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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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검찰 반전 노릴 비장의 수사 카드 있을까

특검에 가려 존재감 사라지고…거대 야당은 공수처 신설 추진하고

  • 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

    입력2017-01-13 18: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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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똑한 수사 한 건이 보고서 한 트럭보다 낫다.”

    서울 시내 한 검찰청의 부장검사는 요즘 이 말을 후배들에게 자주 한다. 법무부 등 기획 부서에서 일하는 검사들은 “우리 심정을 콕 찌르는 말”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이들은 국회에서 입법 직전 단계에 이른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대응 방안을 짜고 있다. 평검사들의 술자리에선 “큰 거(수사) 한 방 터뜨려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자주 나온다고 한다. 법무부 장관 자리는 한 달 보름 이상 비었는데 수장은 오지 않고, 공수처 한파를 갑자기 맞게 됐으니 기댈 곳은 특수부 수사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특수부는 최근 ‘프로선수’ 기근 현상을 겪고 있다. 특수부에서 수사 역량을 갖춘 검사들은 지난해 10월부터 ‘최순실 게이트’ 수사에 차출돼 최근에야 한두 명씩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최순실 수사팀에서 복귀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한 검사는 “그동안 처리하지 못한 사건이 산더미처럼 쌓여 1월 말까지 쉴 틈이 없다”고 말했다.

    요즘 검찰은 최순실 게이트 특별검사(특검) 수사에 가려 ‘존재감 실종’ 국면을 맞았다. 특검 수사 기간 간헐적으로 나온 대우조선해양이나 부산 해운대 엘시티(LCT) 비리 수사도 잔잔한 파동에 그쳤다. 변호사들이 몰려 있는 서울 서초동에선 “지금 검찰총장은 사실상 박영수 특별검사”라는 말이 돌고 있다. 김수남 검찰총장은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이런 기조가 유지되면 올해 상반기 이렇다 할 검찰발(發) 수사를 기대할 수 없으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검찰은 최순실 게이트 수사 기록을 특검에 넘겨줬지만 숨 돌릴 겨를이 없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2월 공수처 신설 법안을 국회에 상정하겠다는 생각을 굳혔기 때문이다. 이를 막아줄 여당 방파제도 사라진 지 오래다. 이창재 장관 직무대행(차관)이 국회에서 반대 논리를 펴고 있지만 거대 야당을 상대하기에는 버겁다는 분위기다.  



    공수처 신설이 확정되면 검찰조직은 2013년 4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해체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먼저 검찰은 3급 이상 고위 공직자는 물론, 정치인 수사에서도 손을 떼야 한다. 정쟁에 휘말릴 수사는 하지 않게 되지만 조직 위상의 추락이 예상된다. 경찰처럼 일반 형사 사건에 매달리다 보면 위세와 조직이 쪼그라들 것이 뻔하다.

    이런 사정 때문에 검찰이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고 국회의 입법에 맞대응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법조계 인사가 늘고 있다.



    탄핵정국이 반전 기회 될 수도

    “대통령 권한대행마저 ‘공안검사’ 출신이라서….”

    수도권 검찰청의 한 차장검사는 요즘 검찰이 정치권을 겨냥한 새로운 수사에 착수하기 어려운 이유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끝을 흐렸다. 정치권의 공수처 공세에 대응할 최적의 카드가 대형사건을 새로 수사하는 것이지만,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검찰 내부 사정을 훤하게 아는 그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가능성이 높다. 황 권한대행의 후배들인 공안부 검사들은 요즘 같은 국정 위기에서 조직 내 ‘브레이크’ 구실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어설픈 수사로 검찰마저 잡음을 내면 국가 위기를 심화할 뿐 아니라 수사 결과에 대한 비난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논리다. 검찰 내 ‘선수들’도 자기검열과 ‘수사 자제’가 더 심하다고 털어놓는다.

    그렇기는 하지만 검찰을 겹겹이 싸고 있던 통제 벽이 없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오히려 검찰에게는 절호의 기회라는 얘기가 검찰청사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수원지방검찰청 한 검사는 “수사 상황을 촘촘하게 챙기던 법무부 장관과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이 자리에 없거나 기능이 마비됐기 때문에 똑 떨어지는 수사 건과 검사의 의지만 있다면 외부 간섭을 받지 않고 소신껏 수사할 수 있는 여건”이라고 전했다.

    검찰이 꺼낼 수 있는 비장의 수사 카드는 무엇일까. 새로 착수하는 수사는 민감한 정국에서 오해를 살 여지가 있는 데다 시간이 부족하다. 그렇기에 수사가 어느 정도 진행된 엘시티나 대우조선해양 비리 수사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카드가 나올 가능성이 점쳐진다. 지난해 급하게 덮은 수사에서 유력 정치인 등 ‘대어’급이 낚일 가능성도 남아 있다. 엘시티 비리 사건은 부산 해운대구에 대규모 주상복합시설을 짓는 과정에서 시행사 실질 소유주인 이영복 회장이 회사 돈을 빼돌려 정관계에 로비를 벌이고 토지 용도 변경과 투자 유치, 건설사 수주에서 특혜를 받은 사건이다. 검찰은 이 회장을 구속한 뒤 지금까지 현기환 전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 등과 공무원의 비리를 포착했으나 화제에 비해 수사로 밝혀낸 부분이 미미하다는 평가다. 이 회장은 1990년대 부산 다대?·??만덕 택지분양 사건의 핵심 피의자였으나 검찰과 경찰 수사망을 뚫고 도피 행각을 벌인 인물이다. 당시 이 회장을 추적했던 검찰 고위 간부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이 회장이 마음을 바꾸면 정치인들의 비리가 줄줄이 밝혀지면서 메가톤급 파장을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 판세를 좌우하는 검찰 수사

    역대 대선에서 검찰 수사는 ‘승자의 지렛대’ 구실을 했다. 1992년 14대 대선 전 초원복집 사건이 터졌을 때 검찰은 지역감정을 조장했던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을 대선이 끝날 때까지 소환하지 않고 도청 가담자 처벌에만 주력해 ‘김영삼 후보를 확실하게 도와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는 김대업 씨가 제기한 ‘병풍’ 의혹 사건 수사를 끝내지 않아 노무현 후보의 당선에 기여했다는 말을 들었다. 당시 김씨의 녹음테이프를 분석했던 이창세 전 대검찰청 과학수사과장(현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은 “대선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는 상부의 지침 때문에 선거일 전 수사 결과를 발표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어떤 후보에게 수사의 칼날이 향할지에 따라 선거판이 요동칠 수 있다. 이번 대선은 기간이 짧고 현직 대통령이 없는 상태에서 실시된다. 선거의 독립변수인 검찰 수사의 위력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대선주자가 공수처 법안 상정을 대선 이후로 미뤄달라는 검찰 측 요청을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다.  

    일반적으론 대선을 앞두고 편파 수사 논란에 휘말릴 정치인 수사는 유보하는 게 맞지만, 정치권의 공수처 공세에 맞서 조직을 지키고 위상을 회복하기 위한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는 강경론이 검찰 내에도 적잖다.  대선 열기가 뜨거워져 후보들이나 시민단체가 고소·고발전에 들어가면 검찰이 떠밀려 나서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본격 수사를 벌일 수도 있다. 한 공안부 검사는 “조직이 처한 상황에 따라 정치자금법이나 공직선거법 위반 등 조금만 파고들어도 쉽게 성과를 낼 수 있는 사건을 하지 말란 법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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