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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강 고속정 이름 못 짓는 까닭은 …

서해교전 희생자 이름 붙이려다 북한 자극 우려해 ‘차일피일’

  • 이정훈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세계 최강 고속정 이름 못 짓는 까닭은 …

세계 최강 고속정 이름 못 짓는 까닭은 …

한진중공업에서 건조 중인 PKX 그래픽. 앞쪽 갑판에 76mm 주포가 있고 뒤쪽 갑판에 해성 미사일을 2발씩 탑재한 미사일 발사통 4기와 40mm 부포가 있다. PKX는 강력한 방탄능력을 가진 스텔스 함정이라 크게 주목받고 있다(왼쪽). 서해교전에서 침몰한 357고속정 인양 모습. 북한군의 선제공격으로 벌집이 돼 있었다.

한일월드컵 축구 3·4위전이 벌어진 2002년 6월29일. 북한 해군의 ‘육도 경비정’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뒤, 한일월드컵 대회를 의식한 국방 수뇌부의 어정쩡한 지시 때문에 이 경비정을 지켜보고만 있던 한국 해군 2함대 소속의 357고속정을 선제공격해 침몰시켰다. 이 공격으로 357고속정 정장 윤영하 대위 등 6명이 전사하고 20여 명이 부상했다.

서해교전 5주년이 다가오는 지금, 해군이 PKX로 불려온 차기 고속정 시제함 진수를 준비하고 있어 주목된다. 고속정은 영어로 Patrol Killer, 시제함은 eXperimental이기에 차기 고속정 시제함은 PKX로 약칭된다. PKX 진수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아홉 가지다.

진수식도 서해교전 5주년 기념식 피할 듯

첫째, 진수시기를 언제로 하느냐는 점. PKX는 서해교전에서 드러난 우리 고속정의 문제점을 줄이기 위해 새로 설계한 것이다. 따라서 이 함정 진수식을 서해교전 5주기인 6월29일에 갖는 것을 검토해왔다. 그런데 올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둔 노무현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 개최에 전력투구하고 있어 해군은 서해교전 5주기 때 진수식을 여는 것에 부담을 느끼게 됐다. 해군은 서해교전 5주기 당일엔 송영무 해군참모총장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을 갖고, PKX 진수식은 그 전날 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가고 있다.

둘째, 북한의 반응이 거론된다는 점. 남북 장성급회담이 있던 5월10일 북한 해군 대변인은 조선중앙방송 등을 통해 “언제 제3의 서해교전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는 위험한 상태가 조성되고 있다. 또다시 서해 해상에서 총포성이 울린다면 어떤 후과가 빚어질지는 누구에게나 명백하다”라는 담화를 발표했다.



성과 없이 막을 내린 남북 장관급회담이 열린 5월31일 북한 해군은 ‘노동신문’을 통해 “5월30일 오전 11시20분경 남조선군 호전광들은 7척의 전투함선을 황해남도 강령군 쌍교리 서남쪽 우리 측 령해 깊이 침투시켰으며… 우리 측이 정세를 악화시키지 않을 목적으로 대화기(對話器인 듯)를 통해 즉시 철수할 것을 요구하자 남조선군 호전광들은 ‘사격하겠다’‘징벌하겠다’는 호전적 망발까지 거리낌 없이 줴쳤다. … 우리 인민군 군인들은 남조선군 호전광들의 군사적 도발을 예리하게 주시하고 있으며, 만약 이런 도발행위가 계속된다면 우리는 응당한 대응책을 취하리라는 것을 경고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해군 측은 “5월30일 북방한계선 북쪽으로 올라간 우리 함정은 한 척도 없었다. 지금 남북 함정은 교신할 수 있으므로, 북한은 그들이 주장하는 서해 해상분계선 북쪽에 우리 함정이 있으면 무조건 침범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우리 함정은 ‘우리는 우리 측 수역에서 정당하게 활동 중이다’라고만 대답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최강 고속정 이름 못 짓는 까닭은 …

2006년 열린 서해교전 4주기 추모식.

북한은 종종 예고를 한 뒤 도발하는 일이 있었다. 지난해 10월9일의 핵실험도 여러 차례 예고한 뒤 강행했다. 올해 들어 북한은 세 차례나 서해교전 재발 가능성을 경고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송 총장이 참석해 성황리에 PKX 진수식을 연다면 북한은 기다렸다는 듯 서해 도발을 강행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원하는 정부 여당에 곧바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어 고민 중이라고 한다.

