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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관광 메카 만들자” 지자체 목소리는 큰데 …

서울 부산 대구 등 해외 환자 유치 프로젝트 가동, 기반 조건·노하우 부족 등 경쟁력 장담 못해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의료관광 메카 만들자” 지자체 목소리는 큰데 …

“의료관광 메카 만들자” 지자체 목소리는 큰데 …
1999년 7월 대구의 모 산부인과 전문병원. 인도 국적의 한 임신부가 출산을 위해 입원하려 하자 비상이 걸렸다. 대구지역에서 지명도 높은 병원이었지만, 외국인 환자까지 진료할 만한 서비스 시스템은 갖추지 못했던 것. 병원 측은 궁여지책으로 영어에 능한 다른 환자 및 보호자들을 ‘도우미’로 활용하기 위해 수소문했지만 허사였다. 의료인 출신이 아니고선 까다로운 전문 의료용어를 써가며 인도인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당장 구해질 리 없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8년. 의료계 풍경은 180도 달라졌다. 국내 병·의원들이 해외 환자 유치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는 것. 이른바 ‘의료관광’ 시대의 도래다.

국내 의료관광 활성화의 선봉장을 자임한 곳은 지방자치단체. 가장 적극적인 곳은 서울시다. 서울시는 의료 목적으로 한국에 들어오는 외국 관광객을 유치해 동북아 의료 허브로 거듭나려 세계적 수준의 의료관광복합단지를 민자 유치로 조성키로 하고, 조만간 ‘서울시 의료관광 활성화 협의회’를 구성하는 한편 내년 중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 의료관광복합단지 조성 방식 및 운영방안 등에 관한 연구용역을 맡길 계획이다. 의료관광복합단지엔 일반적인 의료서비스센터, 건강검진센터, 특화진료센터, 한방클리닉, 성형센터, 건강관리센터 등이 조성될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는 이에 그치지 않고 대한성형외과학회와 공동으로 성형관광사업도 추진 중이다. 대한성형외과학회 윤을식 총무(고려대 의대 성형외과학교실 교수)는 “지난해 9~10월 서울시가 학회에 성형관광사업을 제의해 내부적으로 검토해본 결과, 사업의 방향성과 시행계획이 타당하다고 생각돼 공동 추진키로 했다”며 “이 사업에 참여할 병·의원 일부를 확정한 상태”라고 밝혔다. 2007년 11월 현재 참여가 확정된 성형 관련 의료기관은 30개소. 조만간 50여 개소로 늘어날 전망이다.

의료관광 활성화에 대한 서울시의 의지는 11월14일 열린 ‘서울시 의료관광 및 국제컨벤션 육성방안’ 정책토론회에서도 분명히 읽힌다. 이날 ‘서울시 의료관광의 국제마케팅 육성방안’에 대해 발제한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도시경영부 윤형호 연구위원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보다 우위에 있는 성형 분야의 경우 외국인 환자 선호도가 높은 만큼 서울에서 성형외과가 가장 밀집한 압구정동-신사동-청담동 일대를 이른바 ‘성형 특구(산업개발진흥지구)’로 지정하고, 한국을 찾는 외국인 피부과 환자를 위해서도 도심관광 쿠폰을 발급하는 등 적극적인 마케팅을 해야 한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의료관광 메카 만들자” 지자체 목소리는 큰데 …

외국인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삼성서울병원 의료진.

윤 위원은 그 근거의 하나로 BK동양성형외과, 우리들병원, 삼성서울병원, 아름다운나라피부과, 자생한방병원, 서울대병원, 서울대강남검진센터 등을 찾은 외국인 환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도 발표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 대다수가 비용 부문을 제외한 의료진 수준, 시설과 의료장비, 언어소통 부분에서 만족해했으며, 특히 삼성서울병원과 서울대병원, 서울대강남검진센터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윤 위원은 “의료관광을 통한 해외 환자 유치는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신(新)산업으로, 우리나라의 우수한 의료기술은 선진국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경쟁력을 지녀 전망이 매우 밝다”고 내다봤다.

서울시 성형, 대구시는 모발이식에 주력

서울시의 의료관광사업은 현재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가 시행 중인 의료관광과는 별개의 것. 복지부는 해외 환자 유치 활성화 차원에서 종합검진, 정형(척추), 성형, 치과, 한방 등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지닌 분야를 중심으로 종합병원부터 의원급까지 전국 34개 의료기관을 회원으로 확보해 민·관 협의체인 ‘한국국제의료서비스협의회’를 3월 출범시켜 운영하고 있다. 복지부 보건산업정책팀 박종억 주무관은 “개별 병·의원만으로는 의료관광 활성화에 한계가 있어 협의회를 꾸렸으며, 회원 의료기관 중 30개소가 올 상반기에만 1만8000여 명의 순수 치료 목적의 해외 환자를 유치했다”고 밝혔다.

대구시도 의료관광 산업화에 관심이 크다. 급속한 고령화·세계화 추세와 맞물려 의료관광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떠오를 것을 예상해 최근 ‘의료관광 활성화 추진계획’을 마련한 것. 대구시가 지역만의 ‘빅 카드’로 내세우는 분야는 경북대병원 김정철 교수가 개발한 모발이식술과 우수한 한방 인프라, 타 도시보다 비용이 저렴한 종합건강검진이다. 이중 모발이식술의 경우 현직 국회의원 15명을 비롯해 정부 주요 인사 등 5000여 명이 이미 시술받은 데다 대기환자가 1년을 기다려야 할 만큼 대구지역 의료계의 대표 브랜드다. 이에 따라 대구시는 재미교포와 중국 일본의 부유층을 타깃으로 국내외 마케팅 활동을 벌일 예정.

