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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진정한 사랑이란 뭉개진 케이크 함께 먹는 것”

‘오늘의 작가상’ 수상자 이홍 씨 “운명적 사랑 계속 쓰고 싶어”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진정한 사랑이란 뭉개진 케이크 함께 먹는 것”

“진정한 사랑이란 뭉개진 케이크 함께 먹는 것”
한남자를 둘러싼 세 여자의 도발적이고 발칙한 러브스토리를 쓴 작가, 언론사주 일가의 며느리, 연예인 뺨치는 외모의 주인공…. 제31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홍(본명 박희선·29) 씨는 문학계는 물론 일반인 사이에서도 화제다.

매년 이 상을 선정, 발표하는 ‘민음사’와 계간 ‘세계의 문학’ 측은 수상작으로 이씨의 ‘걸 프렌즈’를 선정한 이유에 대해 “이 시대 독자들과 이 작품의 도발적이고도 끈끈한 매혹을 같이 맛보고 싶어서”라고 설명한다.

작품 심사를 맡은 이화여대 김미현 교수(문학평론가)는 “이 소설에서 연애는 메두사처럼 머리가 여러 개다. 연애 속에 또 다른 연애가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너무 늦거나 너무 빠르지 않게 찾아온 바로 ‘오늘’의 소설”이라고 평했다.

6월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근처 한 카페에서 작가로 변신한 이씨를 만났다. 네 살짜리 아들을 둔 주부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늘씬한 몸매에 웃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소설만큼 도발적이진 않았다. 소설 속 상상과 현실의 차이라고나 할까?

- 작가소개란에 O형에 쌍둥이자리라고 적혀 있던데, 혈액형과 별자리를 밝힌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O형에 쌍둥이자리인 사람 중에는 멀티플레이어가 많다고 해요. 쌍둥이자리는 또 문학 쪽 일과 잘 맞는다고 하고요. 재미있지 않아요? 나와 잘 맞는 것 같아서 넣어달라고 했어요.”

- 평소 성격은 어때요?

“남자들이 처음 봤을 때는 여성스러울 거라고 생각하는데 실은 그렇지 않아요. 털털한 편이죠. 남성적인 면도 있고. 그래선지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좋아해요. 곤란하죠. 친구들이 ‘딱 너 같은 남자친구 하나 있으면 사랑하겠다’고 해요.(웃음)”

안양예고 문예창작과를 거쳐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이씨는 장재근 전 일간스포츠 회장의 아들과 5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이씨가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중학교 시절 친구를 대신해 써준 연애편지다.

“중학교 때 친구 한두 명이 부탁을 하기에 써봤는데 재밌더라고요. 대신 써주는 연애편지는 어차피 거짓말이잖아요. 상상력을 동원하고 책에서 좋은 문장에 줄쳐놨다 인용해서 쓰고 그랬죠. 짜릿하고 재밌었어요. 그런데 막상 제 것은 못 쓰겠더라고요. 솔직하고 사실을 써야 하니까 내용도 건조해지고…. ”

- 소설 ‘걸 프렌즈’를 쓰게 된 계기는?

“주변에 여자들이 많아요. 언니와 여동생, 사촌, 친구 등 평소 그들과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의 내면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불안감 같은 것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들은 누구를 만나더라도 상대방에게 완전히 빠지지 못할 것이라는 전제 아래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러면 사람을 만나도 마음 한구석이 늘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요. 상처받기도 싫고, 상처를 줬을 때 돌아올 상처도 두렵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어요.

저는 제 전부를 걸고 뜨겁게 사랑을 나누는 운명적인 사랑을 좋아해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러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문화적·사회적인 문제와 관련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죠.”

- 소설 속에 담고 싶었던 것은 뭔가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문화적·사회적 틀 안에서 (서로를 믿지 못하는) 사랑을 시작했을 때 무너지는 지점이 있어요.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할지, 우리가 아는 진정한 사랑이 소멸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했죠. 그런데 그 속에서 또 다른 사랑이 보이더군요. 사랑이라는 게 자생력이 참 좋은 것 같아요. 어떻게든 다시 살아나니까. 그걸 기존의 소설과 다르게 담고 싶었어요.”

