가 트레이시의 엄마 역이 누군가. ‘토요일 밤의 열기’의 섹시보이 존 트래볼타가 살을 불리고 특수분장을 감내하며 육중한 몸매와 애교가 함께하는 에드나로 나와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토요일 밤의 열기’ ‘그리스’ 이후 30년 만에 뮤지컬 영화에 등장한 존 트래볼타를 보는 것 자체가 감회려니와, 말라깽이 남편 역의 크리스토퍼 윌켄과 능청스럽게 사랑의 춤을 추는 여성 연기에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인 특유의 행동주의·낙관주의 ‘물씬’

    뚱녀들의 유쾌한 반란 & 인종차별주의에 똥침 놓기

    영화 ‘헤어스프레이’의 존 트래볼타(왼쪽).

    196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은 대부분 60년대에 대한 향수와 그 시대가 미국 사회의 다원주의에 기여한 역사적 평가를 디스코와 스윙, 흑인 음악과 백인 컨트리 음악 등에 비벼넣는다. 주인공 트레이시가 열심히 헤어스프레이를 뿌리며 세운 머리는 바로 그 유명한 재키 케네디의 복고풍 헤어스타일이고, 아이들은 캔디 컬러와 눈부시게 번쩍이는 스팽글 옷을 뽐낸다.

    그렇지만 방송국에서는 백인 방송의 날과 흑인 방송의 날이 따로 있을 정도로 인종차별이 심하다. 이런 시대상황을 풍자적으로 재현하는 게 바로 트레이시가 수업 중 딴생각을 할 때마다 선생님들이 벌로 흑인들과 섞여 있게 하는 장면일 것이다. 그런데 트레이시는 이를 통해 고통받기보다 오히려 흑인들의 춤과 노래를 자기 식대로 수혈받는다. 가장 백인적인 음악에서조차 흑인 음악의 영향을 떨칠 수 없다는 은유는 ‘드림걸즈’가 내세운 70년대 미국 음악의 역사적 진실게임이기도 하다. 즉 디트로이트에서 시작된 모타운 레코드의 흑인 리듬 앤드 블루스(R·B)가 태동하기 직전인 ‘드림걸즈’의 상황 또는 올드 뮤지컬 ‘그리스’의 진보 버전이 바로 10대들로 에워싼 ‘헤어스프레이’와 맥을 잇는 것이다.

    그러나 ‘헤어스프레이’는 이러한 역사적 상황에 대한 비판 대신 경쾌하고 가벼운 전복으로 뮤지컬 본연의 자세를 유지하며 흑백의 화합과 소수자에 대한 예찬으로 보는 이를 기분 좋게 한다. 그러므로 흑인인 시위드와 백인인 페니의 사랑도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식 비극이 아니라, 페니가 적극적으로 부모에게서 도주하고 두 사람 역시 외부 시선에 대한 부담 없이 사랑을 이루는 식이다. 이제는 흑인 대통령 후보가 나오는 시대의 여유가 느껴진다고 할까, 미국인 특유의 행동주의와 낙관주의가 전 세계에 ‘먹히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그러므로 ‘헤어스프레이’에서 고상한 깊이나 의미 따위는 추구하지 말 것. 유치찬란하지만 구김살 없는 원색의 원피스를 입었을 때처럼 ‘헤어스프레이’는 기분을 상승시킨 상태에서 휘파람 불고 몸을 흔들며 봐야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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