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4

2007.12.11

동교동계, 정동영 지원 발 벗고 뛰나

DJ “鄭으로 세력 결집” 잇단 의중 표현 … 통합 결렬로 민주당에 대한 기대 접어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7-12-05 10: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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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교동계, 정동영 지원 발 벗고 뛰나

    박지원 전 비서실장(두 번째 줄 맨 오른쪽)이 10월10일 열린 사형폐지국가 선포식에 김대중 전 대통령을 수행해 참석했다.

    11월11일 천안 IMG내셔널 골프장 예약자 명단에 동교동계 정치인 22명의 이름이 올랐다. 문희상 배기선 이강철 등 현역 의원 9명과 권노갑을 비롯해 한화갑 한광옥 김옥두 전 의원 등 한때 내로라하던 동교동계 가신들이 대거 포함돼 있었다. 이날 모임은 권 전 의원의 초대로 추진됐고, 연락책은 김태랑 국회 사무총장이 맡았다.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 동교동계가 이처럼 대규모 모임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정치권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특히 모임 소식이 알려진 시점이 대통합민주신당(이하 신당)과 민주당이 합당 발표(11월11일)를 앞두고 막판 줄다리기를 진행하던 즈음이었다.

    하지만 모임은 며칠 전에 전격 취소됐다. “우리가 모인다는 정보가 일부 언론에 새면서 권 전 의원이 많이 부담스러워했다. 대선을 앞두고 동교동계가 모인다는 것 자체가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기 때문”이라는 게 김 총장의 설명이다.

    김 총장은 모임 배경에 대해 “오랫동안 적조했는데 얼굴이나 보자는 차원에서 추진됐지만, 모이면 자연스럽게 대선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김대중 정부 시절 박지원 비서실장의 최측근으로 활동하던 김명진 전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이 신당 정동영 후보 캠프에 합류했다. 그가 맡은 업무는 홍보전략 특보. 4개월여 전 신당 오충일 대표의 비서실에 들어간 이훈 특보에 이은 박 실장 최측근의 두 번째 신당 합류였다.



    鄭 지원 본격화 곳곳에서 정황 포착

    김 특보는 “개인적 친분이 있는 정 후보 캠프의 어떤 분이 추천해 특보를 맡게 됐다. 공식적인 조직에서 움직이는 것은 아니지만, 정 후보가 당선되길 희망하면서 나름대로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한 달 전인 10월19일, 박 전 실장이 자신을 명예고문직으로 위촉했다는 정 후보 측 발표를 부인했던 일과 묘하게 오버랩되는 이야기다.

    최근 동교동계와 박지원 전 비서실장이 정 후보에 대한 지원을 본격화한 정황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그동안 민주당과의 관계를 고려해 정 후보에 대한 지지 표명을 피해오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동교동계나 박 전 실장은 신당과 민주당 간의 통합논의가 시작되던 올해 초부터 통합 성사를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기울여왔다. 동교동계 좌장인 권 전 의원이 7월 민주당 박상천 대표를 만나 2시간 30분 동안 통합 당위성을 설득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박 대표가 신당 내 특정 정파에 대한 배제론을 철회한 것이 바로 권 전 의원과의 만남 이후다.

    김 총장은 동교동계가 신당과 민주당의 통합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야당 시절부터 지역 분단과 남북 분단을 통탄해왔다. 그런데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여당이 두 쪽 났다. 김 전 대통령이나 동교동계가 보기에는 비극적인 일이었다. 이 정부가 끝나기 전에 언젠가는 반드시 하나로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아마 모두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올해 초부터 10여 명씩 여러 차례 모였는데, 그때마다 김홍업 의원을 합석시켰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물론 동교동계를 대변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김홍업 의원은 올해 초 통합논의가 한창일 때 민주당을 탈당해 신당에 합류했다. 현재 김 의원은 정 후보의 선거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박지원 전 실장 아직 조심스런 행보

    박 전 실장도 통합을 위해 ‘정중동(靜中動)’ 행보를 이어왔다. 외형상 정치 행보를 자제하면서도 민주당 박 대표는 물론 주요 인사들과 자주 접촉하면서 통합의 당위성을 강조해온 것. 신당의 한 의원은 “박 전 실장이 어느 날 전화를 걸어 박 대표에 대해 역정을 낸 적이 있다”면서 “박 전 실장은 민주당이나 신당 주요 의원들을 직접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통해 분열 없는 범여권 단일대오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교동계와 박 전 실장은 최근 신당과 민주당의 통합이 최종 결렬되면서 민주당에 대한 마지막 기대를 접은 듯하다. 동교동계 한 의원은 “민주당은 스스로 호남을 대표하는 정당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런 정당의 후보(이인제) 지지율이 1%대라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푸념했다. 결국 동교동계나 박 전 실장 처지에서는 정 후보가 유일한 대안인 셈이다.

    박 전 실장은 “통합은 범여권 대통합을 추진할 때의 문제였고, 이제는 후보 단일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동교동계와 박 전 실장이 정 후보를 지원하는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의지와도 무관치 않다. 김 전 대통령은 11월22일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열린 ‘잃어버린 50년, 되찾은 10년’ 행사에서 사실상 정 후보를 중심으로 한 세력 결집을 주창했다. 이날 주요 발언 가운데 일부다.

    “여론조사를 보면 진보와 중도를 지지하는 사람이 70~80%를 차지한다. 우리의 기반은 아직 살아 있다. 다시 한 번 일어서야 한다. 우리가 위축되고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있는데 어떻게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냥 (대선을) 넘어갈 수 없다. (보수세력이 집권하면) 민족의 운명을 좌우해 심지어 전쟁의 길로 끌고 갈 수도 있다.”

    김 전 대통령은 11월27일 경남대 북한대학원 특강 중 질의응답 시간에 “햇볕정책 이외에 대안은 없다. 그럼 전쟁을 하자는 것이냐, 과거처럼 냉전을 하자는 것이냐. 그건 안 될 말이다”라고 했다. 이어 김 전 대통령은 “북쪽에 지나치게 거부감을 갖는 정권이 나오면 북한과의 관계가 상당 기간 악화될 우려가 있다. 게다가 미국이 북한과 급격히 가까워지고 있다. 우리만 고립될 수 있다. 그런 점을 국민이 잘 판단해 투표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 이어 햇볕정책을 계승 발전시킬 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한 것. 그러나 동교동계와 박 전 실장은 정 후보를 위한 공식적인 정치 활동이나 언급은 삼가고 있다. “(내가) 일선에 나서면 대통령의 언행으로 비칠 소지가 크다”고 말한 박 전 실장은 “아직 정치 활동을 할 처지도 못 되고, 나설 입장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동교동계 한 의원은 동교동계와 박 전 실장의 조심스런 행보에 대해 노 대통령의 임기 말 ‘사면복권’과 연관지어 설명했다. 대북송금 사건에 연루돼 실형을 선고받고 아직 사면복권을 받지 못한 동교동계나 박 전 실장이 정치 활동을 재개한 것처럼 비칠 경우 노 대통령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비판이나 평가를 유보하고 있는 이유도 노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라는 게 이 의원의 설명이다. 결과적으로 동교동계와 박 전 실장은 정 후보에게 현 정부의 실정에 대한 공격조차 요구하기 어려운 처지라는 것.

    이 같은 한계에도 동교동계와 박 실장의 측면 지원은 정 후보로서는 분명 바라던 바다. 반면 민주당과 이인제 후보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들의 활동이 호남세력의 결집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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