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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왕국, 쿠시 신비를 벗겨라!

나일강변서 기원전 번성 강력한 고대국가 … 댐 건설 중 우연히 발견 고고학계 발굴 열풍

  • 전원경 작가 winnejeon@hotmail.com

전설의 왕국, 쿠시 신비를 벗겨라!

전설의 왕국, 쿠시 신비를 벗겨라!

아스완하이댐 건설로 생겨난 이집트 나일강 계곡의 나세르호. 수단이 건설 중인 메로위댐이 완공되면 역시 인공호수가 생겨나 쿠시 유적지 상당수가 수몰된다.

여름의 나일강변에서는 고고학자들의 때 아닌 ‘국제 레이스’가 벌어지고 있다. 나일강 남단, 수단의 수도 카르툼에서 북쪽으로 360km 떨어진 호쉬 엘-게르프 지역에서 미국 시카고대학 발굴팀, 영국 대영박물관팀, 폴란드 그단스크박물관팀, 독일과 헝가리의 발굴팀이 무더위를 잊은 채 발굴에 열중하고 있는 것이다.

각국 고고학자들이 결사적으로 발굴 경쟁을 벌이는 대상은 잊힌 고대왕국 ‘쿠시(Kush)’의 유적이다. 쿠시는 기원전 2000년경 이집트 남쪽, 현재의 수단 영토에서 번성했던 왕국이다. 학자들은 쿠시 유적을 통해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외에 새로운 고대국가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우리 귀에는 낯설게만 들리는 쿠시는 어떤 왕국이었을까. 학자들은 쿠시가 나일강 연안을 따라 1200km에 이르는 영토를 점령했으며, 기원전 1600년경 멸망할 때까지 500년 넘게 번성했다고 말한다.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이웃한 이집트 누비아 등을 제치고 아프리카 대륙의 맹주 구실을 했다는 것이다. 일설에 따르면 쿠시를 세운 민족은 누비아인이며, 한때 쿠시인은 이집트 왕위를 계승하기도 했다고 한다.

아프리카 맹주 현재의 수단 영토

현재 호쉬 엘-게르프 지역에 집중된 쿠시 유적지만 해도 수백 곳이 넘는데, 사실 이 유적지들은 댐 공사를 벌이다 우연히 발견됐다. 2003년 수단 정부 요청으로 맨 처음 쿠시 발굴에 뛰어든 폴란드의 그단스크박물관팀은 그해에만 쿠시 유적지 711곳을 답사했다. 엄청난 규모에 놀란 그단스크박물관팀은 미국 시카고대학 동방연구소발굴팀에 지원을 요청했다.



발굴 현장에 모인 각국 고고학자는 쿠시 유적지에 대해 ‘고고학의 보고(寶庫)’라고 입을 모은다. “이 지역은 놀라운 고대 보물들이 쌓여 있는 곳입니다.” 영국 대영박물관 발굴팀 데렉 웰스비의 말이다. “고대왕국 쿠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정치적, 군사적으로 훨씬 강력한 국가였던 것이 분명합니다.” 시카고대학 발굴팀의 리더 제프 엠벌링 박사도 거든다. “쿠시 유적을 발굴함으로써 우리는 고대국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전설의 왕국, 쿠시 신비를 벗겨라!

이집트의 아부심벨 신전. 미스터리 고대왕국 쿠시도 이 같은 거대 건축물을 보유했을지 여부가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각국 학자들이 더위도 잊고 나일강 유역에서 발굴 경쟁을 벌이는 데는 또 다른 현실적 이유가 있다. 수단은 현재 프랑스 독일 중국 등의 도움을 받아 나일강에 메로위댐을 건설하고 있다. 이 댐이 완공되면 호쉬 엘-카르프 지역에 거대한 호수가 생기고 마나쉬르, 루바탑 등 인근 부족 5만여 명이 삶의 터전을 잃게 된다. 즉 유적지가 수몰되는 것이다. 각국 발굴팀이 쿠시 유적을 발굴할 수 있는 시간은 올해뿐이다. 이 때문에 발굴팀들은 더위도 잊은 채 쿠시의 흔적을 찾아 나일강변을 헤집고 다니는 것이다.

