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0

2007.06.19

“HSBC 사전에 ‘먹튀’는 없습니다”

사이먼 쿠퍼 한국 CEO 부임 1년 … 한국에 지속가능 경영으로 호평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7-06-13 14: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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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SBC 사전에 ‘먹튀’는 없습니다”
    “동료들이 적극적인 파트너로서 저와 함께 은행을 이끌어가고, 소신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권한을 위임하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지난 1년간 어려움도 많았지만 직원들이 회사의 비전을 이해하고 따를 수 있도록 노력했으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줬습니다.”

    세계적인 은행 HSBC의 한국 최고경영자(CEO) 사이먼 쿠퍼 씨는 올해 불혹이다. 50대 중후반인 다른 은행장들과 비교하면 젊어도 한참 젊다. 나이와 경영능력이 꼭 관련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흥미롭게도 그가 지난해 4월 한국 CEO로 부임한 이후 HSBC는 더 젊어지고 활기도 넘친다.먼저 500여 명에 불과하던 직원이 1350명으로 늘어났고, 평균연령도 줄어들었다. 8개였던 국내 지점은 11개로 늘어났으며 중소-중견기업을 위한 기업금융센터도 4개나 문을 열었다.

    또 그의 부임 이후 글로벌 은행으로서의 장점이 더욱 살아나면서 한국 현지화가 강화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른 은행을 인수·합병(M·A)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존 사업을 확장해가는 ‘자생적(organic)’ 성장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직원 수 3배 가까이 늘리고 지점도 세 곳 증설

    껑충하게 큰 키에 할리우드 배우 같은 ‘살인미소’를 가진 쿠퍼 은행장을 서울 봉래동 HSBC 서울 본점에서 만났다. 그는 2월 한 언론사의 영향력 조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외국인 CEO’로 선정됐을 만큼 짧은 기간에 ‘현지화’에 성공했다. 그 성공 비결을 묻자 간명한 답이 돌아왔다.



    “잭 웰치가 강조한 것이기도 한데, 주변에 자신과 함께할 최고의 팀을 둔 덕분입니다.”

    영국에서 태어난 그는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경제학과 법학을 공부했고,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에서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했다. 22세에 임원으로 HSBC에 입사했을 만큼 일찌감치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런 경력에 걸맞게 그는 업무에서 공격적이고 열정적이다. 그것이 직원들에게는 어느 정도 스트레스로 작용하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러나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웃음) 저는 우리가 하는 일, 하려는 일에 매우 열정적입니다. 직원들도 그렇게 자기 일을 사랑하도록 독려합니다.”

    그는 사무실 한쪽에 걸려 있는 퍼즐조각 그림(120×170cm)을 보여줬다. 직원들이 한 조각씩 1300여 개의 퍼즐조각을 모아 ‘함께 가는 HSBC’를 상징하는 그림을 완성했다고 한다.

    “직원들이 직업윤리를 갖고 열심히 일한 만큼 혜택을 주려고 합니다. 직원들이 자신의 총 휴가일수의 절반인 2주일을 한꺼번에 사용할 수 있는 ‘코어 리브(Core Leave)’ 제도나 가족의료비 지원, 직원들의 자기계발과 취미생활 지원 등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입니다.”

    직원들의 헌신적인 참여 속에 진행 중인 ‘자생적 성장’ 전략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우선 고객이 찾아오는 게 아니라 ‘은행이 찾아가는’ 개념의 HSBC 다이렉트를 시작해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는 HSBC 은행의 고객 기반을 크게 넓힌 상품으로 평가받는다.

    “국내 최초로 출시된 HSBC 다이렉트를 통해 고객들은 직접 365일 24시간 인터넷과 전화를 통해 편리하게 은행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또 일반 저축예금에 대해 연 3.5% 이자를 제공하는데, 이는 시중은행 금리보다 훨씬 높은 수준입니다. 타행 이체수수료도 면제되기 때문에 직장인과 자영업자에게 인기가 높습니다.”

    10여 년 전 영국에서 시작된 HSBC 다이렉트는 대만의 경우 단 5주일 만에 5년 동안 유치할 수 있는 고객을 끌어모았다. 국내에서도 출시 3개월 만에 대만에 버금가는 성과를 거뒀다고 한다.

    HSBC는 또 지난해 한국 최초로 ‘노후 플래닝 서비스’를 시작해 노후 준비에 대한 인식을 확산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중국과 인도의 주식형 펀드 붐을 일으키는 데도 일조했다.

    “HSBC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중소기업 고객(약 250만명)을 보유하며,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국제무역과 소비자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수출업체의 안전망이랄 수 있는 포페이팅(forfaiting·불소구 조건 수출환어음 매입) 분야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최근 HSBC 변화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브랜드 인지도가 크게 향상됐다는 점. 그것은 HSBC라는 단어가 전에 없이 자주 언론에 등장하고, 무엇보다 사회공헌 활동이 강화된 점과 무관치 않다.

    HSBC는 2006년 12월 한국에서의 사회공헌 활동을 인정받아 유럽연합상공회의소(EUCCK) 선정 사회공헌 부문 최우수기업상을 받았다. 실제 HSBC는 중소기업 환경경영 지원, 비무장지대(DMZ) 주변 습지보전, 전통문화 계승 프로그램 지원사업 등 사회공헌 활동을 벌여오고 있다. 전체 사회공헌 예산 중 75%를 교육과 환경에 쓰는 HSBC의 사회공헌 활동의 핵심은 ‘지속가능성’.

    사회공헌 활동 강화 덕(?) 브랜드 인지도 향상

    “기업이 일회성으로 돈을 기부하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그러나 변화를 가져오려면 환경 프로젝트, 교육 등의 분야에 지속적으로 후원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변화를 위해 힘쓰는 동안 어려움도 많았다. 특히 인재를 발굴해 그들의 능력을 개발하고, 그들을 HSBC 은행에 남게 하는 인력관리 문제가 어렵고 중요한 과제였다.

    “금융업계는 직원 이직률이 매우 높은 편입니다. 성공한 조직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사람이기 때문에 은행을 한 차원 더 성장시키기 위해 인력관리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또 MA(Management Associate)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과 외국의 유수 MBA 출신들을 채용하는 장기적인 인재채용 라인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온 지 1년, 어느새 그는 김치찌개에도 맛들였고, 한국문화를 더 자세히 알기 위해 4개월 전부터 일주일에 2~3회 한국어 개인수업도 듣고 있다. 주말은 주로 가족과 보내지만 가끔 지인들과 어울려 골프를 치기도 한다. 골프 스코어는 애버리지 90. 싱가포르 태국 홍콩 영국 등 여러 곳에서 다양한 문화를 접하며 살았던 그에게 한국의 어떤 점이 가장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까.

    “한국인들이 무엇보다 자녀를 우선시하는 점에 놀랐습니다. 지난해 HSBC가 조사한 것을 보니 한국인들은 노후를 위한 구체적인 재정계획도 없이 저축의 대부분을 자녀를 위해 쓰고 있었습니다. 자녀를 대학까지 가르치고, 자녀가 결혼할 때 집까지 사줍니다. 두 딸보다는 우리 부부를 위해 저축하는 저와는 아주 다릅니다.”

    공격적인 경영, 젊음과 조화를 무기로 짧은 기간 HSBC의 기업 가치를 크게 높인 쿠퍼 행장의 다음 실험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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