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5

2007.07.24

철밥통으론 부족? 신의 직장 꿈꾸는가

단체교섭 무리한 요구사항 수두룩 노동계 인사들도 공감 못하는 경우 많아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입력2007-07-18 10:0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철밥통으론 부족? 신의 직장 꿈꾸는가

    7월5일 서울 정부중앙청사 대회의실에서 정부와 공노총 간 단체교섭에서 정부 측 교섭대표인 행정자치부 박명재 장관(맨 오른쪽)이 심각한 표정으로 공노총 박성철 공동위원장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모든 공무원의 정년을 직급에 관계없이 60세로 평등화’ ‘6급 이하로 55세 이상 20년 이상 경력 공무원에게 월 5만원 원로수당 지급’ ‘퇴직 예정 공무원 공로보상 차원에서 국내외 문화유적지 시찰에 필요한 경비 500만원 지급’ ‘출산휴가 현행 90일에서 180일로 확대’ ‘육아휴직 수당 4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인상’ ‘공무원연금 연내 개정 논의 중단’ ‘성과상여금제 폐지하고 기본급으로 전환’ ‘고시제도 폐지’….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공동위원장 박성철 김찬균·이하 공노총)이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갖는 정부 측과의 단체교섭에서 내건 요구사항 중 일부다. 공노총에 따르면 산하 조합원은 12만여 명, 가입 노조는 50여 개다(2007년 7월 현재). 지난해 1월 공무원노동조합으로선 유일하게 합법화된 공노총은 현행법상 법외노조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계열인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과는 별개 조직이다.

    “362개 사항 중 187개 단체교섭 비대상”

    공노총 산하 39개 공무원노조(노조 명단 참조)로 구성된 이번 단체교섭 공동협상단엔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의 공무원노조와 교육기관 행정직·기능직 노조 등이 참여하고 있다. 공동협상단은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에 의거, 임금수준의 공기업화 등을 골자로 한 단체교섭 요구안을 6월 정부 측에 제시한 뒤 7월5일 본교섭 상견례를 갖고 협상에 들어갔다.

    하지만 7월9일 열기로 한 첫 실무교섭이 정부 측 실무교섭 위원들을 국장급으로 구성해달라는 공노총의 요구를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자 공노총 실무교섭 위원들이 불참해 7월11일 현재 연기 중인 상태. 교섭은 조만간 다시 시작될 예정이다. 공노총과의 단체교섭에서 정부 측은 행정자치부를 비롯해 기획예산처, 중앙인사위원회, 교육인적자원부 등이 관련 부처로 참여하고 있다.



    이번 단체교섭의 가장 큰 문제는 공노총의 요구사항 중 상당 부분이 행정부 재량을 넘어 관련 법 개정이나 예산 확보가 전제되지 않고는 실현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이다(요구사항 주요 내용 참조). 이 때문에 가뜩이나 정년 보장과 안정적인 연금 등 민간기업 종사자들에 비해 월등한 신분보장과 혜택을 누려 젊은 세대의 ‘최고 선망 직업’으로 떠오른 공무원들의 요구가 과도하다는 지적이 줄을 잇고 있다. 공노총이 정부 측에 내놓은 ‘단체교섭 요구사항’은 전문 350개조(條)와 부칙 12개조 등 모두 362개조로 이뤄져 있다(주요 요구사항을 제외한 나머지는 22~23쪽 기사 참조).

    이를 의식해서인지 정부 측은 공노총의 362개 요구사항 중 정년 평등화, 공무원연금 문제 등 187개 항목에 대해선 단체교섭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뜻을 공노총에 비친 바 있고, 이에 공노총은 자체 법률자문단의 자문을 받는 중이다.

    공노총의 대(對)정부 예비교섭 대표위원을 거쳐 현재 본교섭 간사인 공노총 채길성 수석부위원장은 “362개 요구사항은 이번이 사상 첫 단체교섭이라는 점을 고려해 39개 노조의 요구를 모두 수렴한 것이다. 정부 측이 이중 187개에 대해 일방적으로 ‘비교섭 의제’라고 주장하지만, 그렇더라도 일반행정·보수·인사·교육 등 7개 분과위원회별로 진행될 본격적인 교섭 국면에서 의제로 다뤄질 수 있게 매진하겠다”며 “공노총의 원칙적인 견해는 362개 요구사항 전부를 교섭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정년 평등화·출산휴가 연장 등 현실과 동떨어져

    공노총은 7월5일 대정부 단체교섭 전략지침 회의를 갖고, 교섭위원들에게 여름휴가를 교섭기간 이후로 연기하고 같은 기간 해외출장과 교육도 보류하라는 지침까지 내리는 등 이번 교섭에 총력을 기울일 태세다.

