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6

2007.10.16

대형사건 뒤엔 언제나 ‘불똥의 법칙’

정윤재 사건으로 부산 건설업체들 휘청 신정아 사건으로 영배 스님·박문순 관장 대략난감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07-10-10 15: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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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사건 뒤엔 언제나 ‘불똥의 법칙’

    각종 의혹의 주인공들. 변양균 전 대통령 정책실장,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 정윤재 전 대통령 의전비서관,<br>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왼쪽부터).

    뇌물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정윤재(44) 전 대통령 의전비서관. 그의 홈페이지에 소개된 자서전 ‘정윤재의 젊은 도전’에는 대학 시절 자신의 모습과 관련해 이런 글이 담겨 있다.

    ‘그래도 나는 절대 감옥을 가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러나 대학 시절 다짐과 달리 그는 지금 ‘교도소 담장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자칫 헛짚었다간 나락으로 떨어질 상황이다. 억울하다며 울어도 보고 언론을 상대로 소송도 해보지만 그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이미 차갑게 얼어붙었다.

    건설업자 김상진(42) 씨와의 유착 의혹을 받고 있는 정윤재 사건은 아직 미궁 속이다. 40일 넘게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속 시원히 밝혀진 것은 거의 없다. 언론은 물방망이니 부실수사니 하는 표현을 동원해가며 검찰의 속을 긁어대고 있다.

    그 와중에 정 전 비서관 사건의 불똥은 여러 곳으로 튀었다. 당장 그가 몸담았던 봉사단체가 압수수색을 당했고 그의 가족과 지인들, 친분이 있는 부산지역 정·재계 인사들은 ‘꼼짝 마’ 상태다.



    특히 부산지역 건설업체들은 유탄에 휘청거린다. 부산에서 진행된 5~6건의 재개발사업 전반에 대해 검찰을 비롯한 사정기관들이 칼을 벼리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건설업체들을 집중 조사해온 ‘조세검찰’ 국세청까지 부산을 주목하며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이미 검찰과 국세청 주변에서는 “그동안 부산-경남지역 건설업계에서 제기됐던 각종 비리 의혹을 이참에 모두 조사한다”는 말도 솔솔 흘러나온다. 검찰 핵심 관계자의 말이다.

    피해자 측 참고인으로 출발했다 ‘피의자’로 바뀔 수도

    “부산지역 건설업계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가 불가피하다. 김상진 씨 형제의 재개발 로비 의혹이 핵심이지만, 지역 건설업계의 고질적인 병폐로 보는 시각이 많다. 특히 지난 2~3년간 부산지역 재개발사업을 싹쓸이해온 건설업체 두세 곳이 집중 조사 대상이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부산은 이른바 건설업계의 ‘블루오션’이었다. 정권 핵심 인사들의 둥지이자 ‘상대적으로 미개척지’라는 점이 군침을 돌게 했다. 때맞춰 땅값도 들썩여 이 지역 건설업체들을 부추겼다. 정치권 로비 같은 정·재계 유착은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이었다. 부산 출신의 여권 한 고위관계자는 “정 전 비서관 사건 이후 부산지역 정치인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검찰이 여론의 비판을 벗기 위해 무리한 수사를 계속한다고 하지만, 각자의 속사정을 누가 알겠나. 비슷한 일이 또 벌어지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학력위조 사건으로 시작된 ‘변양균-신정아 스캔들’도 이제 두 사람의 관계를 넘어 끝이 어딘지 모를 긴 항해를 시작했다. 변 전 실장은 이미 사건의 중심축에서 비켜난 느낌이고 이 자리를 동국대 이사장인 영배 스님과 장윤 스님 등이 대신하고 있다. 사건 초기 ‘피해자’였던 두 스님이 의혹의 핵심으로 변해가는 모습도 흥미롭지만, 흥덕사와 전등사에 대한 국고 지원 사실을 놓고 두 사람이 벌이는 진실게임에 국민의 혼란감은 갈수록 커지는 느낌이다. 피해자 측 참고인으로 출발한 이들의 신분은 머지않은 장래에 ‘핵심 관계자’ 또는 ‘피의자’로 바뀔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게 요즘 여론 흐름이다.