셋째, PKX의 이름을 무엇으로 할 것이냐 하는 점. PKX는 500t이 약간 넘는데, 해군은 500t이 넘는 함정엔 ‘충무공 이순신’이나 ‘세종대왕’ 같은 고유명사를 붙여왔다. 과거 해군은 세 척을 건조하기로 한 한국형 이지스함에 차례로 울릉도 영유권을 확인한 안용복, 서해교전에서 산화한 윤영하, 베트남전에서 전사한 지덕칠 하사의 이름을 붙이겠다고 했다 갑자기 제1번 이지스함의 이름을 세종대왕으로 변경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세종대왕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올 7월 충남 연기 공주 지역에 짓기로 한 행정도시 이름도 ‘세종’으로 결정됐다. 이런 점을 의식한 해군은 과거 세종대왕을 함정 이름으로 한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으므로 재빨리 제1번 이지스함 이름을 ‘세종대왕함’으로 바꿨다. 그로 인해 ‘윤영하’와 ‘지덕칠’도 번지를 잃어버리자, 해군 일각에서는 PKX를 윤영하함으로 하자는 주장을 내놓았다.

스텔스·함포 등 첨단으로 무장

해군은 이번에 진수하는 PKX가 예정된 성능을 발휘한다면 모두 쭛쭛척 건조할 예정이다. 이를 의식해 일각에서는 서해교전 전사자 6명과 다른 전투에서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해군 장병 이름을 차례로 PKX에 붙이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PKX에 윤영하 등 서해교전 전사자 이름을 붙이면 정부에 부담이 될 뿐 아니라,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와 해군의 고민은 깊어가고 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왜 대형 함정에는 왕족과 귀족 이름만 붙이는가. 안용복 윤영하 지덕칠 등 평민이나 계급이 낮은 사람 이름도 이지스함 같은 대형 함정에 붙여야 해군은 국민의 군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1800t급 호위함에는 경북 서울 등 광역시도를, 1200t급 초계함에는 수원 영주 등 시(市) 이름을 붙이고 있다. 해군 수뇌부의 말 못할 고민을 잘 아는 일부 참모진은 PKX에 봉화군 괴산군 등 군(郡) 이름을 붙이자는 대안을 내놓고 있다.

세계 최강 고속정 이름 못 짓는 까닭은 …

미국제 하푼보다 성능이 뛰어난 ‘해성’ 대함미사일은 130km 떨어진 적군의 대형 함정을 한 방에 격파할 수 있다. 국방과학연구소가 개발했다.

제1번 PKX에 어떤 이름을 붙일 것인가. 결론을 내리지 못한 해군은 일본 미국 순방에 나선 송 총장이 귀국하는 6월9일 이후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넷째, PKX의 강력한 무장. ‘참수리급’으로 불려온 현재 고속정에서 가장 큰 무장은 40mm 함포인데, 이 함포는 일부 북한 경비정에 실려 있는 85mm 함포보다 위력이 약하다. 사거리도 짧아 고속정은 북한 경비정의 85mm 함포를 맞을 수 있는 근거리에서 싸워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었다. 한국 고속정은 속사포를 날릴 수 있어도 ‘결정적인 한 방’은 먹이지 못한다.

연평해전과 서해교전에서 북한 경비정에 결정적인 펀치를 먹인 것은 고속정이 아니라 1200t급 초계함에서 발사한 76mm 함포였다. PKX에는 초계함에 실려 있던 강력한 76mm 함포를 주포로, 그리고 40mm 함포를 부포(副砲)로 싣는다.

PKX에는 미국제 하푼보다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은 한국형 대함미사일 ‘해성(海星)’이 네발 탑재된다. 해성은 경비정 같은 작은 배가 아니라 1500t 이상의 대형 함정을, 130km 밖에서 발사해 격파하는 전략무기다. 북한 해군에서 1500t이 넘는 함정은 나진급 두 척뿐인데, PKX는 이 함정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이다.

세계 최강 고속정 이름 못 짓는 까닭은 …

서해교전 재발을 경고한 북한 해군의 주장을 보도했던 5월31일자 북한 ‘노동신문’.

다섯째, PKX의 스텔스 능력. 소식통들에 따르면 국방과학연구소가 독자 개발해 PKX에 적용한 스텔스 기술은 예상외로 성능이 뛰어나다고 한다. 스텔스 함정은 상대 레이더에 탐지되는 것을 줄이기 위해 강화플라스틱인 FRP로 함체를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FPR는 방탄능력이 약하다는 문제점이 있다. PKX는 방탄능력 강화를 위해 강철로 함체를 만들었다. 그런데도 강력한 스텔스 기능이 발휘되고 있어 관련 업계에서는 그 비밀이 무엇인지 매우 궁금해하고 있다고 한다.