    정부 측도 이번 단체교섭의 결과가 공무원노조와의 최초 교섭 선례로 남게 된다는 점에서 무척 조심스러워하는 눈치다. 행정자치부 노사협력관실 교섭협력팀 조현기 사무관은 “362개 요구사항 중 무리한 부분이 있다는 점은 공노총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공노총이 따가운 국민정서와 여론을 감안해 향후 현명한 판단을 하리라 본다”고 말했다.

    공노총의 단체교섭 요구사항들에 대한 각계의 속내는 어떨까.

    지난해부터 한국노동연구원 주최로 공노총, 관련 학계, 정부당국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공무원 노사관계 포럼’을 주도해온 한국노동연구원 배규식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공노총의 요구사항 가운데 무리한 것이 꽤 있다. ‘원로수당’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으며, 정년 평등화나 출산휴가 180일 확대 등은 민간부문과 연동해서 추진돼야 할 사안”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배 본부장은 이어 “공노총의 성향은 법외노조인 전공노에 비해 온건하지만, 그만큼 상대적으로 실리적 경향이 강하다”며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공노총이든 정부든 공무원 노사관계에 대한 인식이 크게 낮아 자칫하면 양자간에 일부 쟁점사항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을 소지도 있으므로 교섭에 신중을 기해 합리적인 선례를 남겨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공노총의 단체교섭은 사실상 공무원조직 전체를 대표하는 성격을 지닌 만큼, 그 타결과정이 어떻든 교섭의 합의사항이 공무원사회 전반은 물론 민간기업 노사관계에까지 끼칠 영향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50세 이상 고령자라는 이유만으로도 명예퇴직을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민간기업의 월급쟁이들에게 공노총의 요구사항은 과도한 것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한동률 노동복지팀장의 지적이다.

    “공노총의 요구사항엔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너무 많다. 대충 협상테이블에 던져놓고 보자는 무성의한 분위기에서 만들어진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떨치기 힘들다. 우선 각종 수당 신설은 급여체계를 명확히 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공노총이 폐지하자는 성과급도 성과에 따른 보상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반드시 필요한 제도다. 출산휴가는 법적으로 이미 90일이 보장돼 있는데 180일로 연장하자는 건 관련 법 개정 없인 불가능하지 않은가. 또한 기업들의 경우 사무직 정년이 평균 55~58세인데, 사실상 이마저 제대로 채우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도 직업 안정성이 뛰어난 공무원들이 정년을 60세까지 일률적으로 평등화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것 같다.”

    8월까지 실무교섭 후 9월까지 협약 체결 목표

    한 팀장은 “기업노조의 경우 다소 과한 요구를 할 때는 있어도 공노총처럼 단체교섭의 진정성마저 의심케 할 정도로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는 사례는 본 적이 없다”며 “공노총의 이번 단체교섭 요구안이 7~8월에 정점을 이룰 민간기업 노조들의 하투(夏鬪)에 악재로 작용하는 등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공노총의 일부 과도한 요구사항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노동계 인사도 적지 않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 오래 몸담아온 한 노동운동가는 “‘2007년 기본급 4.7% 인상’ 요구는 물가상승률과 경제성장률을 고려할 때 무리가 없어 보인다. ‘민원창구 수당 10만원으로 인상’도 민원업무의 어려움과 서비스 개선 기대라는 측면에선 바람직하다고 본다”면서도 “공노총이 정부와의 첫 단체교섭에서부터 ‘원로수당’ ‘문화유적지 시찰 경비’ 지급 등을 요구하는 건 노동운동의 관점에서 볼 때 공노총 스스로를 희화화(戱畵化)하는 감이 없지 않다”고 꼬집었다.

    어쨌든 공노총과 정부 양측은 8월 말까지 실무교섭을 마무리한 뒤 정기국회가 시작되는 9월까지 단체협약을 체결한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공직사회가 역량을 갖고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려면 임금이 민간 대기업 수준은 아니더라도 공기업 수준은 돼야 한다.”(공노총 박성철 공동위원장)

    과연 그런가? 안 그래도 ‘공무원 천국’인 대한민국에서 ‘철밥통’이라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한술 더 떠 ‘신이 내린 직장’을 꿈꾸는 공노총의 바람. 그 실현의 열쇠를 쥔 주체는 국민을 대신해 협상에 나선 정부가 아니다.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공복(公僕)의 원칙적 사용자인 국민이다.

