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9

2007.11.06

억눌린 ‘아내의 性’케이블 타고 “夜好”!

남편에 대한 잠자리 불만 솔직 토크쇼 ‘인기’ … 은밀한 사연에 시청자들 ‘솔깃’

  •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입력2007-10-31 15:0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억눌린 ‘아내의 性’케이블 타고 “夜好”!

    성교육 전문가 구성애 씨의 ‘사랑의 기술’로 화제가 됐던 ‘박철쇼’.<br>케이블 토크쇼 ‘이 사람을 고발합니다!’(오른쪽)

    ‘일일이 가르쳐야 하는 남편’ ‘술만 마시면 돌변하는 아내’ ‘쇼를 해야 해주는 남편’ ‘엽기 보양식을 먹이는 아내’ ‘관계하다 조는 남편’ ‘할 때마다 돈 받는 아내’ ‘기본이 한 시간인 남편’….

    마치 빨간 딱지가 붙은 코믹물의 제목을 보는 듯 야릇한 상상이 꼬리를 문다. 케이블 TV채널 ‘스토리온’의 토크쇼 ‘이 사람을 고발합니다!’(이하 이사고)에서 다룬 사례들이다. 6월 성인토크쇼를 표방하며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얼마 지나지 않아 케이블 TV에서 인기 잣대로 여겨지는 평균시청률 1%를 넘겼다. 해당 방송사는 성(性)을 주제로 한 탓에 적극적인 홍보도 어려운 상황에서 “이 프로그램이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부부가 출연해 한 명이 배우자의 다소 ‘엽기적인’ 섹스 행각을 고발하면 이를 주제로 MC와 전문가 패널이 이야기를 나누고, 나중에 시청자들의 심판으로 옳고 그름을 가르는 식이다. 마지막에 ‘판결’이라는 제목이 붙긴 하지만, 그보다는 부부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사적이고 은밀한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나눈다는 데 목적이 있다. 이경실 조은숙 표인봉 김현철 등 입담을 자랑하는 연예인들이 자신의 경험을 더해 분위기를 띄우면, 변호사나 성 상담가 등 전문가들이 조언을 곁들이고 ‘부부관계의 팁’도 제공한다.

    신기한 것은 이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모두 실제 커플이며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다. 담당 프로듀서인 서혜승 씨는 “방송 출연 전 호적등본을 받아 실제 부부임을 확인한다”고 했다. 그는 “황당한 사연이 많다 보니 거짓이라고 의심받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 부부의 사연을 소재로 삼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강조했다.

    거짓말 같은 황당·엽기 사연 수두룩



    10월 초 서울 상암동 녹화 현장에서 만난 권문희(31) 씨와 김준일(35) 씨 역시 실제 부부. 이날 “시도 때도 없이 스킨십을 요구하는 남편”을 고발한 아내 권씨는 주부들이 자주 찾는 보조출연자 모집 인터넷 게시판에서 부부 모집 공고를 보고 “남편을 설득해 출연하게 됐다”고 한다. 담당 작가와 만나 사전에 이야기를 나누고 주제를 정했지만, 방송된 내용은 “재연 부분이 다소 과장된 점만 빼면” 자신들의 실제 이야기가 맞다고 한다. 남편 김씨 역시 부부 이야기를 드러내는 데 “큰 거리낌은 없었다”고 말한다.

    “이제는 성이나 부부관계를 마냥 감추고 부끄러워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해요. 공개적으로 유쾌하게 다룰 수 있는 소재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방송 출연에) 부담은 없었죠. 게다가 패널들의 조언도 도움이 돼 유익했고요.”

