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5

2007.07.24

마른하늘에 ‘구름씨’를 뿌려라

인공강우 만드는 ‘레인메이커’ 맹활약 … 구름 입자 뭉치는 응결핵이 핵심 원리

  • 김정훈 동아사이언스 기자 navikim@donga.com

    입력2007-07-18 14: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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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른하늘에 ‘구름씨’를 뿌려라

    러시아 공군이 5월9일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린 전승기념일 행사를 앞두고 먹구름을 걷어내는 신기술을 선보였다. 군사 퍼레이드가 시작될 붉은광장에 햇빛이 비치도록 하기 위해 오전 8시30분부터 행사장 서쪽 50∼100km 상공에서 항공기 12대를 동원해 구름 속에 요오드화은, 얼음알갱이, 액화질소 등 인공강우 촉매제를 뿌렸다. 행사가 열리기 전 하늘은 먹구름이 가득했으나 먹구름 분산 작전` 뒤 말끔히 갰다.

    ‘레인메이커(rainmaker)’는 ‘행운을 부르는 사람’ ‘특정 분야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런데 원래 레인메이커는 가뭄이 들었을 때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는 아메리카 인디언 주술사를 일컫는 말이었다.

    레인메이커가 행운과 영향력의 상징이 된 것은 인디언 주술사들이 지내는 기우제가 100% 확률로 비를 내리게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들은 한번 기우제를 시작하면 황당하게도 ‘비가 올 때까지’ 계속했다. 이들의 기우제가 100% 성공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현대에 와서 레인메이커는 또 다른 뜻으로도 쓰인다. 비가 내리지 않는 곳에서 비를 만들어내는 인공강우 전문가를 레인메이커라고 하는 것이다.

    中 랴오닝성 56년 만의 가뭄 해갈

    레인메이커들의 활약 덕분에 6월27~28일 중국 랴오닝성에 비가 내렸다. 56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가뭄을 해갈한 단비였다. 랴오닝성 기상 당국자는 “인공강우용 로켓 1500발을 발사해 2억8300만t의 비가 내리게 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1차 인공강우로 해갈이 되지 않자, 기상당국은 같은 달 30일 2차 인공강우를 실시했다. 항공기를 3대 동원하고 로켓 681발을 발사해 5억2500만t의 비를 내리게 했던 것.

    8억t이 넘는 이번 인공강우 계획은 사상 최대 규모였다. 이는 경기도 전체에 50mm의 비가 내린 것과 맞먹는 양이다. 중국은 이미 50년 전부터 인공강우를 연구해왔다. 2000개 현(縣) 단위 행정구역에 인공강우를 유도하는 장치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공강우가 최초로 성공한 것은 1946년이다.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사 빈센트 셰퍼 박사는 안개로 가득 찬 냉동고에 드라이아이스 파편을 떨어뜨리면 작은 얼음결정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여기에 착안한 그는 실제 구름에 드라이아이스를 뿌리면 눈(얼음결정)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해 11월13일 그는 비행기를 타고 매사추세츠주 바크처 산맥 4000km 높이에 올라가 구름에 드라이아이스를 뿌렸다. 5분 뒤 구름은 눈송이로 변해 땅으로 떨어졌다.

    어떤 원리로 비가 내리게 할 수 있을까. 먼저 자연 상태에서 비가 내리는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구름은 20μm(마이크로미터, 1μm는 100만분의 1m) 지름의 아주 작은 물방울인 ‘구름 입자’로 이뤄져 있다. 구름 입자는 아래로 잡아당기는 중력보다 위로 띄우는 부력이 더 크기 때문에 하늘에 떠 있을 수 있다.

    구름 입자가 땅으로 떨어지려면 중력이 부력보다 커야 한다. 보통 구름 입자 100만 개 이상이 합쳐져 지름 2mm의 빗방울이나 1~10cm의 눈송이가 되면 중력이 부력보다 커져 땅으로 떨어진다. 계산에 따르면 순수한 구름 입자만으로 빗방울이나 눈송이가 되려면 습도가 400% 이상이어야 한다. 구름 입자만으로는 비가 내리기 힘들다는 뜻이다.