    ▼ 공노총의 2007년 단체교섭 공동 요구안 중 주요 내용
    보수·수당 부분
    ● 공무원 보수 단계적으로 공기업 수준으로 현실화

    ● 2007년 기본급 4.7% 인상

    ● 민원창구 수당 10만원으로 인상

    ● 6급 이하로 55세 이상 20년 이상 경력 공무원 월 5만원 원로수당 지급

    ● 대도시 근무자 월 5만원 생계수당 지급

    ● 직영 급식학교에서 원활한 학교급식 제공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교장,

    행정실장, 영양사, 행정직원을 위해 급식업무 수당 지급

    ● 육아휴직 수당 4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인상
    제도개선 부분
    ● 전공노 등 법외노조 탄압 금지

    ● 부패다발 고위간부직 특별관리

    ● 공무원연금 연내 개정 중단

    ● 공무원연금의 퇴직·현직자 기득권 침해 금지

    ● 공무원연금 정부 부담률 25% 이상 상향조정

    ● 중앙부처 복수직급제 폐지, 직급 하향조정을 통한 인건비 예산 절약

    ● 출장여비 부서경비 전용 방지 위해 당사자 계좌 입금

    ●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 현장 공무원 수 OECD 수준으로 증원

    ● 여권발급기관 기초단체까지 확대

    ● 공공부문 아파트 원가공개

    ● 해외유학, 근무자 선발 시 6급 이하 공무원에게도 기회가

    오도록 직급·연령 제한 폐지, 공개경쟁 선발

    ● 4급 이하 계급구조 폐지

    ● 고시제 폐지

    ● 여성간부 10% 이상 할당

    ● 학교 BTL사업 중단

    ● 대학 내 공개입찰제도 도입
    복리후생 부분
    ● 대학생 자녀 학비 보조

    ● 공무원 대학생, 대학원생 학비 보조

    ● 10년 이상 장기 공무원에 대한 1년간 유급 안식휴가 실시

    ● 출산휴가 180일로 확대

    ● 조사휴가 부활

    ● 무주택 공무원 무이자 전세자금 지원, 임대주택 건립, 주택마련 자금 장기 저리로 지원

    ● 콘도, 펜션 등 휴가시설 확대 또는 건립

    ● 공무원 수련원 설치 확대

    ● 해외 배낭연수 확대

    ● 퇴직 예정 공무원 공로보상 차원 국내외 문화유적지 시찰에 필요한 경비 500만원 지급


    ▼ 공노총의 단체교섭에 참여한 39개 공무원노동조합(무순)
    전국교육기관공무원노동조합연맹(교육연맹), 서울시교육청공무원노동조합, 부산광역시교육청공무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교육청공무원노동조합, 인천광역시교육청공무원노동조합, 충청북도교육청공무원노동조합, 충청남도교육청공무원노동조합, 전라남도교육청공무원노동조합, 경상북도교육청공무원노동조합, 경상남도교육청일반공무원노동조합, 전국교육기관기능직공무원노동조합,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총연합단체), 서울특별시동대문구공무원노동조합, 대구공무원노동조합, 인천광역시공무원노동조합, 경기도청공무원노동조합, 전라북도공무원노동조합연맹, 전라북도공무원노동조합, 군산시공무원노동조합, 김제시공무원노동조합, 진안군청공무원노동조합, 완주군공무원노동조합, 임실군청공무원노동조합, 보성군공무원노동조합, 완도군공무원노동조합, 경상남도청공무원노동조합, 유성구공무원노동조합, 영광군공무원노동조합, 충청남도공무원노동조합, 한국공무원노동조합, 대구광역시북구공무원노동조합, 서울시강서구청공무원노동조합, 혁신서울시교육청공무원노동조합, 한국교육기관공무원노동조합연맹(한국교련), 서울특별시교육청기능직공무원노동조합, 부산광역시교육청기능직공무원노동조합, 인천광역시교육청산하기능직공무원노동조합, 충청남도교육청기능직공무원노동조합, 행정부공무원노동조합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