- ‘또 다른 사랑’이란 게 뭘 의미하는 거죠?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뭔가 결핍이 있는 사람이지만, 그런 것까지 껴안고 감수하는 사랑을 의미해요. 또 같은 남자에게 똑같은 상처를 입은 여자들끼리 갖는 인간적 소통도 또 다른 사랑의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 진정한 사랑이란 뭘까?

“뭉개진 케이크를 함께 먹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랑은 케이크처럼 달콤하지만, 사랑하다 보면 훼손되고 찌그러지죠. 그런데도 그 케이크를 같이 먹게 되는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 소설 속에 자신의 삶이나 생각이 얼마나 투영됐다고 생각하나요?

“저는 객관적으로 거리를 두고 이 글을 쓰려 했어요. 다른 작가들처럼 자신의 경험담을 쓰고 싶지는 않았어요.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에 상상의 나래를 달아서 쓴 거죠. 책이 나오자마자 친구들이 먼저 읽었는데 친구들마다 해석이 다르더라고요. 어떤 친구는 주인공 송이가 지나간 일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에서 제 성향이 보인다 하고, 어떤 친구는 너이기 때문에 그런 유쾌한 생각도 할 수 있겠다고 하더군요. 같은 내용도 사람마다 느끼고 생각하는 게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씨가 가족 모르게 이번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가장 큰 힘이 됐던 사람은 두 명의 친구다. 살림하랴 아이 키우랴, 바쁜 와중에 틈틈이 원고를 쓰면서 체력이 바닥날 때 이들은 음식을 싸다주고, 추운 겨울 한강 둔치를 함께 달려줬다. 이씨는 인터뷰를 빌려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이 친구들 아니었으면 아마 작품이 나오기 힘들었을 겁니다.”

요즘 이씨는 자신이 언론사주의 며느리라는 사실이 알려진 게 몹시 부담스럽다. 필명을 사용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저는 자전적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지 않아요. 필명을 쓴 것도 작품 내용이 제 삶의 한 부분으로 조명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어요. 또 작가보다는 작품에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죠.”

이씨의 가명 ‘홍’은 무지개 홍(虹)자다. 이씨가 가장 좋아하는 글자다. 이씨는 사람들이 자신의 글을 보면서 잠깐이나마 무지개를 볼 때처럼 기쁨과 위안을 얻고, 사람의 가슴에 무지개 색깔을 남겨주고 싶은 마음에서 이 글자를 선택했다고 한다.

이씨는 요즘 사랑을 소재로 한 옴니버스 형태의 단편과 상류층 고등학생의 일상을 그린 장편소설을 함께 준비 중이다. 작가가 된 이후 사진 찍는 것이 가장 힘들다는 이씨가 꿈꾸는 작가의 모습은 무척 소박하다.

“저에게 글은 운동 같은 거예요. 글을 쓰고 나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즐거워져요. 그 속에서 삶의 활력도 얻는답니다. 아직은 어떤 색깔을 이야기하기에는 이른 것 같고, 앞으로 다양한 글을 즐기면서 쓸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소설 ‘걸 프렌즈’는?



“진정한 사랑이란 뭉개진 케이크 함께 먹는 것”
우연히 나(한송이)와 회사 동료 유진호 둘이서 2차까지 직행한 술자리. 송이는 진호의 피겨스케이팅 같은 현란한 키스 솜씨에 몸과 영혼의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서로의 ‘육체 탐험’에 몰두하면서 한편으로는 사내 커플의 조심스러운 만남을 이어가던 중, 송이는 진호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것을 직감한다. 송이는 진호에게 니트를 선물한 여자를 찾다가 한 여자(세진)의 문자를 확인하고 그녀를 만나기로 결심한다.

신비하고 매력적인 유부녀 세진은 송이를 파티 장소로 불러내고, 송이는 그곳에서 여대생 보라를 만난다. 밝혀진 진실은? 세진과 보라가 모두 진호의 여자친구라는 것. 그런데 송이는 진호와 결별은커녕 오히려 그녀들과 은밀한 커뮤니티를 이어가는 묘한 상황에 빠져든다. ‘걸프렌즈 클럽’의 탄생.

아무것도 모르는 진호는 송이에게 프러포즈를 하지만 거절당한다. 송이는 두 여자와의 만남에서 삶의 다른 의미를 갖는 ‘자기 안의 발견’을 경험하고, 그녀들과 함께 아이를 키울 수도 있다는 엉뚱한 상상에 빠져드는데….




주간동아 590호 (p58~59)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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