여섯째, 다양한 탐지능력을 갖추었다는 점. PKX는 대형 함정에서나 볼 수 있는 3차원 레이더와 열상(熱像) 카메라, 거리 측정용 레이저 등 다양한 탐지장비를 갖추고 있다. 스텔스 능력을 극대화해야 할 때는 자기 레이더를 켜지 말아야 하는데, 그럴 경우 상대를 탐지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생긴다. 하지만 PKX는 보조 추적장비인 열상 카메라와 레이저를 갖추고 있어 스텔스 상태에서도 어느 정도까지는 목표물을 추적해 공격할 수 있다.

탐지·합동작전 능력도 ‘탁월’

일곱째, 방어능력. 한국 군함을 위협하는 북한군 무기는 연안에 설치된 ‘실크웜’등 대함 미사일이다. 서해교전 등 남북한 함정 교전 시 ‘강력한 펀치력’을 가진 초계함은 실크웜 미사일을 맞을 수 있다는 부담 때문에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 PKX는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발사된 실크웜 미사일을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게 하는 ‘교란장비’를 탑재했다.

여덟째, 독특한 추진방식을 가진다는 점. 한반도 근해에는 어민들이 쳐놓은 그물이 도처에 깔려 있다. 1998년 속초 앞바다에서는 북한 잠수정이 스크루가 그물에 걸려 나포된 적이 있었다. 서해교전 때 초계함은 그물을 피해 항해하느라 현장에 늦게 도착했었다. PKX에는 그물이 처진 바다에서도 자유롭게 항해할 수 있는 특수 추진장치가 장착됐다.

아홉째, 이지스 등 대형 함정과 합동으로 상대 함대를 궤멸할 수 있는 ‘합동작전’ 능력을 갖췄다는 점. 유사시 PKX는 레이더를 꺼 스텔스 능력을 극대화한 상태로 구축함 등과 함께 출격한다. 이때 구축함은 미리 정해놓은 암호에 따라 무선으로 PKX에 항해 정보와 작전 정보를 알려준다. PKX는 이 정보를 바탕으로 항해하면서 필요한 작전을 준비한다. 상대는 전파를 쏘는 한국 구축함이 출동한 사실은 금방 파악하지만, PKX는 스텔스 기능이 있는 데다 일절 전파를 쏘지 않기 때문에 출동 사실을 알 수 없다.

그러한 상대 함정이 한국 구축함의 위치에만 신경을 쓰며 작전을 준비할 때 근거리에 침투한 PKX가 ‘유령처럼’ 해성을 발사한다. PKX는 리모컨으로 작동하는 구축함의 원거리 미사일부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런 합동작전 능력 덕분에 PKX는 북한의 경비정을 제압하는 전술무기인 동시에 적 함대를 격파하는 전략무기로 활약할 수 있다.

한마디로 PKX는 지금까지 나온 고속정과는 차원이 다른 첨단무기다. 이렇게 뛰어난 함정을 개발했음에도 남북관계 때문에 마땅한 이름을 짓지 못하고 서해교전 5주년을 피해 진수해야 하는 것이 노무현 정부에서의 해군이 처한 현실이다. 우리가 열심히 배려해주는 북한은 5년 전 357 고속정을 선제공격해 침몰시켰는데도 말이다.

반론문

590호 ‘차기 고속정 PKX’ 기사에 대해 해군이 다음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해군은 서해교전 5주기에 부담을 느껴 6월28일 차기 고속정의 진수식을 하기로 한 것이 아닙니다. 서해교전 당일 두 행사를 모두 할 수 없어 28일에는 희생자 유가족을 초청해 부산에서 진수식을 열고, 다음 날 2함대에서 유가족과 함께 5주기 행사를 하려 합니다.

해군은 이 배 진수식이 북한의 서해도발을 유도한다든지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원하는 정부 여당에 부담이 될 것 같아 고민한 사실도 없습니다. 해군은 이 배에 서해교전 전사자 이름을 붙이는 것이 정부 여당에 부담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군은 북방한계선(NLL) 수호 의지와 서해교전 전사자들의 호국정신을 드높이기 위해 해군참모총장이 참석한 가운데 차기 고속정의 진수식을 성대히 열 예정입니다.

해군본부




주간동아 2007.06.19 590호 (p12~14)

이정훈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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