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3

2007.09.18

적당한 고통을 즐기는 여유

  • 최광진 미술학 박사·理美知 미술연구소장

    입력2007-09-12 18: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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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당한 고통을 즐기는 여유

    인상파라는 명칭이 붙게 된 모네의 ‘해돋이 인상’, 1872

    우리 몸은 사용하지 않으면 굳어지고 경화의 정도가 심할수록 생명력은 약해진다.

    운동이나 요가는 평상시 잘 쓰지 않는 근육을 사용함으로써 몸에 활기를 주는데, 이때 약간의 고통이 수반된다. 편안함의 지속은 경화를 진행시키고, 감당할 만한 고통은 보약처럼 몸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이다.

    우리의 정신 역시 쓰지 않으면 퇴화하기는 마찬가지다. 미술을 요가처럼 퇴화한 정신을 자극함으로써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도구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미술과의 즐거운 게임이 시작된다. 미술이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 모두에게 필요한 이유는 인간 사고의 미개척지를 개발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이때 적당한 고통이 뒤따르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문제는 고통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태도다.

    외국어를 배울 때도 마찬가지지만, 현대미술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역시 많이 보고 익숙해져야 한다.

    즉, ‘적당히’ 어렵다고 생각되는 작품을 거실에 걸어놓고 몇 개월 보다 보면 내부에 코드가 생겨 다른 곳에서 비슷한 작품 경향을 보더라도 친근하고 편안해진다. 그럼 약간 어려워 보이는 작품으로 교체해주고 다시 몇 개월을 감상하면 똑같은 효과를 경험할 수 있다. 처음에는 난해하더라도 요가처럼 ‘적당한 고통을 즐기는 여유’만이 현대미술의 바다에서 수영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오늘날 우리가 열광하는 모네의 인상주의 작품들도 처음에는 임산부는 보지 말라고 말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이때 혼돈은 또 다른 차원의 질서에 근거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 새로운 질서를 읽어내는 데는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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