하지만 쿠시인은 이집트인과 달리 고유 문자를 만들지 못했다. 쿠시에 대한 기록은 이집트인이 자신들의 이웃 국가에 남긴 것이 전부다. 쿠시가 베일에 싸인 신비의 왕국인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고대 이집트인의 기록 중에서 특히 시선을 끄는 부분이 있다. “쿠시에는 금이 많다!” 놀랍게도 쿠시의 주요 수출품은 황금이었다. 쿠시는 이집트와의 금 교역으로 부를 축적했다고 한다. 나일강변에서 발굴되는 쿠시 유적들도 이 같은 기록을 뒷받침한다. 올해 초 시카고대학 발굴팀은 호쉬 엘-게르프 지역에서 금 가공용 숫돌 55개와 금을 가공한 공장터들을 찾아냈다. 이는 쿠시인의 금 가공 실력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려주는 증거다. “숫돌에 원석을 갈아 금을 연마하는 방식은 현재도 금 세공업자들이 사용하는 전통적인 가공 방식입니다.” 시카고대학 발굴팀 일원인 브루스 윌리엄스의 설명이다.

학자들은 쿠시와 현재 카르툼 지역에 있던 국가 케르마와의 연관성을 밝혀내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시카고대학 발굴팀은 호쉬 엘-카르프 지역에서 90여 기의 무덤이 있는 공동묘지터를 발굴, 그중 30여 기의 무덤을 조사했다. 이 묘지는 당시 상류층이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시카고대학 발굴팀이 조사한 무덤 30여 기는 대부분 사각형 묘혈인데, 이는 케르마의 무덤 형태와 똑같다. 게다가 무덤 안에서는 케르마에서 만든 단지와 이집트산 보석들이 출토됐다. 이 때문에 쿠시 왕국의 주요 도시 중 하나가 케르마였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런데 쿠시 유적 중에는 이집트의 아부 심벨 신전처럼 거대한 석조 조각들이 없다. 학자들이 의문시하는 부분이다. 이집트를 능가하는 금 세공기술을 가지고 있었다면 거대한 조각상들을 만들어낼 기술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실제로 쿠시 유적에서 발견된 숫돌 중에는 큰 조각물을 만들기 위한 연장으로 보이는 것들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발굴 지역 내년 이맘때 물에 잠길 듯

21세기 들어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됐다고는 하지만, 이 나라에 대해 밝혀지지 않은 점은 여전히 많다. 기원전 1600년경 멸망한 이후, 쿠시의 존재는 3000년 이상 베일에 싸여 있었다. 학자들은 사하라 이남 지역을 지배한 최초의 고대국가 쿠시가 어떻게 강력한 왕국으로 성장했는지, 어떤 형식의 지배체제를 구축했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표현대로라면 쿠시는 ‘오랜 시간 역사의 변방에 머물러 있었던, 반쯤은 미스터리고 반쯤은 전설인 나라’다.

쿠시는 어떻게 다른 문명들과 동떨어진 지역에서 홀로 고대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고도의 금 세공기술을 가질 수 있었던 쿠시의 야금술은 어디서 전래한 것일까? 문자 시스템이나 관료제도, 도시 등이 없는 상태에서도 고대국가 형성이 가능했을까? 아니면 쿠시는 그 모든 체제를 갖추고 있었으며, 단지 학자들이 그 증거를 아직까지 찾지 못한 것일까?

호쉬 엘-카르프 지역은 내년 이맘때면 물에 잠긴다. 각국 발굴팀은 2008년부터는 나일강 유역이 아닌 수단 내륙지역으로 발굴지를 옮겨 쿠시에 대한 조사를 계속해나갈 예정이다. 핵심 지역인 호쉬 엘-카르프를 발굴할 수 있는 시간은 이제 겨우 반년뿐이다. 황금의 국가 쿠시는 많은 비밀을 간직한 채, 물속에 잠긴 ‘전설의 왕국’으로 사라져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주간동아 2007.07.24 595호 (p56~57)

전원경 작가 winnejeo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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