대구시 신산업팀 관계자는 “모발이식술의 경우 1인당 시술비가 500만~700만원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데다 환자는 4시간가량 시술을 받은 후 자기 나라로 돌아가 별도 치료 없이 실밥만 뽑으면 되므로 수요가 클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외국에 나가 치료를 받고 관광까지 즐기는 의료관광은 세계 관광산업의 흐름에서 볼 때 최근 각광받는 분야다. 발빠른 일부 국가에서는 의료관광이 산업으로 자리매김해 아시아권의 경우 싱가포르에서 태국을 거쳐 인도로 중심이동이 진행되는 상황이다. 의료기술 수준이 높은데도 치료비가 저렴해 영국 중동 아프리카 등지 환자들이 몰리는 인도는 최근 의료관광 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의료관광 실적 데이터조차 없어

“의료관광 메카 만들자” 지자체 목소리는 큰데 …

한국국제의료서비스협의회 홈페이지.

문제는 우리나라 의료관광사업의 경우 지자체들이 해당 지역의 발전을 견인할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으면서도 이를 뒷받침할 밑그림을 체계적으로 그리지 않은 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 우선 그동안 개별 의료기관 차원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이뤄져온 탓에 의료관광 실적에 대한 데이터조차 없어 국내 의료관광시장 규모를 예측하기가 힘들다. 게다가 지금까지 알려진 지자체 의료관광정책은 ‘애드벌룬 띄우기’에 급급한 측면이 있다.

이 때문인지 서울시의 반응은 무척 조심스럽다. 서울시 관광마케팅과의 한 직원은 “아직 의료관광복합단지 조성 관련 예산이 책정되지 않은 데다, 성형 특구 지정에 대해서도 시 내부적으로 ‘시가 그런 사업까지 해야 하냐’는 등 논란이 적지 않아 구상이 가시화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의료관광 활성화가 오세훈 서울시장의 선거공약임을 무색게 하는 대목이다.

대구시의 의료관광 활성화 추진계획도 ‘야심찬 구상’이긴 마찬가지. 모발이식술이 국제적 경쟁력을 지녔다곤 하지만 다국적 의료관광 홈페이지 개설, 병·의원 동시통역시스템 도입, 테마형 의료관광단지 조성, MD앤더슨 병원 같은 해외 유명병원 유치 등 대구시가 향후 추진하려는 과제들은 하나같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서울과 부산에 비해 해외 환자들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도 난제다.

구상단계이기는 부산시도 똑같다. 11월 중순 부산시가 의료관광 인프라 구축 차원에서 부산시의사회와 함께 외국어 진료가 가능한 지역 병원을 선정하고 외국인 환자를 위해 이들 병원을 소개하는 홍보물을 제작해 공항, 여객터미널, 호텔 등지에 비치하는 한편 내년 1월 영어 진료 서비스를 도입키로 했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그러나 부산시 의료관광 유관 부서들의 답변을 들으면 이 또한 부서간 조율조차 되지 않은 한낱 구상에 불과하다.

“외국어 진료 병원 선정은 아직 완전히 수립된 계획이 아니다.”(관광진흥과) “현재 실태조사 중이어서 구체적인 시행지침은 마련되지 않았다.”(보건위생과)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의 ‘성형 특구’ 제안도 그 범위와 시기가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원의로 중국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환자들을 진료한 경험이 있는 박현성형외과(서울 강남구 신사동) 박현 원장의 말이다.

“성형 특구 제안은 그동안 주로 부정적 시각에서 다뤄져온 성형을 산업적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강남구 전체가 아닌 몇몇 동(洞)만 특구로 지정하면 해당 지역으로 더 많은 성형외과가 몰려 임대료가 오르고 결과적으로 치료비까지 덩달아 뛰는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 특구 지정 시기도 때늦은 감이 있다. 한류(韓流) 열풍이 한창이던 4, 5년 전 지정을 검토해 바로 시행했더라면 큰 성과를 거두지 않았을까?”

7월부터 병원 행정직원과 간호사 등 의료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메디컬투어코디네이터’ 양성과정을 운영 중인 한국의료관광전문가교육원 조현준 본부장의 지적이다.

“의료관광 산업화는 현재 정체 상태인 복지부의 해외 환자 유인정책을 넘어 지자체들 스스로 새 활로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일견 바람직해 보인다. 하지만 지금은 지자체나 의료기관들이 의료관광 활성화를 위해 참조할 만한 지침조차 마련돼 있지 못하다. 구상을 현실화하려면 사전에 의료관광 전문가 집단을 구성해 지침을 만드는 일부터 서두르는 게 사업 순서상 옳지 않은가.”

의료서비스는 국부(國富)를 창출할 주요 관광자원임이 틀림없다. 더욱이 의료관광은 세계 각국이 눈독을 들이는 ‘블루오션’이다. 그러나 노와이(know-why)는 자명하나 노하우(know-how)는 옹색한 대한민국의 지자체발(發) 의료관광사업엔 다음 경구(警句)가 어울리지 않을까. “Don’t work too hard, do work smart!”(무조건 열심히 하지만 말고, 지혜롭고 창조적으로 일하라!)



주간동아 614호 (p60~62)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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