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5

2007.05.15

고소하고 바삭바삭 군침 저절로

  •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foodi2@naver.com

    입력2007-05-09 20:2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고소하고 바삭바삭 군침 저절로
    육즙이 풍부하고 도톰한 돼지고기에 튀김옷을 입혀 기름에 바삭하게 튀겨내고, 여기에 겨자소스를 얹은 양배추를 곁들여 먹는 돈가스. 이젠 세대를 가리지 않는 대중적인 음식이 됐다. 특히 프랜차이즈 돈가스 전문점이 부담 없는 가격으로 젊은이들의 입맛에 맞춰가며 확장을 거듭하고 있다.

    돈가스는 일본에서 건너왔다. 그렇다고 일본 전통음식은 아니다. 서양의 포크커틀릿이 일본식으로 변형된 것이다. 커틀릿이란 얇게 저민 고기에 밀가루와 달걀, 빵가루를 묻혀 튀기는 요리를 말한다. 돼지고기를 튀기는 방식은 서양이나 일본이나 같을 것이다. 그러나 돈가스는 이제 서양 음식으로 보면 안 된다.

    서양의 고기요리는 고기가 덩어리째 접시에 올라오고 이것을 포크와 나이프로 잘라 먹는다. 그러나 돈가스는 고깃덩어리가 젓가락으로 집어 먹을 수 있게끔 잘라져 나온다. 여기에 수프 대신 일본식 된장국, 빵 대신 밥, 샐러드 대신 채소절임 등이 나온다. 철저히 일본식으로 바뀐 것이다.

    싸고 푸짐한 한 끼 음식 … 돼지고기 질이 맛 60% 좌우

    일본에서 돈가스가 일반에게 소개된 것은 1910년경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에도 돈가스를 내는 음식점이 있었을 것이다. 광복 이후에도 서양풍의 음식점에서는 돈가스를 냈다. 이때는 돈가스와 포크커틀릿이란 이름을 섞어 썼으며, 음식 형태는 포크커틀릿이라 불릴 만한 것이었다. 수프와 샐러드가 나오고 고기는 통째 접시에 올려져 포크와 나이프로 먹었다.



    1960년대 서울 명동에 일본식 돈가스 전문점이 생겼다. 최초의 돈가스 전문점은 지금도 성업 중인 ‘명동돈까스’다. 서양풍의 여러 음식을 내는 경양식점과 달리 돈가스만 나오는 음식점이 등장한 것이다. 고기가 잘라져 나오는 등 지금의 돈가스와 같은 형태다. 68년 역시 명동에 개업해 그 자리에서 맛을 지켜오고 있는 ‘서호돈까스’도 있다.

    돈가스는 돼지고기에 밥, 양배추샐러드, 국이 나오니 영양뿐 아니라 포만감에서도 큰 만족을 주는 음식이다. 그런 까닭에 돈가스 전문점은 젊은이들이 붐비는 거리에 주로 들어선다. 돈가스의 이런 장점(싸고 푸짐하다)이 극적으로 반영된 곳이 기사식당이다. 기사식당의 손님들은 대체로 입맛이 보수적이다. 여기에 서양풍 아니면 일본풍 돈가스가 들어가 ‘선전’하고 있는 것은 ‘싸고 푸짐하다’는 돈가스의 미덕 덕분일 것이다.

    기사식당 돈가스는 손님 입맛에 더 맞추기 위해 독특한 조리법을 만들어냈다. 돼지고기를 방망이로 두들겨 아주 널찍하게 편 뒤 튀겨냄으로써 시각적으로 풍성하다는 느낌을 준다. A4 용지 크기만하다 해서 ‘A4 돈가스’로 불리기도 한다.

    돈가스 맛에 끼치는 비중을 따지면 돼지고기가 60%, 튀김옷 20%, 튀김용 기름이 20% 정도 된다.

    고기요리는 뭐니 뭐니 해도 고기가 맛있어야 한다. 연한 육질에 육즙이 풍부한 돼지고기를 향기로운 기름에 바삭하게 튀겨낸 돈가스는 소스 없이도 충분히 맛있다. 물론 여기에 튀겨내는 솜씨도 있어야 하지만 이런 기술은 기본적인 것이라 실수하는 집이 거의 없다. 맛있는 돈가스집이란 곧 최고의 돼지고기를 쓰는 집을 말한다. 그러나 그런 집을 찾기가 쉽지 않다. 돼지고기가 그날그날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돼지 중 물퇘지라는 것이 있다. 사육 중 스트레스를 받아 고기에 물이 차고 냄새가 나는 돼지를 말한다. 물퇘지 고기로 튀기면 튀김옷과 고기 사이가 뜨면서 물이 생긴다. 또 물퇘지는 기름기 많은 삼겹살보다 등심과 안심의 육질이 안 좋다. 더 큰 문제는 대부분 돈가스집 주인들이 물퇘지가 뭔지도 모른다는 데 있다.

    나도 한때 돈가스를 퍽 즐겼는데 요즘은 거의 먹지 않는다. 같은 집이라도 그날그날 돈가스 맛이 다르니 행여 실망할까봐 발길을 줄이는 것이다. 음식 맛을 결정하는 첫째 요인이 재료라는 사실은 너무나 분명한 듯하다.



    댓글 0
    닫기