    보수적인 공중파에선 다루기 어려운 소재지만, 케이블 TV에서 성을 중심으로 다루는 프로그램은 많다. 얼마 전 선정성을 이유로 방송위원회로부터 징계를 받은 ‘현장르포 스캔들’이나 파격 노출로 화제를 모은 ‘이브의 유혹’을 비롯해, 케이블 TV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대다수 프로들은 성과 연관지어 훔쳐보기 심리를 묘하게 버무려놓은 것이 특징이다. ‘이사고’ 역시 남의 사생활 엿보기라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그러나 ‘현장르포 스캔들’ 같은 프로그램이 ‘선데이 서울’이나 스포츠신문의 ‘충격 실화’와 닮았다면, 토크쇼를 표방하는 ‘이사고’는 여성잡지의 중간쯤에 들어간 흑백지면(요즘엔 대부분 컬러지만)을 떠올리게 한다. 스토리온 마케팅팀의 이용우 프로듀서는 이런 특징을 기혼여성을 타깃으로 한 채널의 특성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여성들의 수다를 옮겨놓은 듯한 분위기를 지향한다. 다른 케이블 TV 채널에서는 음지의 성을 다루지만 우리는 부부가 함께 행복한 ‘양지의 성’을 이야기하려고 노력한다.”

    사실 ‘이사고’의 원조는 같은 채널에서 방영 중인 토크쇼 ‘박철쇼’의 한 코너였던 ‘사랑의 기술’이다. 소재 고갈로 코너가 끝난 지금도 종종 재방송되는 ‘사랑의 기술’은 성교육 전문가 구성애 씨가 출연해 ‘철’s 패밀리’라 불리는 20~40대 주부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성교육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철’s 패밀리’는 ‘성감대’ ‘선호하는 체위’ ‘오르가슴 경험’ 등 거침없는 토크를 선보였고, 성 정보에 목말랐던(!) 여성 시청자들과 섹스리스 부부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케이블 TV 한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섹스 테라피 프로그램은 인기 있는 트렌드 가운데 하나다. ‘사랑의 기술’이나 ‘이사고’ 역시 그런 특성을 부분적으로 이용한 예”라고 분석했다.

    “관음증 부추긴다” 비판도

    억눌린 ‘아내의 性’케이블 타고 “夜好”!

    영화 ‘어깨너머의 연인’.

    한편 여기에는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대세’인 ‘여성의 욕망’도 크게 작용한다. 물론 여성의 성과 사랑을 주제로 한 ‘섹스 앤 더 시티’ 류의 드라마나 영화는 지겨울 만큼 나왔고, 현재도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한동안 그 주인공이 미혼여성에 한정돼 있었다면, 최근에는 기혼여성으로 옮겨왔다는 점이 다르다.

    한 예로 올해 개봉한 ‘바람피기 좋은 날’ ‘두 번째 사랑’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어깨너머의 연인’ 등의 영화에서 기혼여성들은 솔직하게 욕망을 표현하고, 때론 가볍게 바람도 피운다. 그리고 “처음 드러내기가 어렵지 한번 드러내면 무서울 것 없는” 기혼여성, 아줌마의 욕망은 아가씨들의 그것보다 강도가 세게 마련이다.

    이렇듯 사회 전반적으로 기혼여성의 욕망을 인정하는 분위기에서 TV를 무대로 한 아줌마들의 성 토크는 더욱 풍성하고 활발해질 전망이다. ‘이사고’와 유사한 ‘위자료 청구소송’도 인기를 끌고 있으며, ‘박철쇼’도 예전처럼 다시 성과 관련된 부분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또 최근에는 남성에 대한 여성 토크쇼 ‘수컷의 발견’, 연상연하 커플을 다룬 ‘애완남 키우기, 나는 펫’ 같은 프로그램도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이사고’ 등의 프로그램 게시판에는 “덕분에 재미있었고 배운 점도 많다”는 아줌마 시청자들의 감상평이 자주 보인다. “관음증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없진 않지만, 그만큼 이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들이 많아졌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아저씨들의 반응은 어떨까. 보통은 다음 네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무슨 저런 저질 프로그램이 있냐”라는 식으로 점잖게 혐오 반응을 보이다가, 아내와 함께 보면서 슬슬 빠지게 되고, 타인의 사례를 직접 적용해보며 발전하는(!) 관계로 나아가다가, 너무 앞서가는 아내 때문에 걱정하게 된다는 것. 이 글을 읽는 아저씨들은 어떠실지….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