    ‘신정아 유탄’을 맞은 사람은 이들 둘만이 아니다. 신씨가 큐레이터로 일했던 성곡미술관의 박문순 관장은 졸지에 ‘비자금 관리인’이 돼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신씨에게 1000만원이 넘는 보석을 선물하고 오피스텔 보증금을 내준 박 관장의 집에서 60억여 원이 발견됐기 때문. 아직 누구 돈인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신씨 명의를 빌려 개인금고에 보관해왔다는 억대의 자금 출처도 여전히 남아 있는 궁금증이다.

    일단 수면 밑으로 가라앉는 듯하던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도곡동 땅 의혹도 최근 다시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번에 ‘폭탄’이 터진 곳은 도곡동이 아닌 국회다.

    추석 직전인 9월22일, 이 후보의 도곡동 땅 의혹을 수사해온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관련 부처 공무원을 통해 산업단지 내 토지를 불하받게 해주겠다며 부동산 개발업자에게서 거액을 받은 혐의로 대통합민주신당 소속 국회 전문위원인 K씨를 구속했다.

    민주당 출신인 그는 지난해 10월 부동산 개발업자에게서 “산업자원부가 산하 공단을 통해 관리하고 있는 서울 구로구 디지털단지 안에 있는 창고 터를 담당 공무원에게 부탁해 수의계약으로 불하받게 해달라”는 청탁을 받고, 수차례에 걸쳐 경비조로 92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사업이 성공할 경우 17억원을 추가로 받기로 했다는 게 검찰의 설명.

    문제의 K씨는 지난해 8월 행정자치부 전산망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 처남인 김재정 씨의 부동산 자료를 열람한 국정원 직원 고모 씨(5급)에게 이 후보의 부동산 비리 첩보를 제공한 혐의로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던 인물이다. 서울시내 구청장들과의 모임에서 첩보를 입수한 그는 최근까지 여권의 ‘이명박 죽이기’를 주도한 핵심인물로 알려져 있다. 검찰은 이 후보의 도곡동 땅 문제와 관련된 사람들의 e메일과 금융계좌를 추적하던 중 이 같은 비위 단서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쯤 되자 특검법안까지 제출하며 이 후보를 압박해온 신당에 빨간 불이 켜졌다. 사실상 의혹을 주도해온 핵심인사가 구속되면서 혼란에 빠진 것. 실제 특검법안이 제출된 9월21일 이후 신당 측은 이 후보의 부동산 의혹에 대한 공개적인 언급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자신들이 제출한 특검법안의 처리과정에도 관심이 없어 보일 정도다.

    국회 전문위원 K씨 구속 후 이명박 도곡동 땅 의혹 다시 도마에

    신당 주변에선 당직자의 구속사건이 자칫 신당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을 우려해 부랴부랴 특검법안을 제출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공교롭게도 특검법안이 제출된 날과 당직자 구속일이 같다는 점이 궁금증을 부풀린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번 국정감사에서 이 후보를 철저히 검증하겠다는 계획에 막대한 차질이 생겼다. 계획대로라면 국정감사에서 이 후보 문제를 충분히 거론한 다음 특검으로 넘겼어야 했는데, 조기에 (특검)법안을 제출하면서 국정감사에서 이 후보를 검증하는 작업은 사실상 어렵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대형 폭탄이 터진 곳에서 예기치 않은 유탄을 맞고 쓰러진 이들은 물론 직간접적으로 이들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이들이 사건 수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이 빚어내는 혼란의 와중에 사건 초기의 핵심 당사자들은 도망갈 구멍을 찾고 있다. 신정아 씨와 변양균 전 실장, 정윤재 전 비서관, 이명박 후보가 모두 마찬가지다. 검찰 칼날의 향방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요지경 세상 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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