    그러나 습도가 100%만 돼도 비가 내릴 수 있다. 구름 입자가 뭉치는 데 도움을 주는 물질이 구름 속에 들어 있으면 된다. 먼지, 연기, 배기가스 등 약 0.1mm 크기의 작은 입자들이 구름 입자가 뭉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들 입자를 응결핵 또는 빙정핵이라 부른다.

    마른하늘에 ‘구름씨’를 뿌려라
    인공강우의 핵심 원리는 바로 응결핵과 빙정핵 구실을 하는 ‘구름씨’를 뿌림으로써 구름이 비를 내리도록 돕는 것이다. 구름씨를 뿌리기 위해 항공기나 로켓이 동원되며, 구름의 종류와 대기 상태에 따라 사용되는 구름씨가 다르다.

    높은 구름은 꼭대기 부분의 구름 입자가 얼음 상태로 존재한다. 이런 구름에는 요오드화은과 드라이아이스를 많이 사용한다. 요오드화은을 태우면 작은 입자가 생기는데, 이것이 영하 4~6℃의 구름에서 빙정핵 구실을 한다. 드라이아이스 조각은 영하 10℃의 구름에서 구름 입자를 빙결시켜 응결핵이 되도록 활성화한다.

    낮은 구름은 다르다. 낮은 구름은 꼭대기의 구름 입자도 얼어 있지 않다. 이때는 염화나트륨, 염화칼륨, 요소 같은 흡습성 물질을 사용한다. 이들이 뿌려지면 주변의 물방울이 달라붙고, 한번 커지기 시작한 물방울은 비탈길에 굴리는 눈덩이처럼 순식간에 커져 비가 된다.

    경제효과 낮아 철저한 계획 필요

    마른하늘에 ‘구름씨’를 뿌려라

    우리나라에서도 인공강우 실험을 한 적이 있다. 2001년 6월 경남 창녕 일대 상공에서 기상청 직원들이 공군 수송기 안에서 요오드화은을 구름에 뿌리고 있다.

    인공강우에 성공했다고 비를 다스리게 된 것은 아니다. 인공강우는 수증기를 포함하고 있는 적절한 구름이 있어야 한다.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는 사막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뜻이다. 또 지금까지 통계자료를 보면, 인공강우의 효과는 강우량을 10~20% 증가시키는 정도에 그친다. 막대한 예산이 드는 데 비해 인공강우의 효과는 높은 편이 아니다.

    기상연구소 원격탐사연구실의 장기호 연구원은 “실제 가뭄이 들었을 때는 날이 건조해 인공강우에 성공하기 어렵다”면서 이벤트 행사처럼 생각하는 것을 경계했다. 장 연구원은 “오히려 인공강우는 전선에서 실시해 내리는 비를 더 많이 내리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 연중 댐 근처에 적절한 구름이 지날 때마다 시행해 물을 확보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공강우 기술은 먹구름을 없애는 데도 쓰인다. 5월9일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전승기념일 행사가 열리기로 했다. 그런데 모스크바 하늘에 짙게 드리운 먹구름으로 인해 자칫 행사를 망칠 수도 있었다. 러시아 공군은 항공기 12대를 동원해 모스크바 상공에 구름씨를 뿌렸다. 아예 비를 내리게 해 먹구름을 없애겠다는 것이었다. 퍼레이드가 시작된 지 30분 만에 거짓말처럼 푸른 하늘이 얼굴을 내밀었다.

    미래에는 전기장을 이용해 하늘에 구름을 만들어 비가 내리게 하는 기술이 개발될 전망이다. 미국 항공우주국은 대기에 떠 있는 수많은 입자들을 전기장으로 교란해 수증기를 끌어모으는 방법으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비를 내리게 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레인메이커의 전설은 현대과학의 도움을 받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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