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0

2007.06.19

아우라의 붕괴와 복제, 패러디

  • 최면정 학림논술연구소 상임연구원

    입력2007-06-13 18: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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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우라의 붕괴와 복제, 패러디

    대중은 복제품을 통해 원본을 소유하려는 욕망을 드러낸다. ‘짝퉁’ 단속 장면.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오가는 대학가나 번화한 거리는 10년 전 풍경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런데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게 있으니, 젊은이들이 메고 다니는 가방의 디자인과 여성들의 손가방 문양이다. 이른바 명품, 즉 루이비통, 구찌, 샤넬과 같은 브랜드는 여전히 젊은이들에게 사랑받는다. 아니, 사랑을 넘어 동경의 대상이 된다. 심지어 모조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명품의 무엇이 이렇게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걸까?

    일찍이 ‘기술적 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라는 저서에서 발터 벤야민은 예술작품이 바로 그 일회성(一回性)으로 인해 공간과 역사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비록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여도 먼 곳에 있는’ 유일무이한 ‘숨결(Aura)’이 깃든 것이 예술작품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기술복제 시대에 이르러 ‘이곳에서 지금’ 숨쉬는 진정성의 의미는 계속 퇴색했으며, 아무 곳에서나 또 아무 때나 이루어지는 복제는 그저 ‘흔적(Spur)’만을 남길 뿐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이러한) ‘흔적’은 ‘숨결’과는 반대로 ‘멀리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가까이 있는 환영(幻影)’일 뿐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성균관대 2006년 정시논술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 일어나는 변화는 ‘아우라(Aura·원본에서 뿜어져 나오는 일종의 경건하고 고고한 분위기의 상실’로 나타난다. 아우라는 원래 종교의식에서 기원하는 현상이다. 르네상스 이후에는 종교적 숭배가 세속적인 미의 숭배로 대체되었다고 인식함으로써 예술에도 아우라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우리가 명품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이러한 세속적인 미의 숭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아우라는 예술작품의 원본에만 나타난다. 그러므로 원본을 복제한 작품에는 아우라가 없게 된다.

    오늘날과 같은 복제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 예술작품은 귀족만이 향유할 수 있었다. 따라서 그때의 예술작품은 유일무이한 현존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당시 귀족들의 방에 걸려 있던 작품을 잡지책이나 인터넷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벤야민은 이처럼 예술이 대량복제되는 이유를 “대중이 복제를 통해 모든 사물의 일회적 성격을 극복하려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중은 바로 자기 가까이 있는 대상들을 모사와 복제를 통해 소유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대중이 짝퉁이라도 소유하려는 욕망은 곧 동일화의 욕망이다.

    그런데 ‘짝퉁’에서 아우라를 발견할 수 없다면 우리가 가짜 명품에서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원본과 모사, 복제에 관한 테제는 고대 철학에서부터 비롯된다. 플라톤은 세계를 원형인 이데아, 복제물인 현실, 현실의 복제물인 시뮬라크르로 구분했다. 여기서 시뮬라크르는 복제된 것의 복제이기 때문에 플라톤은 이를 무가치한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현대철학자인 보드리야르는 시뮬라크르를 통해 현대사회의 특징을 설명한다. 시뮬라크르는 ‘원본 없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이미지’로, 현대사회에서는 원본보다 이미지가 현실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이제 원본의 아우라는 사라지고, 그 복제된 흔적만이 이미지로 남아 우리의 행동양식을 규정짓는다. 우리는 원본의 아우라를 보고 있는 게 아니라, 아우라가 남긴 이미지를 보면서 열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흔적만 남은 아우라, 또는 아우라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향해 조롱 섞인 비판을 가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이른바 명품의 패러디 현상이다. 짝퉁은 자신이 짝퉁이라는 걸 교묘히 숨기면서 이미지만이라도 진품에 다가가려 한다. 그러나 패러디는 진품이 가진 이미지를 비틀어 진품의 아우라를 조롱하면서 비판적 이미지를 형성한다. ‘FRADA’를 ‘9RADA(구라다)’, ‘POLO’를 ‘PORO(포로)’ 등으로 패러디하는 것이 그 예다.

    결국 우리 사회의 명품 선호와 그에 따른 짝퉁 소비는 앞으로도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추구하는 이미지가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도 계속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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