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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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사건 모티프 화폭에 담긴 추리소설

  • 류한승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입력2007-10-31 17: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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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격사건 모티프 화폭에 담긴 추리소설

    박윤영 씨의 작품 ‘One Tree Hill’.

    독특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가 박윤영 씨가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전시회 제목부터가 특이하다. 바로 ‘익슬란 스탑(IXTLAN STOP)’이다. 페루 원주민 출신 인류학자 카를로스 카스타네다의 소설 ‘익슬란으로의 여행’에서 빌렸다고 한다.

    그의 작업은 마치 그림으로 이뤄진 한 편의 소설 같다. 영화, 음악, 소설, 공연, 자연풍경, 살인사건 등 이미 존재하는 이야기나 사건들이 그의 손만 닿으면 그만의 독창적인 내러티브를 담아낸다.

    그의 작품에는 여러 상징과 은유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래서 어떤 것들은 기발함으로 흥미를 주지만, 어떤 것들은 지나치게 난해해 우리를 미궁에 빠뜨리기도 한다.

    박씨의 이런 스타일은 ‘픽톤의 호수’(2005) 연작에서 시작됐다. 픽톤(Robert Pickton)은 캐나다 밴쿠버 근교에 있는 농장 주인이다. 그는 지난 30년간 69명의 여자를 살해해 돼지 사료로 사용한 연쇄살인범이다. 박씨는 작품에서 바로 범인에게 희생당해 사라진 여성들을 ‘백조의 호수’와 연결했다. 마법사 로트바르트(Rothbart)에 의해 여자들은 낮에는 백조가 되고 밤에는 사람이 된다. 낮에는 여자들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밤에는 나타난다는 것. 하지만 밤에 나타난 여자들은 갖은 학대를 받는다.

    박씨는 1년 뒤 다시 ‘아겔다마로의 여정’(2006) 연작을 발표했다. 이 연작은 작가가 픽톤 농장을 조사하러 다닐 때 들었던 U2의 음악 ‘Until the End of the World(세상의 끝까지)’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기에는 성경의 사도행전, 마틴 루터 킹, 리버뷰 정신병원 등이 차례로 접속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앞서 발표한 ‘픽톤의 호수’와 ‘아겔다마로의 여정’을 포함해 다양한 신작이 출품됐다. 작품의 큰 줄기를 보면 작가는 U2의 음악 ‘One Tree Hill’을 주목한다. 이 노래의 소재는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이다. 이들의 마을 언덕에는 아주 오래된 나무가 있었는데, 백인들이 점령하면서 베어버렸다. 작품들은 작가가 일종의 수사관이 되어 사라진 나무를 찾아다니는 과정이다.

    그가 첫 번째로 찾은 것은 레바논 국기에 그려진 백향목이다. 역사적으로 존귀한 나무로 칭송받던 백향목은 레바논 내전으로 지금은 모두 사라진 상태다. 두 번째는 폼페이 베수비오 화산이 터지는 순간을 묘사한 플리니우스의 편지다. 그는 화산 폭발 장면을 소나무에 비유했다. 이처럼 산불, 인간, 해충, 전쟁 등으로 나무들이 점차 사라지면서 지구의 환경이 파괴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박씨는 또 식물성 플랑크톤과 해파리, 엑손 발데스호의 기름 유출 사건, 화산과 지진대, 조승희 사건, 영화 ‘워터 보이’ 등을 활용해 이야기를 엮어가기도 한다.

    박씨의 작품들 속에서는 뭔가가 반복적으로 사라진다. 그 이유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학대와 희생, 트라우마, 욕망, 사랑, 선악 등을 독특한 시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11월4일까지다.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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